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들을 태우는 날은 북적거린다. 꼬마들은 재잘거리는데 큰 아이들은 목소리부터 걸걸하다. 여드름 투성이 둘이 오랜만에 나란히 앉았다. 복동이가 난데없이 엄마 뒷자리로 온 것이다. ‘왜 옆자리가 싫으냐? ’ 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 심경의 변화가 있나? 엄마의 눈길을 피하고 싶나? ‘ 저희들이 정한 ‘조수석에 타기‘ 규칙을 바꾼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게 뭐든 의심스럽다. 캐봐야겠다. 엄마의 민감한 더듬이에 걸려든 복동이.
큰 덩치 둘을 더 태우니 차가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존재감이 남다른 청소년들이다. 시간에 쫓기면 더욱 존재감이 커진다. 5분이라는 시간이 귀해지는 아침. 체육복 싸움이 벌어졌다.
복이의 체육복 긴팔을 형 복동이가 입고 차에 떡하니 앉아 있다. 복이는 분명 체육복을 소파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씻고 왔더니 옷이 없어졌다. 이리저리 찾다 차에 왔더니 형이 제 옷을 입고 있는 거다.
“왜 내 옷 입어! ”
“나한테 딱 맞아. ”
태연하게 말하며 제 옷인양 입고 있는 아이의 말에 기가 막히면서도 웃음이 난다. 옷을 빼앗긴 동생의 마음은 안 봐도 뻔하다. 열불이 날테다.
복동이는 왜 복동이의 옷을 입을까. 이건 복이가 올봄 입학을 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다. 복이의 체육복이 한 치수 작다. 복동이도 1학년 입학할 적엔 제 옷이 딱 맞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옷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아이가 몸무게 감량으로 몰라보게 날씬해진 게 문제다. 제 몸에서 8킬로그램을 덜어내고 나니 교복이 너무 커진 것이다. 교복은 그나마 잘 입고 다니지 않으니 괜찮다. 체육복 바지는 고무줄이라 줄줄 내려간다. 그래서 고무줄을 새로 넣어줬다. 문제는 긴팔 체육복이다. 체육을 할 때 너무 길고 헐렁거리는 팔 때문에 움직이기 불편하단다. 봄부터 투닥거리며 동생 옷을 빼앗아 입어 분란을 만들었다. 그럼 작은 치수로 하나 더 사자니 그것도 싫다고 했다. 어쩌자는 말인가. 가을이 되며 긴팔 옷을 입으니 다시 불거진 문제다.
“내 옷 좀 안 입으면 안 돼?
“네 옷 좀 입으면 안 돼? “
능청스러운 형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도 옷은 절대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급기야 체육복을 능가하는 옷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3 개월만 네가 참아. 형아한테 양보 좀 해. ”
“싫어. 내가 왜? ”
“그럼 월, 수만 내가 입을게. ”
“싫어. “
”체육 있는 시간에 너희 반에 빌려 입으러 갈게. “
”안 빌려 줄 거야. “
실제로 정말로 1학기에는 동생 반에 체육복을 빌리러 간 적도 있는 형아다. 대단한 형아다.
‘그냥 사 입자 제발. ’
3개월 가족의 평화를 위해 엄마는 체육복을 하나 더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줄줄이 딸린 꼬마 동생들도 같은 중학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형 회색 고양이 티 그것도 입지 마. 그거 내 거야. ”
“너도 내 옷 다 입잖아. ”
그들의 옷싸움은 끝이 없다. 운전자는 말없이 웃는다.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녀석들 유치하게도 싸운다.
기름이 떨어져 간다. 어젯밤 아침에 주유를 해야 하니 평소보다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모두에게 공지를 했다. 빠듯한 아침 시간 5분 일찍 나온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옷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더 늦어 버렸다. 결국은 복동이가 제 체육복을 챙기러 집에 들어갔다 나왔다.
”기름 넣으러 갈 거야. “
”어머니 내일 넣어주세요! 제발! “
둘이 합심하여 엄마에게 말한다. 둘이 똘똘 뭉쳐 주유소에 들어가지 말라고 난리다. 금방 한 마음이 될 거면서 싸우기는.
가게까지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을 것 같은 기름 게이지. 주유소로 들어갈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그냥 지나쳤다. 내가 들르는 주유소는 직원이 손수 넣어주는 주유소다. 다른 곳은 죄다 셀프로 넣으란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 추적추적 비를 맞아가며 기름을 넣어야 할까? 고민이 안 될 수 없다. 하지만 엄마는 옷 때문에 싸움도 한 아들들에게 큰 맘먹고 양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