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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피카추가 날 노려본다

초2 글라스데코 정복기

by 눈항아리

복실이 그녀 글라스데코를 다시 들었다.


복실이가 지난번 다이소에서 사 온 글라스데코를 어느 구석에서 다시 찾아왔다. 종이 위에 물감을 짜고 선 복구하지 못해 엉엉 울었던 문제의 그 글라스데코.


이번에는 종이 위에 비닐을 올리고 시작했다. 엄마를 옆에 앉혀놓고 준비 땅! 비닐이 자꾸 움직이자 붙여달라고 했다. 손을 덜덜 떨며 검정 물감을 짠다. 검정 테두리를 긋고 마르는데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 하루 걸린다고 하였다. 복실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설명서를 이리저리 읽어보고 한 시간이면 마른다면서 의기양양했다. 까만 선 피카추는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다 마른 피카추 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복실이는 심혈을 기울여 노랑과 빨강, 갈색을 꾹꾹 짜서 채워 넣었다.


그런데 얼굴에 있던 빨강이 과했던지 자꾸 흘러내렸다.

“엄마 피카추가 피를 흘려.”

과연 피카추를 볼 옆이 빨간색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아이는 지난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울지 않고 짜증을 부리지도 않고 하루를 기다렸다. 어떻게든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 사이 문제 해결력이 상당히 높아졌다. 설명서를 읽기도 하고 기다림을 지루해하지도 않는다.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것인가.


하루가 지나자 두툼하게 바른 색깔이 손에 묻어나지 않았다. 복실이는 빨강 위에 본래의 색깔 노랑을 덧칠했다. 노랑으로 변할 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또 하루가 지났다. 그런데 피카추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글라스 데코는 덧칠이 안 되나 보다. 아니면 더 진한 색으로 칠하면 될까?

“복실아 깜장으로 칠하면 빨강이 가려지지 않을까? ”

그러나 복실이는 빨강도 괜찮다고 했다. 피카추는 금방 뭘 잡아먹은 것처럼 섬뜩한 모습이다. 복실이가 울고 떼쓰지 않은 것이 어딘가.


아이의 노력 어린 결과물을 손수 비닐에서 떼어냈다. 복실이가 손을 대기 전에 얼른 조심스럽고 섬세한 어머니의 손길로 비닐에서 뜯어 내 책상 앞에 떡하니 붙였다. 뭘 만들기만 하면 엄마 책상에 올려두는 복실이다. 내 책상에 스스로 피카추를 붙이자 복실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복실아. 피카추가 예 쁘 다... “


그렇게 글라스데코, 뭔가 잡아먹은 피카추 편이 완성되었다.


그 피카추가 새벽에도 날 노려보고 있다. 스탠드 불빛 뒤편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뭔가를 쥐고 먹고 있었던가. 두 손을 앞으로 숨긴 채,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고 나를 쳐다본다. 해맑은 미소 뒤에 숨겨진 녀석의 실체는 뭘까. 입가와 왼볼에 묻은 빨강이 괴이하다. 순간 녀석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두툼한 옷을 껴입은 내 팔뚝 위로 한기가 오소소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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