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맛 양송이버섯 된장국
집에서 스무 발자국 떨어져 있는 창고에는 대파가 산다. 추운 가을 끝 무렵에 남편은 파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대파화분은 창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놓여있다. 까만 밤에 퇴근하면 나는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간다. 그럴 새도 없지만 무섭다. 남편과 큰 아이들은 창고가 생활 무대다. 창고에는 파도 살고 자전거도 산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운동하고 들어오다 다시 돌아 나갔다. 간만에 야밤에 아내가 주방에서 야식을 만드는가 하였겠지. 부인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자 기쁜 마음으로 파를 뽑아 온 것이다. 무슨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여. 아니면 자신이 정성들여 심어놓은 파는 왜 안 쓰는 건지 불만이었던 걸까. 얼굴은 세상 해맑다. 선한 마음으로 나에게 파를 건네주는 것이다. 그것을 어찌 마다하랴. 남편은 사랑이다. 파도 사랑이다. 어떤 음식에든 빠질 수가 없다. 겨울 파는 벌레도 없다. 화분에 살아서 좀 빼빼 마르기는 했다. 흙은 거의 안 붙어 있고 얇은 껍질이 좀 안 벗겨질 뿐이다. 파가 무슨 죄일까.
데친 얼갈이를 소쿠리에 담았다. 얼갈이 씻던 볼에 물을 담아 파를 담갔다. 남편이 한 움큼 더 가져다준 파도 한꺼번에 씻을 요량이었다. 파야. 파야. 파야. 그래 파야. 파가 주방으로 오자 없던 계획이 생겨버렸다. 파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조합이 머릿속에 번뜩하고 떠오른 천상주부.
얼린 얼갈이와 파의 조합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챈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천상주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힌트를 하나 더 주겠다. 다음으로 열 박스는 양송이버섯이다.
양송이 박스를 열자 스티로폼 박스가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양송이버섯의 양이 상상 이상이다. 마트에서 서너 개 든 것을 사면 스파게티 할 때 충분했는데, 이렇게 많은 양은 처음이다. 실수했다! 박스 버섯은 처음이라 난감하다. 나의 구원투수 인터넷 창을 열어 보관방법과 손질방법을 물었더니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밑동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기란다. 하라면 해야지. 그럼 시작!
정말 실수했다. 갓을 잡아당기면 잘 벗겨진단다. 잘 벗겨지기는 하나 손이 많이 간다. 이런 건 찾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껍질을 홀홀 벗기니 둥근 순백의 갓머리가 더욱 깔끔하다. 예전에 그냥 썰어서 먹고 구워서 먹었던 것 같은데. 한 번에 벗길 수 있는 것도 아니요, 하나의 버섯에게 서너 번 이상 손이간다. 꾀가 난다. 이것을 빠르게 없앨 수 없을까.
버섯 세척 방법을 알아본다. 씻어서 그냥 얼릴까? 세척하면 영양소가 파괴될 수 있다. 식감도 안 좋다. 영양소와 식감을 우선한다면 씻지 않고 키친 타올로 닦아주면 된다. 위생을 생각한다면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 먹으면 된다. 나는 밑동을 제거하고 둥근 갓의 껍질을 제거하고 있었으므로 세척은 생각하지 않았다. 큰 것을 골라 손질할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양이 안 준다. 작은 것은 껍질 까기도 번거롭다. 이것을 진정 까먹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왜 양송이버섯을 박스로 산 것인가? 대체.
버섯은 스파게티를 즐겨하는 복이를 위해 겸사겸사 주문했다. 야채는 좀처럼 먹지 않는 복이가 지난번 고기를 구울 때 구운 버섯을 맛있게 먹던 것을 눈여겨봤다. (복이의 편식은 아주 심각한 편이다.) 그리고 농장에서 주문하면 싸고 많다는 언니의 말에 혹했다. 언니는 표고버섯을 박스로 사서 쓴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양송이버섯을 박스로 사볼까 생각한 것이다.
