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이야기 <고추테리어>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토요일엔 여름비가 오락가락이었다. 주르륵 내리다 해가 뜨더니 또 굵은 비가 후드득 내렸다. 비가 내리니 고추도 기분이 축 가라앉아 울상이었다. 거센 비에 고추가 물을 많이도 먹었는지 잎이 무거워 축 처졌다. 바람까지 불어 대면 가녀린 고추 줄기가 톡 부러지겠다. 키 큰 쑥도 비를 맞아 고개를 푹 숙였다. 내 고추가 그리되면 안 되는데.
비가 많이 내리자 남편은 밭에 심어 놓은 고추 걱정을 했다. 고추 지지대를 못 세워서, 줄을 못 묶어줘서 한 걱정이다. 나는 그 생각은 못 했는데, 고추 줄을 묶어줘야 한다. 그럼 내 고추는? 언제 줄을 묶어 주지?
방아다리가 생기면 매 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뿌리가 자리를 잡으면 바로 매 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 고추는 모종으로 올 때부터 방아다리가 생겨서 왔다. 그럼 바로 매 줘야 했을까? 출근하면 바로 매 줘야지. 일요일 혼자 보내는 동안 쓰러져 있는 건 아니겠지? 토요일 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깜깜한 마당에 홀로 남겨진 고추의 축 처진 어깨가 얼마나 처량해 보이던지.
남편은 일요일을 종일 밭에서 보내며 고춧대를 박고 고추 줄을 묶었다. 밭 고추는 키가 훤칠하다. 늘씬하고 단단한 줄기를 가졌다. 새로 나는 잎도 푸릇한 기상이 남다르다. 건강한 녹색 빛에 생기가 돈다. 가지마다 달린 고추는 벌써 여러 번 풋고추로 따먹을 정도다. 땅을 밟고 서서 푸른 공기를 마시는 시골의 밭 고추는 100그루의 친구들과 나란히 성장하고 있다. 밭에서 다 같이 영양제를 먹었는지 잘도 큰다. 부럽다.
반면 가게 마당의 부직포 화분 속 고추는 작고 가냘프다. 고추 하나를 따고 열매가 안 달린다. 벌레도 기어 다닌다. 가녀린 잎은 연둣빛 고운 빛깔이다. 내 고추는 왜 이 모양인가. 혼자라서 풀이 팍 죽어있는 걸까.
월요일에 다시 만난 내 고추는 쌩쌩했다. 밭에 키우는 고추와 확실히 비교가 된다. 키 크는 운동을 하라 채근할 수도 없고 원. 혼자 찜통더위에 좁은 부직포 화분에서 답답함을 토로하는 고추의 잎을 몇 장 뜯어줬다. 막 따준 것이 아니다. 첫 번째 방아다리 아래 땅에서 가까운 이파리를 똑 똑 따주었다. 색깔이 얼룩덜룩 지저분해 보여 다 훑어 주었다. 잎을 따주고 나니 위쪽 잎이 더욱 풍성하게 보여 진짜 나무처럼 보였다. (진짜 나무 맞습니다) 그러나 가느다란 줄기가 무성한 잎을 지탱하기 힘든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여보 자기야 그래서 내 고추는 줄을 언제 묶어줘?”
“줄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깜빡했다! ”
남편은 나처럼 깜빡이다.
“내일은 잊지 말고 챙겨 와. 허리가 똑 부러지면 어쩔 거야. ”
진짜 내 고추 허리가 잘록하다. 위가 풍성하면 더욱 잘록해 보이는 법이다. 왜 풍성할까? 가녀린 고추인데? 사실 다른 고추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점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자꾸 비교하니 속이 쓰리다. 화분이 너무 작다. 좁은 부직포 화분에 괜히 고추를 가둬놔서 잘 못 자라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쓰인다. 이제 와 화분에 가둬 놓은 걸 풀어줄 수도 없고, 우리가 욕심을 부려 고추의 멋진 한 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시골 사는 사람이 있고 도시에 사는 사람이 있다. 시골 들판에 사는 고추도 있고 주택가 마당에 사는 고추도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사는 모습이 다를 뿐이다. 같은 잣대로 키가 작네 크네, 열매가 많이 달렸네 안 달렸네 재단하지 말기로 하자.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내 아이의 특색을 잘 살려주자. 내 아이가 아니고 내 고추군.
우리 고추는 귀엽다. 아주 초라한 변명 같다. 그래도 내 눈에는 다 예쁘다. 진짜 나무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사진에서 조금 밀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