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 언저리에 턱 하니 걸쳐놓은
구름? 아니 우리 집.
구름같이 포근한 이불 뻥 걷어 차내고
밤새 웅크리고 잠을 자는 아이 옆에서
함께 새우잠을 청하던 나는
새벽녘 더욱 싸늘해진 공기에 몇 번이나 눈을 껌뻑였는지.
다 큰 녀석은 긴 잠옷을 입으래도
반팔 반바지를 해 입고
마른 팔과 다리를 내놓고
추위에 떠는 것 같아 걱정인데.
덥다는 아이의 말은 밤의 말일뿐,
여름 아침은 춥다는 생각은 내 생각일 뿐,
팔다리에 오소소 돋아난 닭살을 보며
내 생각을 굳히고
아이의 몸에 이불 세례를 퍼부어 주지만,
한 번 또 눈을 뜨면
저만치 굴러간 늘씬한 몸
덮었던 이불은 마른 몸에 깔려 있어
낑낑대며 이불을 잡아당겨
다시 온기 어린 마음 세례를 퍼붓는다.
물세례가 아니어서일까.
꿈쩍 않고 잘만 잔다, 우리 아기.
(그 아기 5학년 청소년 아들)
울창한 숲 우거진 창으로 아침이 밝아오면
싸리나무 분홍 꽃이 초록잎과 어우러져
한들거리는 줄기를 타고 점점이 내려와
나의 망막에 맺힌다.
저것이 그래 싸리나무 꽃이구나
생각 없이 보던 산 중 꽃나무를
어느 날 알아차리곤
논일하며 밭일하며 참을 먹을 때
꺾어다 나무껍질 벗겨 젓가락으로 쓰던
그 싸리나무구나.
아버지가 꺾어와 회초리로 쓰던
그 싸리나무구나.
장롱 위 손마디 하나가 보이도록
놓아두었던 회초리 세 개
삼 남매를 위한 일인 일회초리
맞다 보면 부러져서 개별 맞춤도 아닌
부러지면 또 다음날 손쉽게 꺾어오던
늘 장롱 위에 보이던 무서운 회초리.
그 싸리나무구나.
아버지도 우리 삼 남매를 키우며
밤마다 애태웠을까.
나도 어린 날 밤중에는
아득한 꿈나라까지 다녀오느라 몰랐는데.
아프지는 않을까,
나쁜 유혹에 빠지지는 않을까,
노상 걱정인 부모 마음을 몰랐는데.
새벽이 올 수록
오묘한 갈색빛 홍채는
신록의 푸른빛을 받아들이고
초록잎과 어우러져 줄기를 타고
점점이 내려오는 분홍 싸리나무 꽃을
어린 시절 회초리로 매 맞던 추억에 버무려 망막에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