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채벌레는 친구가 아니다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이야기 <고추테리어>

by 눈항아리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아기 다육이를 작은 토분에 옮겨 심고

딱 하나 남았다.

고추랑 둘이 재미나게 놀라고

부직포 화분 한 귀퉁이에 심어줬다.

“벌레 친구보다 식물 친구가 더 좋을 것 같아.”

벌레 친구는 때로 고추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식물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고 권했다.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고 하는 게 맞을까.

아이를 아프게 하는 친구는 같이 놀지 말라고 하는 게 맞겠지?

“그 친구랑은 같이 놀지 마!”

하얀 고추 꽃 봉오리가 봉긋하게 오므려져 있을 때는 안 보이던 벌레,

꽃봉오리가 활짝 피니 꽃잎 안쪽으로 기어 다니는 총채벌레다!

으~~

고추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찾아오는 친구 외에는 만날 수 없다.

심심하면 총채벌레랑 놀라고 해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퇴치!

여보 벌레!

며칠 집중해서 은행물을 뿌려야 하는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하루 건너뛰었다.

주말을 벌레 친구와 잘 지내야 하는데...

딸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적에

딸아이를 매일 괴롭히며 대장 노릇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선생님 놀이를 좋아했다.

늘 자신이 선생님을 했다.

선생님 역할에 심취하여

우리 딸아이 멱살잡이를 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밀치고 꼬집고 지휘봉으로 훈계하며 위협했다.

​그때도 일하는 엄마였던 나는

그래도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 없었다.

아이를 다독여 봉고 차에 태워 보내야 했다.

노란 차를 타고 가며 어린 딸의 눈물 그렁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

그래서 고추에게는 신경 좀 썼다.

다육이 친구를 소개해줬다.

좋은 친구가 옆에 있으면 힘이 될 거야.

다육이 친구가 고추에게 좋은지 안 좋은지는 알 수 없다.

총채 벌레보다 좋을 것 같다는 건 내 추측이다.

혹시 안 보이는 땅 속 뿌리의 세계에서

둘이 열심히 영역 싸움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멀찍이, 제일 먼 곳

동그란 부직포 화분 둥근 테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심어줬다.

고추가 사는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친구가 많지도 않다.

그런데 다육이는 화분에서 겨울까지 버텨낸다.

고추야 멋진 친구를 보고 잘 배워라.

아니지, 고추야 멋진 친구와 재미있게 지내라.

힘차게 건강하게 알았지?

나쁜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월요일엔 약통을 꼭 챙기라고 해야겠다.


다육이 친구의 친구들

그런데 쪼르르 창가에 놓은 다육이 화분을 보니 올망졸망 사이좋아 보인다.

우리는 왜 마당에 고추를 하나만 놓았을까?

심심하지 말라고 하나 더 놓아주기에는

부직포 화분이 무겁기도 하고...

관리가 힘들기도 하고...

고추가 밭에 100그루나 있기도 하고...

진짜 친구를 만들어주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에게 친구란 참 중요한 존재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만날 기회를 못 챙겨준다.

좀 미안하다.


“엄마 이제는 좀 놀이터에 혼자 나가서 놀게요. ”

딸아이는 이제 다 컸다고 그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추 잎이 쭈글쭈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