드디어 나는 껍질 벗기기를 포기했다. 커다란 버섯이 한참 남았지만 다시 찾은 정보에는 키친 타올로 닦아 쓰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하여 모시고 온 키친타올을 쥐고 방 바닥에 앉았다. 밑동 떼고 키친타올로 닦았다. 나중에 밑동 떼는 것도 귀찮아 키친 타올로만 닦았다. 밑동을 안 떼고 썰어 놓으면 더 예뻐 보인다. 한 박스의 버섯을 손질하는 동안 벌써 버섯의 색깔이 변해갔다. 특히 갓 부분 안쪽 갈색이 변색이 되어간다. 껍질을 벗긴 버섯은 더욱 빠르게 색이 변하는 것 같았다. 벗기다 잘린 것도 많다.
보관방법
키친타올을 깔고 냉장보관.
부득이하게 냉동하더라도 빨리 섭취. 냉동 시 데쳐서 넣든, 그냥 넣든 마음대로 하자.
어쩔까. 냉장, 냉동을 생각 않고 마구 봉지에 주워 담던 나는 생각해야 했다. 당장 다음 날 먹을 것은 냉장. 나머지는 씻어서 모두 다졌다. 냉동실행이다.
물에 헹궈 물기를 제거하고 그냥 냉동에 다 넣을 것을 그랬나... 왠지 일을 더 벌리는 것 같은 분위기다.
껍질 깐 버섯, 부서진 버섯, 그냥 버섯, 밑동의 버섯이 있다. 이렇게 분류된 버섯을 내일 먹을 버섯, 밑동, 다진 버섯으로 나누었다. 당장 먹을 버섯은 냉장, 다진 버섯은 한 번 먹을 분량만큼씩 지퍼백 냉동보관, 밑동은 된장국용으로 확정이다. 오늘의 주인공 밑동이 나왔다.
드디어 너저분한 양송이의 잔해물들을 정리했다.
지퍼백을 준비한다. 데친 얼갈이 한 줌, 다시마 3장, 썬 대파 한 줌, 시판 고추장 반술, 양송이버섯 밑동 대여섯 개, 다시 멸치 대여섯 개, 고춧가루를 넣는다. 이것은 고추장국이 아니다. 된장을 사놓고 안 가지고 와 하는 수 없이 된장을 못 넣었다. 내 된장. 냉동에 얼렸다. 먹을 때 된장 한 술과 물만 넣어 보글보글 끓이면 된장국 완성이다.
된장 국거리를 10개나 만들었다. 브로콜리도 처리하고 다른 박스는 뜯어 대충 냉장고에 넣고 나니 새벽 2시.
야채 손질을 하며 후회를 반복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 자세로 움직이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고 아프고 목도 불편하다. 대신 주부의 양심만은 든든하여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야채 박스는 모두 현관에 쌓였다. 다음날 손은 팅팅 부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말 맛있어! “라는 가족들의 한 마디. 새벽의 고생은 희미해지고 엄마 손맛 된장국의 존재감이 확실해졌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복실이도 달복이도 정말 맛있다고 했다.
가끔 주부의 양심이 나를 콕콕 찔러댄다면 평일은 빼고 주말을 이용해 냉동실에 열흘 치, 일주일치 엄마손맛 만들기 편한 식재료를 소분해 쌓아 두자. 시판 태양초고추장, 시판 된장으로도 낼 수 있는 엄마손맛 된장국 성공이다. 국물에 가끔 떠다니는 양송이버섯 밑동을 꼭꼭 씹어 먹었다. 버섯의 강한 향이 없어 더 좋은 양송이버섯. 그러나 다음번에 버섯은 조금씩만 사자.
양송이버섯은 구워 먹고, 밤에 토마토 스파게티에 넣어 먹고, 볶아서도 먹었다. 냉동에 보관한 버섯만이 남았다. 스파게티에 들어간 버섯이 가장 맛이 있었다. 복동이가 스파게티에 들어간 양송이버섯을 젓가락으로 골라먹었다. 야채를 골라먹는 아들이라니. 버섯 한 박스, 까고, 벗기고, 떼고, 닦고, 씻고, 썰고, 다진 보람이 있다. 이런 맛에 주부는 ‘한 번 더? ’를 고민해 본다.
그런데 버섯 넌 언제부터 야채였지? 마트 야채코너에 가면 파는 버섯, 네 정체가 뭐냐? 버섯은 야채가 아니다. 식물도 아니다. 그럼 동물? 동물도 아닌 균덩어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