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꽃이 떨어진다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이야기

by 눈항아리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고추 키가 조금 자란 것 같다. 비가 왔고 해를 쬐어 조금 자랐나?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남편도 화분 속 고추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자리를 잡으면 이제 열매가 열리는 건가? 꽃이 피면 당연히 열매가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꽃이 피고 떨어지기만 한다. 열매가 안 생긴다. 내 고추 왜 그런 걸까?


이 더위에 기껏 눈부시게 하얀 별 꽃을 피웠는데, 분한 낙화.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물 빠짐이 잘 안 되어서, 병충해 때문에, 양분이 부족해서 등의 이유를 고르라고 한다. 너무나 다양한 원인 중 하나를 골라야 하니 막막하다. 추운 건 빼고, 부직포 화분이니 물 빠짐도 빼고 나니 모두 다 해당되는 것 같다.

혹시 수정이 안 되어 그런 것은 아닐까? 호박이나 수박은 벌들이 다니면서 수정을 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벌들이 많이 없어서 요즘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수정을 시켜줘야 한다. 수박은 일일이 남편이 다니며 수꽃을 따다 암꽃에 문질러줬다. 호박은 암꽃만 수두룩하게 피고 수꽃은 딱 하나 있었다 한다. 그래서 수꽃이 떨어질까 조심하며 면봉으로 살살 꽃가루를 묻혀 암꽃에 문질러줬다 한다.

그럼 우리 고추는? 호박처럼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건가? 수꽃의 꽃가루를 채취해서 암꽃에게 문질러줘야 하는 건가? 고추의 암꽃 수꽃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다. 내가 모르는 세상 이야기가 많고 많지만 수정을 손으로 시켜줘야 한다면 고추 농사는 힘들어서 절대 못 지을 것 같다. 물론 화분 속 한 그루의 고추는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럼 면봉을 준비해야 할까?

고추도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다고 한다. 누가? 인터넷에서 그랬다. 인터넷은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가지고 왔는지 심히 의심된다. 심지어 꽃이 확연히 구분이 된다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그 꽃이 그 꽃. 다 같은 꽃인 줄 알았는데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검색만 하면 돌아다니는 정보의 출처는 알 수 없고 그저 찾아낸 글들을 줄줄이 읽어본다.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과연...

정확한 정보의 출처를 찾기 위해 고추 재배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제목 <텃밭 고추 재배>정진해 저 / 에듀씨코리아. 밀리의 서재에서 찾은 전자책이다. 책에서는 말한다. 고추 꽃은 양성화!

고추 꽃은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들어있는 양성화 식물이다. 꽃 안에서 수정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곤충이나 바람에 의해 꽃가루가 옮겨져 다른 꽃과 수정이 되기도 한단다.

살짝 흔들거나 바람만 불어도 수정이 된다니 안심이다. 우리 마당은 바람이 쌩쌩 분다. 흔들흔들 매일 덩실 춤을 추지 않던가. 바람 없는 베란다 화분만 아니라면 굳이 면봉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럼 베란다 화분의 고추는? 베란다 문만 열어놔도 수정이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면봉을 들고 하나하나 섬세한 손길로 꽃가루를 채취해 꽃에 문질러주면 된다. 낙화는 암꽃, 수꽃의 문제가 아니다.

거름은 한 번 더 줬고, 그럼 가장 강력한 문제는 더위.

“15도 이하 온도 및 30도 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수정 능력이 없는 화분이 되는 경우가 있다.” -<텃밭 고추 재배> 중-

역시 더위가 문제인가.

부직포 화분 속 한 그루의 고추를 잘 지켜보고 보살피며 기다리자. 더위가 물러가고 나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테다. 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열매는 더욱 반가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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