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먹을 수 있을까
복실이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밥을 얼마 못 먹었다.
저녁에 영어 화상 수업이 끝나고 나면 더 먹을까 했다.
영어 수업은 30분 컴퓨터 앞에 앉아 듣는다.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감감무소식이다.
“엄마 선생님한테 전화해 볼까? ”
그럼 선생님한테 ‘복실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하고 문자 보내봐.
문자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복실이는 책상에 앉아 몸을 배배 꼬았다.
“엄마 배 아파.”
“화장실 다녀와. 선생님 들어오면 엄마가 복실이 화장실 갔다고 얘기해 줄게.”
복실이는 아픈 배를 참으며 30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은 왜 안 들어오지? 수업을 잊었나 봐.”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겠지.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고. 전화를 못 할 정도로 급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어.”
복실이는 답답한가 보았다.
평소 같으면 나도 씩씩거리며 화를 내면서
제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선생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해 봤을 텐데.
아이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그럴 수도 있다며 말했다.
내가 좀 근사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이 앞에서 나는 멋진 엄마인 척을 잘 한다.
복실이는 컴퓨터 앞에서 사람 눈을 열심히 그렸다.
나는 읽던 책을 신나게 읽었다.
둘 다 급할 게 없어서 그렇게 여유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 30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선생님은 아파서 약을 먹고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한다.
수업을 바로 할 수 있냐고 복실이에게 물었다.
복실이는 아픈 배를 살살 달래며 30분 화상 수업을 했다.
장하다 우리 복실이.
수업이 끝나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난리였다.
엄마, 나는 죽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러면서 집에 갈 때는 가게에 있는 새우라면을 챙겼다.
엄마 아침에 라면 죽 해줘.
라면 죽이라니 그런 죽이 있었던가.
이탈리아에는 스파게티 죽도 있다는데
라면 죽이라고 없겠는가.
그저 끓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본 라면 죽, 정말 있다!
복실이 덕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
라면을 끓이다 밥을 넣고 푹 퍼지게 끓이면 되는 건가?
좀 더 연구해 봐야겠다.
라면이 불어터지면 안 될 것도 같고...
밥맛 없을 때 끓여 먹으면 되겠다.
그런데 배가 아플 때 먹는 죽은 아닌 것 같다.
“라면죽은 배가 아플 때는 좀 그래.
다른 죽 먹고 싶은 거 없어?”
라고 묻자, 아이의 입에서 다다다 쏟아져 나오는 죽들.
햄버거 죽, 피자 죽, 빵죽, 아이스크림 죽...
복실이의 세계에서는 안 되는 죽이 없다.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달복이가 그런다.
“오빠가 빵죽 줄게. 자 받아. 죽빵!”
못 말리는 오빠다.
“복실아 이번에는 본죽을 줄게.”
본죽은 뭐냐고 물으니,
본 사람은 다 죽는 죽이라고 했다.
‘복실아 죽을 먹으면 안 되겠다.’
세상에 너무 위험한 죽이 많다.
“얘들아, 옛날 임금님은 아플 때 타락죽을 먹었대. 타락 죽은 어때?”
“안돼, 타락죽 먹으면 천사가 악마로 변하는 것처럼 타락할 것 같아. ”
“맞아, 타락 천사가 되면 어떡해. ”
죽이 척척 맞는 남매다.
복실이는 집에 와서 체온계를 들고 다니며
스스로 열을 쟀다.
열은 안 났고
배는 괜찮았다.
학교에 가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아침은 죽 말고 밥으로 먹었다.
고추참치에 마요네즈를 쓱쓱 비벼 맛나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