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 대한 애착이 있어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던 내가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많은 물건을 버리고, 비운만큼 가벼워졌다. 그러나 너무나 소중해 버리지 못한 물건이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다. ‘꿈을 가꾸는 일기’라는 제목의 초록색, 노란색 속지가 꽤 두툼했다. 나의 기록의 역사는 4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기록물은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다.
학교 수업 시간에 활용하려고 창고에 케케묵은 상자를 들췄던 그날, 유일한 어린 시절의 기록인 일기장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려 그 시절 교장 선생님께 칭찬까지 받아 가문의 영광을 안겨준 6학년 일기장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건 분명 버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안 찾아본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뒤졌다. 책꽂이, 모든 서랍, 안방 침대 매트리스 밑도 샅샅이 뒤지고 옷방 구석, 창고에 상자들, 거실 소파 뒤 나만의 수납공간까지 살폈다. 일기장이 있을 만한 곳은 다 조사하고 또 다른 생활공간인 학교까지도 쥐 잡듯이 뒤집어엎었다. 이 작업을 무려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나 일기장은 나오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꿈까지 꿀 정도로 힘들었다. 꿈에서 그토록 찾던 일기장이 발견되어 여기저기 자랑하다가 깼는데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 보고자 신포도 작전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버릴 물건이었어. 죽을 때 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실 그동안 자주 꺼내서 읽지도 않았다. 세월이 지나도 역사적 가치가 있기는커녕, 쓰기 싫어서 짧은 동시로 그것도 베낀 글로 대다수를 채워서 쓴 재활용 종이 뭉치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큰따옴표가 유독 많은 이유도 짧은 대화 글로 줄을 바꿔 써서 빨리 일기장을 메꾸려는 나의 잔꾀였다.
그런데 그 엉터리 일기장도 수업할 때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일기라며 몇 번 써먹긴 했다. 아직 내 아들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 시절 나의 기록, 그때 내 생각들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아 다시 또 가슴이 먹먹해졌다. 신포도 작전도 소용없었다. 남편은 그때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과거에 집착하느냐고.
가끔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 기억을 붙들어 놓고 싶지만 어쩜 그리 시간이 없는지 메모 한 번 못 해보고 그냥 다시 잊히곤 한다. 생각이란 것이 본디 날뛰는 망아지 같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결국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다.
문득 내 평생의 기억을 모조리 글로 적으면 어떤 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글을 과연 누가 읽을까? 나 말고 관심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행여나 자식들이? 우리 아들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제자들은? ‘라테는 말이야’ 이야기만 늘어놓는 꼰대가 되기 전에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독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알아줄, 내 글을 읽어줄 독자들. 책을 쓰자. 책으로 쓰면 독자는 읽거나 안 읽거나 하는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제자들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그들은 아무리 지루해도 들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책을 써야 한다. 내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모두 책으로 써서 그 시절 친구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같이 웃고 떠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내 책이 나오면 굳이 어린 시절 일기장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다.
6학년 때의 글씨체가 가장 예뻤지만, 그것마저도 그냥 추억으로 남기자. 욕심을 비워야겠다. 사실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그토록 애타게 일기장을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감투 쓰기를 좋아했다.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쓰며 살아왔다. 오래된 일기장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다.
안타깝던 마음도 희미해져 단념하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일기장을 되찾았다. 그토록 찾을 땐 안 보이더니 마법처럼 어느 순간 내 앞에 있었다. 이게 뭐라고 참. 기쁨도 잠시 일기장은 다시 또 창고행이 되었다. 그래도 이번엔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그러나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결국 내 기억뿐이다. 먼 훗날 혼자 있을 때, 손 하나 까딱 못하고 누워만 있을 때도 날 과거로, 여행지로, 기쁘고, 슬펐던 순간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기록이 늘어갈수록 생각할 거리가 늘어난다. 간직할 일기장의 권수에 집착하기보다 현재를 더 알차게 살면서 글을 써야겠다.
안녕하세요? 콩소여입니다. ^^
일상의 순간 속에서 작은 도전, 나만의 새로운 시선, 성장의 장면을 담고 싶었습니다.
작은 콩 하나가 땅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듯, 제 글도 독자님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를 만들어내길 꿈꿉니다.
그동안 저의 두 번째 브런치북 “마흔에 들려오는 먼 북소리”를 읽고 응원해 주신 작가님, 구독자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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