중학교 첫 시험. 반 배치고사가 있었다. 혼자 문제집을 사다가 시험을 대비하긴 했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을 공부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칠판에는 성적 좋은 몇 명의 이름이 적혔다. 이 아이들이 반장 후보라고 했다. 나는 반장 선거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 성적으로 시작해서 성적으로 끝나는 중학교 시절의 서막이 그렇게 열렸다.
중학교에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영어는 그야말로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기특하게도 혼자 영어 공부를 해 보겠다고 서점에서 구입한 영어자습서에는 모든 영어에 한글로 발음이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파닉스를 아직 몰랐던 나는 이걸 다 외워야 한다는 게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어떻게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을 몽땅 다 외워서 말할 수 있지? 이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 더군다나 실제로 외국 사람들이 이렇게 정해진 대로만 말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 그룹 과외식으로 한, 두 달 영어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동네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서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교포 남자 선생님에게 배웠다. 예전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브루터스 리와 같은 분이셨다.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건 영어 일기 쓰기뿐이다.
12/20/94 Tuesday
Teac her(영어단어는 붙여 써야 하는지도 몰랐음) I bun a lot 먹었다.
I like buns.
qood(자꾸 g를 거꾸로 썼다) bye teac her see you tomorrow.
그냥 영어로 글을 썼다기보다는 영어를 보고 따라서 그렸던 것 같다. 모든 일기가 한글과 영어가 뒤섞여서 단어가 무엇인지 문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순에 대한 감도 없이 숙제이기에 책을 고대로 베꼈다. 이런 상태에서 중학교 첫 번째 영어 듣기 평가를 치렀다. 시험 결과는? 반타작이었다. 시험지에 무수히 비가 내렸다. 교실 뒤에서 조용히 시험지를 갈가리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감히 시험지를 훼손하는 행위는 나로선 사춘기 호르몬에 의한 엄청난 나쁜 짓이자 학교와 사회에 대한 반항이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울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자기는 한 개 틀렸다면서 속상해하는 친구 얼굴이 떠올라 더욱 괴로웠다. 그 일을 계기로 종합반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동안 성적이 도통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 평균 90점만 넘으면 어느 정도 무난한 성적이었는데 간신히 90점을 넘기며 2학년으로 올라갔다.
반전은 2학년 때 시작되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평균 97점, 반 1등, 전교 4등으로 성적이 단숨에 뛰어올랐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시험을 잘 봤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더 처절하게 공부했다. 일단 교과서 글씨가 보이지도 않도록 밑줄을 그으며 달달 외우고 문제집을 여러 권 풀었다. 학원에서 나눠주는 시험지까지, 문제를 하도 여러 번 풀다 보니 각 과목별로 매번 똑같이 나오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 실제로 시험 볼 때 나눠준 시험지에 적힌 문제의 첫 글자만 읽어도 그 문제의 답을 고를 정도였다. 수학 시험의 경우엔 계산할 필요도 없이 답을 외우고 있기도 했다. 내가 공부했던 문제가 토시 하나 바뀌지 않고 나오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의 뜻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 개라도 실수로 틀리면 여지없이 과목 등수는 아래로 뚝 떨어졌다. 1등의 자리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시샘을 받으며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새벽 2시. 늘 어머니께서 그만 공부하고 자라고 할 때까지 공부했다.
중학교 3학년때는 살짝 성적이 내려가 반에서 1등을 못 한 적도 있지만 중학교 시절은 내 인생에 있어서 성적으로 가장 빛났던 시기였다. 공부 잘하는 애가 된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때부터 반장을 하게 되었고 공부 잘한다는 이유 하나로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때 난 스스로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쉽게 이룰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마자 그 생각은 무참히 깨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의 광범위한 시험과목은 암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난 어쩌다 운이 좋아서 시험을 잘 봤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