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는 오늘도 옷이 없다. 왜 옷이 없을까. 누구나 아침마다 하는 고민이다.
복실이는 오늘도 목티를 입었다. 흰색, 검은색, 회색 중 회색을 입었다. 그 위에 뭘 입을까 고민하다 나를 찾아왔다. 복실이는 바쁜 아침 엄마 손을 잡고 장롱으로 간다.
민트색 바탕에 곰모양이 앞 뒤로 새겨진 티셔츠를 꺼내 복실이에게 입으라고 건넸다. 머뭇거리더니 금세 목과 팔을 끼웠다. 그러곤 짧은 걸 보라는 듯 팔을 위로 올려본다. 딱 맞는 것 같은데 복실이는 짧다고 한다. 지난해 좀 크게 사서 잘 입고 다닌 옷, 한 해 더 입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색깔도 곰도 마음에 안 드나 보다.
키가 크고 마음이 자라고 스타일이 바뀌는 아이. 한 해 한 해가 다른 아이. 복실이는 곰돌이 옷을 벗어 재꼈다.
이번에는 회색 바탕에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었다. 너무! 진짜! 정말! 잘 어울린다고 눈을 반짝이며 예쁘다고 하며 줄줄이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파란 글씨 색깔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가 보았다. 옷이 좀 작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곰돌이 옷 보다 훨씬 나았다. 복실이는 옷에 뚫린 구멍 사이로 머리를 느릿하게 집어넣었다. 그렇게 회색 얼굴이 되어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엄마 설거지도 해야 한단 말이야. 빨리!”
내가 재촉하자 아이가 말했다.
“설거지는 저녁에 해도 되잖아.”
‘그렇지?’
아침 설거지를 꼭 하고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복실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꼭 아침에 설거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저녁에 하면 어떤가. 나는 왜 고작 하찮은 설거지 하나 때문에 조바심을 내며 아침부터 아이를 닦달하는 걸까?
아이의 주옥같은 한 마디에 주방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복실이의 손을 잡고 머리를 매만져주며 옷 입는 걸 봐줬다. 아이는 여전히 옷을 머리에 씌우고 장난을 친다. 옷으로 가려진 아이의 회색 얼굴과 장난을 주고받았다. 코를 그러쥐고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공격했다. 한참 웃고 나서야 아이는 옷 밖으로 얼굴을 내놓았다.
어렵사리 옷을 챙겨 입은 아침, 복실이의 옷태를 챙겨 본다. 목티 밑단을 바지춤에 넣어 주고, 허리 위로 올라간 회색 티셔츠의 짤막한 허리 단을 쭉 잡아당겨 엉덩이까지 내려줬다.
복실이는 회색 바탕 파랑 글자 옷을 입었다. 외투는 어제와 다르게 짧은 것으로 골라 입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 날씨를 가늠해 보고 스스로 짧은 잠바를 챙겨 입었다.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고 행동할 줄 안다. 불만도 표할 줄 안다. 복실이는 교문에 들어설 때까지도 입이 뾰로통했다.
겨울 티셔츠를 사줘야겠다. 아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택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스타일이 생기는 나이, 복실이는 이제 그런 나이인가 보다.
그런데 복실이가 옷을 사면 내일 입을 옷이 있을까? 그다음 날엔 또 입을 옷이 있을까?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 건 매일이 같을 테다.
나도 매일 골라 입어야 하는 옷 때문에 골머리 꽤나 썩던 사람이다. 언제부터 그런 걱정이 없어졌는지 모르나 이제는 그런 걱정을 안 한다. 대신 거의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 패션도 모르고 우중충하다.
그러나 스타일이 별 볼 일 없는 나도 좋아하는 옷의 종류가 있다. 매일 빨아도 보푸라기 안 나는 옷을 좋아한다. 잘 안 늘어지고, 잘 안 줄어드는 옷을 좋아한다. 잦은 세탁에 강한 옷이 최고다. 빠르게 마르는 옷도 좋아한다.
추우면 더 걸치고 더우면 얇은 옷을 입을 뿐, 대충 걸치고 다닌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옷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복실이는 청소년기 소녀의 스타일, 나는 주부 맞춤 실용성이 있는 옷을 선호하는 것일 뿐, 입는 것에 우리는 둘 다 깐깐하다. 그리고 선호도는 날마다 해마다 유행 따라 바뀐다. 나도 예전에 튼튼하고 빨래 잘 되는 옷만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니까. 이해한다. 이해해야 한다. 아이의 스타일은 더욱 많이 자주 바뀔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