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학 때가 되면 일주일씩 나 혼자 시골 외할머니댁에 맡겨지곤 했다. 내가 지낸 큰 집엔 나보다 각각 한 살, 두 살, 세 살이 많은 사촌언니가 세 명있었고, 그 건너 건너 집인 작은 집엔 또래인 사촌오빠와 사촌 언니가 있었다.
낮 동안에는 개천에서 송사리도 잡고, 산에 올라가 가재 잡는다고 돌도 들춰보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다니기도 했다. 배밭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비닐을 깔아 밭에 물대는 기계로 물을 받으면 작은 수영장이 만들어졌다. 배를 종이로 싸는 농사일도 조금씩 거들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
여름방학마다 누볐던 그때의 논이며 밭이 개발되어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 빼고는 이곳이 논밭이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바뀌었다. 나도 그중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근처 그나마 천이 흐르고 아직 남아있는 논밭 사이 길로 달리러 나가면 그때의 생각이 조금씩 나곤 한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한 부분인 이곳이 사실 어머니에겐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는 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문득 깨달았다.
첫째를 낳고 이제 막 엄마가 되어 나눌 이야기가 한참 많은데 갑작스레 어머니는 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 귀담아듣지 못한 게 후회되었다. 그때 그곳을 내가 매일 달리고 있다고, 어머니 당신의 고향에서 내가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여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고, 운전도 시작했고, 이곳은 정말 살기가 좋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책도 지금 내가 많이 읽고 있고, 사실은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댁에서 나 혼자 외로웠다고. 이렇게 할 이야기들이 넘쳐나는데…….
지금 나는 이 넘쳐나는 이야기들을 ‘삶쓰기 커뮤니티’에서 나누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방황하다 우연히 도서관 자서전 쓰기 강의를 들으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나눌 사람이 더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글로 써서 나누는 모임이 생겼다. 나의 어린 시절을, 삶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글로 담고 그것을 서로 나눈다는 것은 나에겐 ‘집밥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친정어머니’와 같은 의미이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이야기, 나무에 관련된 깊은 생각들, 학교에서 벌어지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야기, 주말농장 이야기, 중년 여성이 우아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늘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다.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이렇게 건강한 관계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늘 아쉬움이 남고, 친구와의 대화도 주제가 한정적이다. 매일 보는 동료들과, 동네 친구들과도 똑같은 수다만 이어진다. 그러나 삶을 글로 쓰고 그것을 나누는 시간은 서로에게 진실되고 더 깊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가 물었다. 네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게 무엇이냐고. 삶의 활력이 되는 비타민 같은 ‘친정어머니와의 수다’. 나이 마흔에 찾은 글쓰기 모임이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 이렇게 함께하게 되었을까. 각자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다. 내 삶의 조각들을 글로 써서 예쁘게 다듬어 공유하는 시간. 나는 늘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