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보조기 그녀 걷다

by 눈항아리

“그 사람이 누구야? 같이 운동하는 사람이야? ”

“그 할머니 몰라? 왜 매일 차 타고 집에서 나오다 보면 도로에 걸어 다니는데 못 봤어? ”

“난 못 봤는데. ”

남편의 눈과 나의 눈이 다르고 움직이는 시간도 다르니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일정하게 정해진 보행자라고는 시골길에 딱 한 명뿐인데 그녀를 못 봤다니. 이미 몇 년을 봐와서 나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해진 그녀를 모른다니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우리는 부부지만 다른 세상을 보며 산다. 심지어 같은 길로 출퇴근을 하고 근무도 같이 하는데도 그렇다.


그녀는 이런 사람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우리의 출근시간에 맞춰 운동을 하러 나온다. 그녀가 우리의 출근 시간에 맞춰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그녀의 운동 시간을 맞춰 나오는 건가? 그게 뭐든 같은 길에서 매일 마주치고 내 눈에 띈다는 게 중요하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몇 년 출근길에 매일 만나다 보니 매일 만나는 들녘과 같이 친근한 존재가 되었다. 풍경화의 배경과 같은 사람. 수많은 군중이 그림의 배경이 될 수 있듯이 매일 지나치는 그녀는 자신의 발자국 궤적만큼의 인영을 매일 길게 늘어뜨려 여러 명의 효과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로 휙 지나쳐 가며 빠르게 훑어본 그녀는 여느 시골 할머니처럼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다닌다. 허리는 굽었으나 산고개처럼 곡선이 아니다. 엉덩이와 머리를 잇는 직선과 엉덩이와 다리를 잇는 직선 사이의 각이 존재하는 강직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 자세로 두 손을 쭉 뻗어 보행보조기를 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보행보조기에서 잠시 한 손을 떼고 허리를 약간 펴고 팔을 쭉 뻗어 휘휘 젓곤 한다. 빠르게 옆으로 지나가는 차는 신경도 안 쓴다. 처음 팔을 저을 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차를 세우라는 줄 알았다. 매일 보는 그녀는 지나가는 차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운동에 온 정신을 쏟고 있다.


두세 시간 늦게 출근하는 날이면 그녀의 앞모습을 볼 수 있다. 굳건한 입매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졌다. 검게 그을린 피부, 동글동글 굵게 말린 희끗한 파마머리는 젊은 시절 시골에서 농사 좀 지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듯하다.


보행 보조기는 끌고 다니는 의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느 날 그녀는 도롯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시골길 어느 곳이나 그러하듯 인도는 없다. 도로로 툭 튀어나온 의자와 그녀의 몸이 쌩쌩 지나가는 차들 옆에서 불안해 보였다. 그러나 자유분방하면서도 굳건한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너른 들판을 감상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뒷모습으로 또 갑자기 팔을 쭉 뻗어 휘저었다. 운동이 생활화된 그녀다. 가끔 앉아 쉬는 걸로 봐 선 운동 중 쉬는 시간이 있는 듯하다.


어느 날은 둑방으로 갈라지는 길에 멈춰서서 하얀색 기다란 무언가를 얼굴에 대고 있었다.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폴더 핸드폰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긴히 누군가와 통화 중인가 보다 했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은 이제 궁금증을 자아낸다. 누구와 통화 중일까? 그것이 궁금할 게 무어 있다고 관심을 두는 걸까?


평소 꽃무늬 옷을 즐겨 입는 그녀는 비 오는 날이면 얇은 일회용 우비를 입고 나온다. 눈 오는 날은 본 적이 없지만 비 오는 날 운동은 거르지는 않는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빗물이 하얀 거품을 내며 도로에 흘러내리던 날 하얀 비옷을 입고 걷던 그녀를 갑자기 발견하고선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며칠 전에는 노란색을 입고 우산 없이 걷고 있었다. 두 손은 늘 그렇듯 보행 보조기를 잡고 있어야 하므로 우산을 쓸 수 없다.


그녀는 왜 매일같이 걷는 것일까. 이곳 시골까지 걷기 열풍이 불어서일까? 의사가 매일 걸어야 한다고 했을까?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걸까? 노인 대학에서 하는 아침 수업에 가는 걸까? 그녀가 걷는 말든 왜 나는 그녀가 궁금할까? 그저 지나가는 행인일 뿐인데.


처음에는 도로를 휘저으며 다니는 그녀가 이상해 보였다. 보행보조기에 일부 의지해 걷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데도 매일 나오는 그녀에게 동정심도 일었다. 팔을 뻗어 휘저을 때는 ‘태워드려야 했나? ’하고 생각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그녀의 존재가 시골길에서 두드러져 보였다. 매일 운동하는 끈기와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나이가 들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사는 노인이 된 미래의 나는 저렇게 자신 있는 걸음걸이를 가질 수 있을까? 끈기를 가지고 매일 움직일 수 있을까? ’ 생각하게 되었다.


시골에는 보행자가 걸어 다닐 인도가 드물다. 인도가 있는 길은 면사무소가 있는 큰길이나, 학교가 있는 도로 앞 조금뿐이다. 때문에 논과 밭이 펼쳐진 시골길에서 차든 사람이든 농기계든 같은 길로 다닌다. 그곳이 도로인지 아닌지 어떤 길인지 중요하지 않다. 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 위험해 보였지만 그녀는 그냥 걸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그녀가 걷는 곳이 그녀의 길이 된다.

움직이는 것은 그녀의 삶이다.


그리고 그녀의 걸음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눈에 들어와 마음을 톡톡 두드렸다. 매일의 걸음이 쌓여 어느 순간부터는 그녀가 멋지게 보였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시골길을 매일 걷는 그녀와 같이 나도 매일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녀와 다른 길이지만 나에게 길을 열어 준 것이 그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그녀처럼 나이가 들어 100살 할머니가 되어도 열심히 걷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만하며 모르는 그녀가 친근해진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걱정이 된다. 가끔 그녀의 출발지와 터닝포인트가 어디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 들녘에서 누구와 통화를 했을까? ’이런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지만 말이다.


그녀처럼

나는 나의 길을 걷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길을 만드는 사람.

타인의 눈에는 좀 괴짜 같아 보여도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꿋꿋하게

내 길을 만들어 걷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나의 튼튼한 다리로 걷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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