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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워내는 봄

by 콩소여 Mar 03. 2025

  3월. 약동하는 봄이 주는 생명력에 아찔함도 잠시, 폭풍처럼 몰아닥친 개학은 창밖을 내다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개학 첫날부터 변기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통째로 빠뜨리며 새 학기를 응원해 주는 아들 덕에 안 그래도 바쁜 아침을 더 정신없이 보낼 수 있었다.


  우당탕탕 정신없이 온 가족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아들들의 ‘엄마 사랑해’ 인사 세리머니까지 끝낸 뒤에야 나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 5분. 그제야 담벼락 옆에 삐죽삐죽 올라온 연두색 새싹들로 봄을 오롯이 느꼈다.


  신학기 시작 후 바로 다음 날 학부모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 자살 고위험군 학생이었다.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심각했다. 아이는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자해라는 수단으로 빠르게 마음의 아픔을 해결하며 극단적인 선택도 시도해 본 적 있는 아이였다. 우울증 약은 먹고 있지만 상담은 거부한 상태였다. 굳게 다문 입은 도통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학생 위기관리 위원회가 열렸다. 학부모와의 상담 내용과 2주간 학생을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센터 연결, 집단 상담 교육, 부모 교육, 특별활동 수업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여러 선생님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이 아이에게 실제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반에서 마주해야 하는 이 아이는 오롯이 담임교사인 나의 몫이었다.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줄 따뜻하고 재밌고 교훈적인 이야기,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독서 교육, 자기 성장을 위한 플래너 쓰기도 꾸벅꾸벅 조는 아이에게 전달될 리 만무했다. 불면증까지 찾아와 이미 정신 건강이 응급상태인 아이였다. 겨우 놀이 활동 때에만 잠깐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마저도 피곤한지 보건실을 자주 찾았다.


  프로 자해러들의 특성에 관해 설명한 책도 찾아 읽고 여기저기 구할 수 있는 조언도 구해보았지만 도저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닫힌 아이의 마음 문손잡이는 오직 그 아이의 마음 안쪽에만 있었다. 나는 그저 그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아이가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너무 반가웠지만 또 그렇다고 티도 낼 수 없었다. 나의 물건에 관심을 보이면서 본인도 같은 것을 쓴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 둘의 대화는 그 아이의 취미인 그림으로 이어졌고 이윽고 며칠 만에 본인의 고민을 털어놔도 되냐며 말문을 열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린 아이의 하얀 손가락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팔토시를 내려 보여준 무수히 많은 자해 흔적과 이미 습관이 되어 끊을 수 없다는 상처들은 여리고 여린 아이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했던 일을 꺼내며 그땐 정말 무서웠다고 이야기할 때는 아이의 손이라도 덥석 잡아주고 싶었지만 되레 두려움이 앞섰다. 나의 반응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머리털 하나까지 곤두세우며 집중하여 말을 들어주었지만 도대체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학부모와의 전화 상담으로 아이가 본인 이야기를 시작했단 말을 전했다. 학부모는 뛸 듯이 기뻐하셨다. 부모님께도 절대 상처는 보여주지 않는데 담임 선생님께 정말 마음을 많이 연 것 같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 아이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안심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게 나란다. 무슨 말을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내가 과연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삶을 살기도 벅찬 내가? 전문 상담 자격증도 없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봄이 오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온 잎사귀들이 살아있음을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다. 그냥 오늘 하루가 소중하다. 그 아이 덕분에 매일 아무 일 없는 아침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같이 성장하고 있구나. 누군가에겐 너무 힘든 이 학교 가는 길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고개를 내민 새싹들 덕에 더 밝게 빛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는 봄처럼 왔구나.


  어느 책에서인가 읽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희망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친절한 손길과 말 한마디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어마어마한 희망을 전할 수 있다.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어두운 방 안에 작은 불빛이 생기고 누군가가 곁에서 마음 써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진심이 담긴 위로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고.


  ‘피워내느라 수고했다. 정말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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