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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꽃, 책 육아

by 콩소여 Feb 24. 2025

  “콩쌤은 아이도 참 잘 키울 것 같아.”


  “……네?”


  아이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낯이 뜨거워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집에서 아이들 대하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에 항상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툭하면 화내고, 함부로 말하고 심지어는 밥 해 주는 것까지 귀찮아하는 게으른 엄마가 바로 나다. 뭐가 그리 바쁜지 2학년 아들 학부모 상담마저 제때 신청을 못 해 놓쳐버렸다. 집에 벽이란 벽은 죄다 가리고 빼곡히 쌓여 있는 아이들 책들을 보면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책 읽어줘야 하는데…….’


  첫 아이를 낳은 지 3개월 만에 학교로 복귀했다. 생후 90일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보건실에서 유축을 했다. 퇴근 후엔 틈틈이 친정어머니 병간호를 해가며 힘들게 반년을 지냈다. 그리고 다음 해 육아 휴직을 신청해 아이와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동안 못다 한 정성을 몽땅 쏟아부어 주고 싶은 욕심에 아이가 잘 때마다 육아서적을 읽어가며 책 육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푸름 아빠’로 시작한 책 육아는 불량 육아 ‘하은맘’을 거쳐 엄마표 영어로까지 발을 넓혀 ‘서율맘’, ‘가을맘’, ‘알파맘’, ‘슈퍼맘’등의 각종 맘에 이어 ‘효린파파’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책 육아한다고 하나둘 사들인 책들이 지금은 5단 1200mm 책장이 자그마치 6개 하고도 회전 책장, 전면책장, 낮은 책장 3개에 빼곡히 꽂혀 거실과 방 두 개의 벽을 꽉꽉 채우고 있다.


  “우리 집은 왜 벽이 없어?”


  아침부터 남편의 잔소리 폭격이 이어진다. ‘이 책 언제 버릴 거야?’, ‘이제 이런 책 읽을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오히려 애가 책을 더 안 읽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할 거야?’.......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남편에 맞춰 웬만큼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에 동의했지만 책만은 도저히 못 버리고 있다.


  “이 책들은 둘째가 읽기 독립할 때 읽을 책들이고, 이 책들은 첫째가 어릴 때 열심히 본 책이어서 나중에 또 찾을 수도 있대.”


  책 육아에 한창 열정을 부렸던 시기, 핸드폰 메모장에 책 구입 목록을 줄줄이 적어놨다. 매달 10만 원 예산을 세워 중고로 전집을 꾸준히 들였다. 연식이 오래된 책은 한 질에 2만 원대로도 구입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중고 게시판에 알람 설정까지 해두고 책을 사다 날랐다. 가끔 무료 나눔이나 재활용품 내놓는 날에 버린 책들을 상자째 주워 오기도 했다. 영어책과 한글책의 비율은 1:1로 유지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영어책은 한글책보다 구하기가 어려웠다.


  책을 박스 한가득 들이면 한동안은 읽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와 최대한 가까이 살붙이고 앉아 딴짓도 못 하고 온전히 책만 읽어준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가 그림만 쳐다보고 있어도 마냥 행복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읽어주다 말다, 한동안 책을 들이다 또 말다 한 게 벌써 큰애가 9살, 작은 애가 7살이 되었다.


  책 육아라는 것이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끊임없이 책을 선별해서 공급해 주고 눈에 띄는 곳에 계속 들이대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단지 책을 구입해서 읽어주느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주느냐의 선택에서 남편과 의견이 갈린다. 언제든지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읽고, 빌려온 책이 아닌 내 책이라는 생각으로 책에 좀 더 애정을 갖게 하고 싶은 마음에 미니멀리스트 남편과 팽팽한 기싸움을 하고 있다.


  한동안 참 많은 책을 읽어주었다. 몇 년간 다져진 실력으로 이제 ‘해리포터’ 정도의 글밥도 한 번에 두 시간까지도 낭독할 수 있다. 어릴 때 아이가 책의 바다에 언제 빠질까 싶어 밤늦게까지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책만 읽어주면 꾸벅꾸벅 졸았다. 허구한 날 존다고 어린 아들에게 비몽사몽간에 얻어맞기도 했다. 책 육아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나날이었다. 아이들 책 말고 내 책을 읽고 싶어서 책 읽어 달란 아이들에게 신경질도 많이 내고, 대충 읽어주기도 했다. 책 읽어 달라는데 뿌리치고 내 책상에 앉아 슬그머니 꺼내든 책이 ‘책 육아’ 책이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웃지 못하는 민망한 상황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책을 읽어줄 때는 부족한 엄마로서 나름대로 최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것 같다.


  기대처럼 아이는 책 없이 못 사는 아이, 혼자서 책을 진득하게 보는 책벌레로 자라지 않았다. 그냥 화가 날 때 조용히 방에 들어가 책을 읽는 정도의 아이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책에 서서히 빠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학습만화를 더 좋아하지만, 곧 진정한 책의 재미도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요즘엔 정말 하루에 책 한 권이 웬 말이냐? 몇 달째 책을 아예 못 읽어주고 있다. 그때 그렇게 아등바등 책을 사다 날랐는데 그때 노력한 것이 그걸로 다였다니 새삼 후회가 된다. 그때 한 권이라도 더 읽어줄걸.


  여전히 육아 책을 즐겨 읽는다. 오히려 그때 더 조급하고, 늦었을까 봐 걱정되던 것들이 이제는 한 템포 늦춰서 여유 있게 다가온다. 자기 합리화를 시작한 것이다. 공부하는 엄마로, 책 읽는 부모의 모습으로 교육해야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러나 아직도 육아의 꽃은 단연코 책 육아라고 생각한다. 책으로 엄마도 아이도 조금씩 성장한다. 우리 두 아들이 책을 통해 성장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행복하게 자랐으면 한다. 이제 정말로 쌓여있는 책들을 정리할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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