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이 변변찮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밥을 푸고 김 봉지를 뜯어서 놔주고 김치를 놔주었다. 계란 프라이 하기도 빠듯한 날이 있다. 자주 있다. 있는 과일을 죄다 꺼냈다. 사과, 귤, 키위. 매일 없는 과일이 세 가지나 있는 날이 또 있다.
“엄마 오늘 밥은 과일 삼종 세트네요. ”
달복이가 말했다.
바쁜 아침엔 무엇이든 뱃속에 넣을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넣으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밥에 김을 얼른 싸서 한 입 먹어라. 따끈한 밥에 김치 하나 올려 얼른 한 입 먹어라. 그리고 밥이 안 들어가면 과일 한쪽이라도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어라. 10분이 주어지기도 하고 길게는 30분이 주어지기도 한다.
과일 삼종 세트라고 예쁘게 포장해 준 달복이의 말솜씨에 찬 없는 아침 상이 빛나는 것만 같았다. 과일을 밥 삼아 반찬 삼아 먹는 달복이에게는 진수성찬이다.
그러나 과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복동이에게는 식후에 하나 집어 먹는 것이 과일이다. 과일을 한 입 먹기 힘든 복이에게는 최악의 식단이다. 그나마 키위 반 개는 입에 넣었다. 밥을 얼른 해치운 뒤 껍질까지 까 놓은 동그란 귤과 사과 두 쪽이 담긴 식판을 들고 일어선다. 설거지 통에 담근다. 귤을 괜히 깠다. 껍질이 얇아서 손에 귤물이 다 들었는데 정성을 생각해서 한 입 먹지 그랬니. 사과는 먹으면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아 그러려니 한다만. 귤을 한 입 먹지 그랬니. 작고 동그란 귤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려고 개수대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과일도 야채도 싫어하는 복이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아침밥을 거르는 날이 허다하지만 늦은 시간 5분을 쪼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으니 오늘의 김치찌개다. 어제도 먹은 김치찌개를 데워 식판에 퍼주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먹는 한국인 입맛을 아는 복이다. 어릴 땐 김치를 안 먹던 아이가 어느 날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파절이를 곁들여 먹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때 김치를 식판 좁은 곳에 놓고 젓가락으로 잘게 찢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꼬마들처럼 가위로 숭덩숭덩 작게 잘라주고 싶지만 그 모습을 보려고 조금 큰 것을 놓아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입 맛은 변한다. 김치찌개에 들어간 느타리버섯을 조용히 남기며 물끄러미 쳐다보던 복동이도 이제 팽이버섯은 잘 먹지 않는가.
나는 유달리 입맛이 까다로워서 어릴 때 뭐든 안 먹었다. 이제는 나물도 버섯도 다 잘 먹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먹기 싫은 것은 말없이 조용히 남기면 된단다. 조용히 옆에 놓아두어도 된단다. 남에게 내가 안 먹는다고 알릴 필요도 없고 나의 푸념을 내색할 필요도 없단다. 남기면 싫어하는구나 알아차린단다. 음식이 버려지면 알아차린단다.
그런데 동그란 귤 하나가 조용히 개수대로 굴러 떨어질 땐 마음이 좀 아팠다. 그래도 엄마인 나는 아이들의 식성이 음식을 받아들이는 그날까지 열심히 식판에 갖가지 음식을 놓아줄 것이다. 입맛은 변한다. 열심히 아이들을 먹이자. 골고루 먹이자. 몸에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먹이기 위한 엄마의 노력은 계속된다.
조용히 버려지는 귤을 나라도 먹으면 되었을 것을 왜 선뜻 그 동그란 녀석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 녀석을 구하지 않았을까? 나는 과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의무감으로 먹지만 아침부터 빈 속에 귤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되어도 먹을 것을 가리는 사람이 있다.
귤아 미안하다. 너를 구해주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