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에 망사를 씌울까?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이야기

by 눈항아리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매일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날이 흐리멍덩했다. 날이 찌뿌둥했다. 날이 먹먹했다. 날이 뜨거웠다 차가워졌다. 실내에는 에어컨을 켰다. 춥다며 긴팔을 입는 사람들 덥다며 아이스를 찾는 사람들 가지가지였다. 나는 그저 멍했다. 더우면 선풍기를 더했다. 해가 쨍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구름이 잔뜩 끼어서 그랬을까. 하늘이 하늘색이 아니고 구름색인 날이었다. 회색 하늘은 답답하다.

고추는 하늘을 볼까? 답답하지 않을까? 안 답답하단다. 그새 친구가 놀러 왔다.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벌레 한 마리가 붕붕 날아왔다. 부직포 화분에 붙어서 망을 보다 고추가 방심한 틈을 타 고춧잎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늘자리를 찾아 살금살금 기어들었다. 다리 쭉 뻗고 한잠 잘 곳을 찾는지도 몰랐다. 몸을 숨기고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지도. 벌레를 대신 퇴치해줘야 할까? 파리채를 들고 올까? 밤에는 모기도 많은데 모기장을 쳐줘야 하는 건 아닐까? 배추를 키울 때 벌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망사를 씌워주지 않던가! 고추에게도 씌워주면 안 될까? 이런이런! 나의 옛날 기억을 또 소환하는 군. 그 망사!

나는 날벌레, 기어 다니는 벌레, 귀여운 벌레, 예쁜 벌레를 가리지 않고 다 무서워한다. 나비도 잠자리도 무서워해서 그들의 날개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나이를 먹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선물로 준 매미, 손에 숨겨서 내 손바닥에 놓아준 커다란 매미를 보고선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큰 벌레를 깜짝 선물로 주다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작은 벌레들조차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무서워해서 다양한 모기장을 사용했다. 밥상 덮개 같은 아기 모기장부터 시작했다. 잠자는 방에는 아이가 커가며 더더더 큰 모기장이 방을 가득 채워갔다. 여름철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유모차에 모기장을 태워 다녔다.

나는 극성 엄마였다. 벌레에 관해서는 극성스러웠다. 비명 지르기가 주특기였다. 그 비명 지르기 비법을 막내딸 복실이에게 전수해 줬다. 깨알만 한 거미가 나타났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우리 복실이의 모습을 보고선 내가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 많이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씌워줬던 모기장, 그걸 고추에게 씌워주면 어떨까? 해충이 달려들지 않도록 말이다. ​고추가 망사를 뒤집어쓰면 웃기겠다. 극성이라고 하겠지?

아니다. 농사짓는 농부 님들은 작물을 위해 여러 망을 이용한다. 그물같이 얽어 놓은 농사망도 여러 가지다. 커다란 구멍 노루망, 옆집은 밭을 둘러가며 다 쳐놨다. 길만 남았다. 고라니가 우리 집으로 곧바로 난 길로 뛰어올 것 같다. 새들로부터 과수를 보호하기 위해 치는 망도 있다. 해충 피해를 덜 보기 위해 치는 작은 망사도 있다. 고추는 이 망이면 좋을 것 같은데...

고추는 싫단다. 햇볕이 좋고, 벌레도 괜찮단다. 나중에 몸에 구멍이 뻥 뚫려도 좋단다. 벌레를 막아주는 망사라니 절대 싫단다. 심심한데 찾아주는 친구도 없다면 얼마나 무료할 것인가 한다.

철벽을 치면 아무도 곁에 올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심심했던 것일까. 그냥 날씨 탓이었던 것일까. 그래서 답답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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