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풀 머리를 잘랐습니다
우리 커피숍 바로 옆 왼쪽 건물에는 백다방이 있습니다. 우리 가게 오른쪽 건물에는 메가 커피가 있습니다.
메가커피 건너에는 파리바게뜨가 있습니다. 파리바게뜨 옆에는 백억커피가 있습니다. 길 하나를 건너면 벤티가 있습니다. 메가커피에서 길을 건너 몇 발자국을 가면 트리플커피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어있는 가게 트리플에서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디아가 있습니다. 이디아에서 몇 발자국 더 가면 투썸이 있습니다. 가게 옆 건물에는 베스킨, 와플대학, 개인빵집, 잘 나가는 명장의 빵집, 천 원 빵집, 뚜레쥬르, 좀 전에 언급한 파리바게뜨까지 단단한 베이커리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뭐가 뭘 구비하냐고요? 우리 동네가 이런 상점들을 다 구비하고 있습니다. 베이커리에서는 커피를 함께 파니 언급해 보았습니다. 참 가장 멀리, 반경 200미터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있는 컴포즈커피까지 포함시켜야겠습니다. 프랜차이즈 저가 브랜드 3 대장 중 하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개인 카페는 모두 제외한 겁니다. 하하. 모두 몇 개인 거지요? 커피숍이란 커피숍은 그냥 다 들어와 있는 천혜의 카페 요새 같습니다. 그리고 골목마다 작은 개인 카페들이 줄 지어 있습니다. 우리 동네만 그런가요? 요즘 다 그런가요?
이렇게 알찬 커피 상권 2차선 대로변에 백다방이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아메리카노가 500원이랍니다.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니 배가 아파 죽겠습니다. 죽 늘어선 줄을 보며 가슴이 미어집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가게 문도 안 여는데 심술이 배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백다방 앞에 줄줄이 서 있던 사람들의 방향을 틀어 우리 가게로 모셔오면 좋겠습니다.
가게 문을 바로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올리 없습니다. 저흰 오픈이 11시입니다. 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마당에 나가 괜히 잘 자라는 민트와 국화, 쑥을 잘랐습니다. ‘풀이발‘ 합니다. 가끔 초록 풀의 머리를 잘라줍니다. 풀의 머리 = 풀머리, 풀의 머리를 잘라줌 = 풀이발. 저는 이런 말을 만들어 씁니다. 말이 예뻐서 그럽니다. 아침부터 시간이 남아돌아 화단을 정리합니다. 손님맞이 꽃단장입니다. 양손 가위를 들고와 풀을 발목 정도 길이로 가지런지 잘라줍니다. 보도블록 사이로 진출하는 아이들은 뿌리를 뽑아 물꽂이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안 뽑아버리고 집 화단에 갖다 심을 겁니다. 소중히 물에 꽂아 그늘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작은 원예용 가위를 가져와 삐침 ‘풀머리’도 정리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다란 초록 빗자루를 들고 옵니다. 긴 빗자루는 탄탄합니다. 잘라준 잎들은 바닥에서 금세 풀이 죽었습니다. 플라스틱 빗자루로 싹싹 쓸어모았습니다. 초록색 커다란 눈삽을 가져와 한 번에 담아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뒷마당 나무 뒤쪽으로 던집니다. 이번에 수도에 연결된 파란 호스를 듭니다. 오늘은 왠지 반짝이는 마당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틉니다. 파란 호스 입구를 반 정도 막아 물 분수를 만듭니다.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민트에게 물을 주고 국화에게 물을 주고 세이지에게 물을 줍니다. 뒤돌아서서 나무들에게도 물을 줍니다. 쑥에게는 물을 안 줍니다. 너무 잘 크는 쑥에게 물까지 주면 감당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조금 미안한 감이 있습니다. 무더운 아침 초록 잎 ‘풀이발’을 하고 물기를 머금은 아이들이 말쑥해 보입니다. 이제 단장을 마쳤습니다.
가게 불을 켭니다. 손님은 안 옵니다. 마당에서 풀과 씨름을 했더니 더운 풀향이 가득합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다 비웠습니다. 손님을 기다립니다. 두 시간이나 일찍 문을 열고 저는 뭘 하는 걸까요.
설마 계속 500원은 아닐 테지요? 대기업 아닌 대기업의 횡포에 작은 가게는 웁니다. 가맹점과 고객 모두를 위한 상생 전략이라고 말하면서 주변 상권을 흔드는 백다방의 횡포에 외칠 힘조차 없는 작은 카페가 많습니다.
저는 그저 하릴없이 소리 없이 마당의 풀을 잘랐습니다.
경기가 안 좋습니다. 살아야겠지요. 살아남아야겠지요. 함께 살아갈 길은 없을까요?
카페 운영자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고객님들께서는 초특가 500원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가게 문 닫는 주말에 복실이랑 백다방에 다니는데, 주말까지는 행사를 안 할 것 같습니다. 여하튼 배가 많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