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가 미술학원에서 스티커 만들기를 했다.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 색연필 칠하고 대충 오린 것 같은 스티커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였을 것을 안다. 그리기에 진심인 아이는 색깔 하나를 칠하는데도 그러데이션을 넣는다. 초록 하나를 칠하는데도 삼 색이 기본이다. 구슬이 방울 소리를 내는 것 같이 입체감이 살아있다.
그런데 아이야 핸드폰 가방에는 왜 붙였냐? 가방 전면에 그림이 많은데... 그 스티커 떼어질까? 끈적함이 오래오래 계속되겠지? 아니면 평생 스티커를 붙이고 다닐 테냐?
나는 떼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책가방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작고 납작한 봉지를 벌리자 ‘핸드메이드’ 스티커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엄마 이쁘지? 삼일 동안 만들었어. 어디에 붙일까? “
‘네 가방에 붙여라. 내 가방에는 안 된다. “
복실이의 핸드폰 가방이 예쁘다. 내 가방이 아니니 괜찮다. 아이가 만족하면 그것으로 나도 족하다.
내 가방 고리에는 이미 복실이의 만들기가 두 개나 달려있다. 가방을 들고 걸어 다닐 때마다 덜렁거리며 소리를 낸다. 때로는 고리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세 개 달았던 열쇠고리를 하나는 떼버린 것이다. 보석과 리본, 얼굴과 하트, 만두를 넣은 주머니 열쇠고리, 그건 책상 위로 옮겼다. 남편도 복실이의 은혜를 입어 가방에 하나 달았다. 군소리 없이 달고 다니는 모습이 재밌다.
아이는 자꾸 나한테 만들기 한 걸 갖다 준다. 실력이 늘어 대량생산을 해 온다. 그냥 하나씩 만들어와도 양이 많은데... 그래도 스티커는 종이니까 부피가 크지 않다. 내 가방에 붙이기를 강요하지 않기를.
아이가 쏟은 노력과 정성은 가상하나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갖다 바치는 건 불편하다. 처치곤란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자꾸 보면 귀엽고 예쁘다. 내 아이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 만들기. 내 아이의 작은 손에 꼭 쥐고 만들었을 조그만 존재들이 나와 함께 있다. 보고 또 본다. 물건으로 보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본다.
만들기만 가져와도 많은데, 뽑기에 재미를 붙인 복실이는 자꾸 나한테 작은 녀석들을 갖다 준다. 엄지손톱만 한 작은 물건이다. 어제는 초록 개구리 한 마리를 받았다. 책상에는 알에서 반쯤 깨어난 정체 모를 민머리의 생명체가 있다. 복실이가 만들어온 저금통 위에 두 마리가 사이좋게 앉아있다. 내 책상이 아이의 안쓰는 물건 처리장은 아니리라. 아이의 마음을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