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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18. 2024

나는 중독자다

나는 몰입형 인간이다. 무엇에 꽂히면 그것만 하는 인간이 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돌직구. 저절로 그리 되는 것을 어찌할까.


앉으나 서나,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운전 중이거나 걸어 다닐 때도, 계단을 오를 때, 팔 벌려 뛰기를 할 때도, 얼음을 씹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심지어 잘 때조차. 기상 후 비몽상몽의 순간에도, 한가하게 정원을 바라보고, 밭에서 일을 할 때도


나는 생각한다.


글과 책과 나의 머릿속 세계에 대해...


일할 때도 자꾸만 생각이 나서 큰일이다. 가끔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눈을 바라보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나만의 세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 그래도 허당인 엄마가 더욱 불량해졌다.


세상을 알아가겠다며 보이는 사물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세상과 떨어져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족이나 여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 같은 막연한 느낌. 유령이 되면 이런 느낌일까.


책과 글에 푹 빠져버렸다. 무슨 대단한 걸작을 내놓으려고. 금방 무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알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데는 간편하게 핸드폰 하나만 챙기면 되니 아주 좋다. 핸드폰 중독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고 속으로 외친다. 그럼 중독이 아닌가.




처음에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 그것을 보다 못한 남편이 자판을 준비해 줬다. 주방에 책상과 스탠드가 생겼다. 노트북은 오래되고 느려터져서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던져버렸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많이 거슬렸다. 집에서 가장 최신버전 아이패드가 내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익숙한 핸드폰으로 글을 쓴다. 가게에도 무선 자판을 하나 더 구비했다. 굴러다니는 자판이 아직도 많다. 내가 알뜰히 사용해 주니 고마운 일 아닌가. 자판 배터리가 빨리 닳게 되자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래가니 더 좋다. 이제는 혼자서 배터리 교체도 잘한다. 집과 가게에서만 아니라 어디서든 쓸 수 있도록 무선자판기를 위한 이동식 케이스를 준비했다. 그즈음 이미 아이패드와 책, 노트, 등을 넣은 책가방을 하나 더 차에 싣고 다니고 있었다. 가방을 등에 지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무선 자판기 하나 더  들고 다니는 것쯤이야.


글이 잘 써지는 장소는 따로 있다. 그래서 그분이 오시면 가게 카운터는 내 차지다. 지금도 남편 사장을 비키라고 하고선 앉아있다. 주문을 잘 받으면 말을 안 한다. 주문을 잘못 받아 음료를 다시 뽑아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핫과 아이스를 헷갈린다. 딴생각의 결과는 참담하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좀 괜찮은데 남편 사장에게 걸리면 좀 많이 민망하고 미안하다.


설날, 추석 명절에는 가방 하나만 챙기면 장비의 완성이니 별 문제가 안 되었다. 종이 책을 읽는 중이라면 독서대를 하나 챙기면 될 뿐이었다. 독서대도 슬림형으로 하나 더 구비했다. 새벽에 일어나 불을 켜기가 미안하다면 그것도 괜찮다. 핸드폰의 친한 친구 엄지와 검지를 다시 소환하면 되었다. 그런 정도의 불편함이야 내 집이 아닌 곳에서 글을 쓰는데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이른 아침 시간은 혼자 놀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책과 글과 더불어 오롯이 나 혼자가 되는 시간. 1년 모닝루틴을 만들며 아침시간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다. 단지 하는 일이라고는 빨래를 돌리는 일뿐이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니 그 정도쯤이야.


내 시간을 꽉 채워 사용하기 위해 아침 식단은 간편식으로 바뀌었다. 된장국, 된장국, 된장국, 미역국, 콩나물국. 그리고 요즘 무슨 국을 먹어 봤던가.


미역국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신 레인지 위에 올려두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편한 음식이다. 그러나 집중모드에 들어가면 불 앞에 았어도 냄비째 태워먹기 일쑤였다. 오븐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 튀김 종류를 냉동실에 채워 넣었다. 닭, 만두, 동그랑땡, 함박스테이크... 10분 안에 조리가 되는 쉬운 아침. 그래도 봉지 미역국을 안 먹이는 것이 어딘가 위안을 삼았다.


시간이 갈수록 냉동실은 비어갔다. 국 없는 날이 더 많아졌다. 김치에 계란 프라이 만으로 맛있는 아침을 차려줬다. 미안한 생각은  눈곱만치도 들지 않았다. 마음은 머나먼 세상, 중독의 늪에 빠져 있었다. 도시락김이라도 사다 둘 것을 아침밥을 다 차리고 나서 후회하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 잊고 마는 치매형 인간이 되었다.


심각한 것은 장 볼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점심과 저녁 사이, 4시에서 5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저녁 계획을 짜고 필요한 재료를 사고 음식 준비를 해야 하지만 온 생각이 글과 책에 쏠려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된다. 아이들은 하교를 하고, 각자 학원 일정에 따라 빠르게 먹고 나가야 하는데... 저녁 장사를 하려면 우리도 6시쯤에는 밥을 먹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다. 밥솥에 밥이 없는 날도 많다. 쌀을 집에서 챙겨 오지 않는 날도 있다. 코 앞에 있는 마트에서 햇반을 사다 먹는 날이 많아졌다. 낮에 비빔밥, 도시락 먹는 날도 많아 저녁까지 그러기에는 좀 찔린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끔 과일 도매시장에 가면 과일을 박스로 사 온다. 아침엔 과일 반찬을 먹는다. 반찬 그릇 빈칸 하나를 채우기에 제격이다. 색깔도 영양소도 아주 만족스럽다. 이번 주 과일은 참외와 방울토마토다. 꺼내주지 않아 냉장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꺼내주지 않으면 가족 누구도 스스로 먹지 않는다.


요즘은 어머님이 해주시는 김치가 최고 건강식이다.


지난해 유기농, 무농약으로 고추 농사를 지어 고춧가루도 냉장고에 가득인데 바빠서 김장을 못했다. 그땐 정말 가게 일이 바쁘기는 했다. 건강하게 먹고살자고 힘들게 짓는 농사가 무어 소용이 있는가.


밥을 내팽개치고 무슨 대단한 걸작을 쓰겠다고 이러는 것인가.


대체 뭣하는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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