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지저분하다. 현관부터 발 디딜 틈이 없다. 중문을 열면 내일 들고나갈 물건들과 오늘 들고 들어온 물건들이 하나 둘 문 앞을 채우고 있다. 주방엔 장 봐온 것들 중 냉장고에 들어갈 것만 빼고 박스째 바닥에 방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끔 손님이 오는 날이면 말끔히 치워진다.
설날 연휴 즈음이었다. 남편의 친구가 온다고 했다. 그날 나는 평소의 굼뜬 모습을 버렸다. 날쌘 날다람쥐가 되어 집안을 날아다녔다. 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엄마가 뛰는 걸 처음 본다고 하며 브라보를 외쳤다. 모든 박스를 정리해 트럭에 실었다. 재활용 쓰레기도 한 봉지 실었다. 너저분한 쓰레기도 다 쓸어 모아 20리터 세 봉지 실었다.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웠다. 롤화장지를 쌓아뒀다. 변기와 바닥 청소까지 신속하게 마쳤다. 세면장에는 새 수건을 걸었다. 수건도 열 맞춰 착착착 정리했다. 거실과 주방, 바닥부터 쌓여 올라가던 김치통과 박스들은 아들 배달원의 손에 창고로 옮겨졌다. 빨래는 순식간에 정리되어 소파 위에서 사라졌다. 베란다에 지저분하게 걸려있는 수건도 반듯하게 펴 널었다. 넘치는 세탁물은 모두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청소기를 돌리고 정리정돈까지 20분이 안 걸렸다. 2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마음이 급했다. 현관이 난장판이었다. 현관의 신발은 두당 하나씩만 빼고 신발장에 쑤셔 박았다. 문이 덜 닫혀 덜렁덜렁거렸다. 그러나 현관 바닥은 비질까지 해서 말끔해졌다. 날아다니니 20분 만에 새집이 되었다. 아이들이 손뼉을 쳤다. 우리 집이 아닌 것 같다며 이상하다고 했다. 손님을 자주 초대하는 것이 정리의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의 친구는 하룻밤을 머물고 돌아갔다. 그러나 하얀 신발장의 덜렁거리던 문이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미처 다 가려지지 못한 어두운 문틈으로 보이지 않지만 비죽 나와있던 엉망진창 신발들. 곧 어둠을 박차고 우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던, 그래서 더욱 꾹꾹 눌러 놓았던 커다란 신발들.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다시 박스와 장바구니, 김치통, 냄비 등이 쌓였다. 거실에 책도 늘 돌아다니고 운동기구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굴러 다닌다. 소파와 세탁실은 빨래가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 다시 먼지도 현관의 모래흙도 쌓이고 있다. 신발들은 신발장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채 아직 숨겨져 있다. 어둠 속에 교묘하게도, 마구 쑤셔 박힌 채로.
단시간 고효율, 나도 가능하다. 손님이 오면 더욱 가능하다. 살림을 잘 못하는 것이 내 능력 밖의 일이라 그런 것도,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방법을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할 이유가 없었건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매일 손님을 초대해야 할까...
왜 나는 손님이 오면 대청소를 하는 걸까. 그냥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요. (지저분하지만 편안하게)‘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까. 주변, 사회의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나를 만났다. 나는 깜깜한 신발장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구겨진 신발 같았다.
내 살림살이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왜 신발이 쏟아져 나올까 전전긍긍했을까. 내 민낯을 남에게 들키는 것 같아 그랬을까.
나는 당당한 주부인데...
나는 더러운 신발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도 당당히 내 신발들을 한 데 그러모아 태연스럽게 신발의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주부가 되고 싶다. “우리는 신발을 있는 대로 꺼내놓고 신어요. 현관이 너무 넓은가 봐요. 호호호. ” 하며 너스레를 좀 떨면 어떤가. “현관이 너무 넓어서 택배박스, 종이 쓰레기, 재활용쓰레기, 그냥 쓰레기가 매일 한 자리 차지해요. 참 사는 게 번잡스럽네요. 호호호. “
나야, 그런 말을 생각하기 전에 정리하면 될 일이다. 매일 제때제때.
나는 당당하게 나의 살림을 말할 수 있는 주부가 되겠다. 그러기 위해 적당한 수준, 더럽고 지저분하지 않은 수준에서 신발 정리를 하겠다.(자꾸 신발신발하니 어감이 좀 이상하다.)
정리의 달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살림의 여왕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요리왕 주부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퇴근 후 짧은 시간 그저 우리 가족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한 것들이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라는 주부는 살림에 너무나 너그러운 것이 아닐까? 정리를 정말 못하는 나는 큰 욕심이 없다. 하지만 밥은 휘리릭 빨리 해 먹으면 좋겠다. 아니군, 욕심이 많군. 밥을 그렇게 빨리 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 손님을 초대했다고 생각하고 날다람쥐 한 마리로 변신하면 된다.
나는 손님의 눈치를 보는 주인이 되지 않겠다. 나는 내 살림의 주체로서 당당히 우리 집을 관장하는 살림의 주인이다. 내 살림은 내가 이끌어간다.
나는 당당한 주부다. 우리 집은 더럽다!
그러나 내일 다시 남편의 친구가 온다면 나는 또다시 한 마리의 날다람쥐가 될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