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 화분 속 고추 이야기 <고추테리어>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출근길 마당을 지나가며 가장 먼저 보아주었다. 부직포 화분 속 나의 고추. 그리고 종일 무심히 지나쳤다. 몇 번을 그렇게 지나쳐도 계속 그리할 수는 없다. 이제는 ‘나’라는 경계의 안으로 들어온 고추 화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몇 번은 더 보아야 한다. 몇 번은 더 생각이 난다.
더위에 잎의 모양은 어떤지 흙은 촉촉한지 바람에 허리가 휘어지지는 않았는지, 벌레는 있는지 없는지, 꽃은 떨어졌는지, 오늘은 잘 보내고 있는지. 그 아이 보아주듯 나를 보아 달라는 무의식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나를 대변하는 나의 글 소재들. ‘나는’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아도 내가 쓰는 글은 나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 나의 글은 그런 것 같다. 작은 마당 안 좁은 화분 속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하는 작은 고추 한 그루. 나무가 될 수 있으나 되지 못하는 운명을 가진 한해살이풀. 친구도 없이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고추 이야기. 나의 삶의 모습을 닮은 고추의 삶.
어찌 보면 고추의 삶은 꽤 안온해 보인다. 우리 부부가 주는 물과 양분을 마시고 부족할 것이 무언가. 그러나 먹고만 산다면 그게 삶일까. 사람은 먹고살만하면 더 나은 삶을 원한다. 고추는 나은 삶을 바랄 새도 없이 험한 세상을 견뎌야 한다. 담장이 있는 마당이라지만 바깥 세계에 노출된 환경은 자연의 영역이다. 하늘은 기분 좋은 빗물을 뿌려주기도 하지만 거센 바람을 동반한 비를 쏟아내기도 한다. 여름 볕은 뜨겁고 태양 아래 피할 곳이라고는 좁은 마당 어디에도 없다. 부부는 물을 줄 뿐 별 도움이 안 된다. 주인이라고 있어봤자 열매나 탐을 내지, 태양을 피해 에어컨 바람 나오는 실내로 옮겨줄 재간은 없다. 고추는 세상의 풍파를 모두 맞이하고 있다. 맨몸으로. 그의 초록 이파리를 팔 삼아 모두 펼치고 삶을 껴안는다. 스스로의 삶을 수용하는 듯한 그 모습이 나는 좋다. 맥없이 쪼그라들던 이파리가 검푸르게 빛나 보이던 건 그 때문일까. 그래서 문득 고추의 이파리를 손으로 잡아주고 싶었던 건지도.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후텁지근한 바람이 골목을 지나 작은 마당의 담장을 타고 날아왔다. 고추는 바람을 맞으며 한쪽으로 쏠리듯 휘어지면서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여름 하늘 아래
후끈한 열기를 내뿜는 질식할 것만 같은 대기를 두르고
누군가는 그늘을 찾아 숨고
누군가는 인고의 시간을 견딜 뿐이고
누군가는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시든 꽃을 떨군다.
누군가는 다시 생기 도는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뜨거운 바람 한 점을 데려와 춤을 추고
누군가는 기어이 열매를 맺는다.
어제의 꽃은 시들어 떨어졌지만
오늘 또 생기 도는 꽃을 피웠다.
시든 꽃을 또 떨구었고 또 새로운 꽃을 피웠다.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가 여기 있다.
될 때까지 되게 하라.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꽃을 피운다.
고추 열매가 열릴 때까지.
어떤 간절함이 나를 이끌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