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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에 오지 마

by 눈항아리

“교문까지 오는 엄마는 우리 엄마밖에 없어.”

어느 비 오는 날 등굣길에 우리 넷째 복실이가 그랬다. (복실이는 3남 1녀 중 막내딸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20분을 달려와 골목길에 주차를 하고 기사님 포즈로 내려 아이가 탄 방향의 문을 열어준다. 딸아이는 제 몸 하나를 챙기기 바쁘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책가방은 바닥에 있고 물병이 떨어져 있는 날도 있고 가방이 열린 날도 있다. 가방을 챙겨 들어주면 짧은 다리로 깡충 뛰어내리며 팔 한쪽을 밀어 가방끈을 얼른 끼우고 학교로 출발했다. 골목길엔 차들이 많아서 위험하니까,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교문까지 걸어간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꼭 어깨를 감싸 안고, 손을 잡고, 허리를 껴안고 있는다. 교문까지 가선, 쪽쪽 뽀뽀를 해대고 안고 있다가 둘 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곤 했었다. 매일 보고 옆에 있어도 아침의 등교시간의 헤어짐은 그렇게 아쉬울 수 없다.


그 일을 어디 초등학교 들어와서만 했겠는가. 어린이집 다니던 때는 더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아이는 그냥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어린이집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매일 무수한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보도블록 밟는 놀이를 하며 현관문까지 걸어가고, 때로는 딸아이가 아침의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몇 번만’을 외치기도 했다. 현관문을 거쳐 2층 아이의 반으로 올라가는 계단 참 창가에 기대어 우리는 또 인사를 했다.


잠시 헤어지면서도 우리의 애정행각을 끝날 줄 몰랐다. 머리 위로 두 손을 올려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 보내고, 입술에 손을 올렸다가 뽀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후 날려 보냈다. 두 손을 가슴께로 가져가 네 손가락의 손톱이 마주 보도록 만드는 두 손 하트를 보내고, 손가락 하트, 눈 윙크를 연달아 보내고도 성에 안 차서 꼭 안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랬다. 전교생과 선생님이 다 보는 앞에서 딸과 나의 꽁냥꽁냥 사랑표현은 계속되었다.


“엄마 오늘은 학교 째면 안 돼?”

나는 그 말이 정말 좋다. 나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말 같아서. 멀쩡한 엄마라면 ‘아이가 학교에 안 가고 싶은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하고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나는 다르다. 학교야 하루쯤 빠지면 어떤가. 아이를 꼭 안고 교문 반대쪽으로 가는 척하며 “그럼 엄마랑 가자.” 그런다. 슬쩍 아이를 끌면 교문과 차 사이에서 고민하던 내 예쁜 딸. 아이는 미련을 가득 담은 몸짓으로 천천히 나에게서 떨어진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라고 말하며 늦은 등교 시간이 그제야 생각났는지 정신없이 달려가곤 했다. 나는 늘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교문에 서서 기다렸다가 돌아섰다. 아이가 뛰어가면 그제야 나도 뒤돌아서 출근길에 올랐다. 몇 년을 그랬는데...


아이가 그 말을 한 것이다. “교문까지 오는 엄마는 우리 엄마밖에 없어.” 교문까지 오는 엄마가 나뿐이라니. 3학년이나 됐는데 이제는 엄마를 달고 학교 앞까지 가는 것이 창피한 것이다. 딸아이는 오늘도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멈칫했다. 교문 앞엔 이제 그만 가야 할까.



아침의 교문에 가기가 힘들다면, 오후의 학원 앞으로 가면 된다. 남편에게 꽈배기가 먹고 싶다 둘러대고 산책을 나갔다. 당연히 딸아이가 끝나는 시간에 딱 맞췄다. 가는 길에 꽈배기를 사들고 학원에 들러 딸아이 손을 잡고 가게로 돌아왔다. 걸어오는 길 우리는 길가에 앉아 연둣빛 수국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같이 사진을 찍고 ‘하하 호호’하며 즐거웠다.


어느 날은 학교가 끝나고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다가 피아노 학원 가면 안 돼? 미술 차는 안 타고 걸어갈 수 있어.” 긍정의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딸아이가 간다는 놀이터에 나의 영혼은 이미 가서 지키고 서 있었다. 아이 혼자 거리를 걸어 다닐 수도 있고 가게도 찾아오고, 문구사, 편의점에도 간다. 놀이터도 친구들이랑 갈 수 있는 걸 안다. 친구와 놀아봤자 20분 정도인데 그걸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라는 엄마는 아이가 다 커버려서 내 손을 떠나는 게 두려운가 보다. 놀이터까지 뛰어서 갈까 생각하다 꾹 참았다. 그냥 차를 끌고 멀리 있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카트에 먹는 걸 잔뜩 실으면서 허한 마음을 달랬다. 6인 가족 일주일치 식량을 한꺼번에 살 생각을 하고 온 마트를 돌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의 셋째 달복이였다.

“엄마, 피아노 끝났는데 비가 엄청 와요.”

동생과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달복이에게 엄마가 당장 데리러 가겠으니, 비 맞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동생 피아노 수업이 끝나면 같이 기다리라고 했다. 바람과 같이 계산을 끝내고 비 내리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카트를 끌고 달렸다. 딸아이 레슨이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 학원 앞에 도착했다. 비 내리는 날 데리러 오는 엄마, 나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막내도 커간다. 아들들이 커버린 것처럼 딸아이도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어느 날 오빠들처럼 훌쩍 커서 내 키보다 커버릴지도 모른다. 학교 앞에 데려다주는 게 뭐 이상하다고 그러는 건지. 오후에 눈치코치 보며 열심히 데리러 다녀야겠다.


나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아이를 뒤를 쫓아다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상한 엄마다. 아이를 응원해줘야 하는데 그건 조금 더 미뤄두고 싶다. 최대한 뒤로 뒤로. 아이가 커간다는 건 내 손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금방 나를 떠나갈 수도 있다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때까지 열심히 쫓아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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