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달이의 어린이집 생활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생님들의 배려 속에 잘 지내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 한채.
꼬달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직장 건물 내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증설을 위해 현재 건물 바로 옆에 단독 어린이집 건물이 공사 중에 있었고, 내년에는 3층 건물로 된 깨끗하고 크고 좋은 시설의 어린이집으로 이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린이집 이전으로 원장 선생님도 바뀔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꼬달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을 도착했는데 원장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원장 선생님은 내년에는 아마도 본인이 없을 것을 염려하며, 나에게 조언을 해주셨다. 꼬달이가 내년에 5세 반이 되면 새로운 원장 선생님께 보조교사를 붙여달라고 부탁하라는 것이었다. 그게 꼬달이를 위해서도 담임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꼬달이가 말만 하게 되면 정말 잘 성장할 거란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다.
새것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어린이집 건물은 반짝반짝 예쁜 새 건물로 완성이 되었다. 3층짜리 건물에 모래 놀이터, 편백나무 놀이장, 급식실까지 좋은 시설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새 어린이집은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하지만 으리으리한 궁전 같은 새 어린이집을 꼬달이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 당일 새 어린이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현관 입구부터 떼를 쓰는 통에 결국 안아서 3층 교실까지 올라갔다. 교실 안에서도 꼬달이는 울고불고하느라 바빴다. 그래 처음이니까 낯설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 오리엔테이션 하던 날을 마지막으로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모든 어린이집은 휴원에 들어갔다. 새 어린이집에 다시 등원하기까지는 석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야 했다. 아침에 우린 꼬달이를 시댁에 맡기고 출퇴근을 했다. 사태는 장기화되었다. 결국 긴급 보육이 실시되면서, 아이를 맡길 곳 없는 부모들은 하나둘 다시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시 꼬달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기로 한 시점에는 이미 꽤 많은 아이들이 등원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사이 꼬달이에게 어린이집은 아주 낯선 곳이 되어 버렸다. 새로운 건물, 교실, 새로운 선생님들, 새로운 친구들까지. 처음에는 당연히 적응하는 게 어려울 거라 예상했다. 어차피 적응해야 하니, 우린 며칠을 지켜보고 전처럼 하루 종일 꼬달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일주일 정도는 아침 등원마다 울음바다였지만, 그래도 울음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기에 나는 꼬달이가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꼬달이가 아직 말을 못 하니, 어린이집에서 꼬달이가 겪었을 상황과 심리 상태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보낸 사진 속에서 꼬달이가 밝게 웃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우리 아이는 어느 반으로 가야 하나요?
어린이집을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 담임의 말은 항상 부정적으로 들려왔다.
“어머님, 꼬달이 아직도 기저귀를 못 뗐어요? 저희 반에서 꼬달이만 기저귀를 하고 있어요.‘
“어머님, 꼬달이 마스크 쓰는 연습 좀 집에서도 부탁드려요. 꼬달이만 마스크를 안 써서 바깥나들이를 못 나갔어요”
“어머님, 꼬달이가 교실을 이동할 때마다 많이 울어요. 제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요.”
담임은 꼬달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교실을 탈출하고, 수업 활동 중에 선생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나는 하원을 시킬 때마다 담임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담임의 표정이 좋지 않은 날은 우리 꼬달이 때문에 힘들었나 걱정이 되었다.
결국 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담임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우리 아이 반에 보조교사를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원장은 지금 교사 정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을 위해 보조교사를 배치할 수 없다며, 대신 1층에 새로 개설된 반으로 이동을 권유했다. 1층에 새로 개설된 받은 특수반이었다. 원장은 특수반으로 가게 되면 보조교사도 있고, 꼬달이에게 맞는 보육이 이루어질 거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런 성향의 아이들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는 듯.
특수반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원장의 말을 듣고 폭풍전야처럼 머릿속이 소용돌이쳤다. 또래들보다 발달이 조금 느리다고 특수반으로 가야 하다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싶었지만, 너무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가 속 썩이는 상황은 사춘기나 되어야 만날 거라 생각했다. 원장과 담임 사이에서 계속되는 전화통화와 상담으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호출된 학부모처럼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꼬달이가 잘못 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무언가 특별한 치료나 보육을 바라지 않았다. 이미 꼬달이도 언어 및 감각통합 치료실을 다니고 있고, 꼬달이가 마음 편하고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뿐.
나는 원장에게 담임 및 보조교사 명확한 배치와 하루 일과 계획을 요구했다. 원장은 특수반으로 가면 우리 꼬달이에게 엄청 좋을 거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특수반 교실의 상황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특수반 담임은 정교사를 채용하지 못해 전문교사가 아닌, 관련 수업을 이수한 기간제 교사였고, 보조교사 또한 오전에만 근무를 했다. 더욱이 오후 3시 정도면 다른 친구들은 일찍 하원을 했다. 저녁 6시에나 하원 할 수 있는 꼬달이는 오후에는 교실에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이 예상되었다. 그 반에는 중증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어, 담임선생은 그 친구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간만 흘러갈 뿐, 교사 문제도 하루 일과 계획에 대해서도 원장과 현 담임선생에게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원장과도 몇 번의 상담과 전화통화가 이어졌고, 담임은 담임대로 변명과 힘듦을 토로할 뿐이었다.
나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린이집 생활이 어떤지 꼬달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히 알고 싶었지만, 말 못 하는 꼬달이의 마음을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직감으로 내가 힘든 만큼, 꼬달이는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