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는 복이 앞에 앉았습니다. 혼자 밥 먹으면 심심할까 봐 저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먹습니다. 복이도 밥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답니다. 벌써 4개를 먹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만 먹어라. 배 아프다. '이런저런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건지 잔소리를 먹이는 건지 좀 자중하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이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스쳐갑니다. 표정이 기가 막힙니다.
"왜? 무슨 일이야? 응?" 물어도 대답 없는 복이입니다.
한참 후 입을 뗀 아이는, "할머니 집 냉장고 문 열고 온 것 같아. 문 닫은 기억이 없어."라고 말합니다.
우리 복이 10대에 벌써 치매가 오는 건 아니겠지요?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왔다니 며칠 전 밥솥 생각이 납니다. 냉장고 생각도 납니다. 당시에는 뚜껑이 열려 부글거렸으나 이제 멀쩡해졌으니 소리 안 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너 며칠 전에 밥 퍼먹고 밥솥 열어 놓고 갔더라?"
"그래?"
"냉장고 위아래 문도 다 열고 갔더라?"
"나 아니야!" 처음에는 발뺌을 합니다.
"난 잘 닫고 갔는데.." 일어서서 냉장고 문을 열어 닫아 봅니다.
"이봐 이렇게 하면 닫히잖아.” 몇 번의 시범 끝에 냉장고 문을 눌러서 꽉 안 닫으면 열려 있게 된다는 걸 발견하는 아들입니다.
복이는 고기 밥을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퇴근길에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시댁의 냉동실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차에서, 집에 와서도 잔소리 가 이어집니다.
"너 지난번에 에어컨 켜놓고 베란다 문 열고 잤더라?"
"네.
"현관문도 잘 닫아야 해. 지네도 들어오고, 뱀도 들어온다."
"네."
"그리고 가방은 왜 열고 다니는 거야?"
"네."
"아이패드도 케이스 지퍼 안 닫고 다니다 지난번에 바닥에 떨군 거 다 봤어."
"네."
엄마 입에서 마술 주문과 같이 술술 쏟아져 나오는 '문 닫기 잔소리'에 복이는 '네네'거리며 실실 웃기만 합니다.
아이의 귀에는 잔소리 차단용 귀마개가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