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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허파에 가득 담아왔다

편의점 앞 바다

by 눈항아리


일요일 이른 아침 딸아이와 둘이서 바다에 간다. 벌서 몇 주를 건너뛰었다. 딸아이와 은연중에 한 약속이지만 늦게 일어나는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몸이 좋지 않은 날도 있었다. 아이는 은근히 바란다. 잠시 바닷바람 쐬고 오는 게 뭐 그리 특별한 일인지 모르겠다. 나의 하늘로 치솟은 머리는 모자 안에 가두었다. 복실이의 헝클어진 긴 머리는 가지런히 묶었다. 눈곱을 겨우 떼고 탑승했다. 일어나자마자 바다로 간다. 왜 이 아이는 바다에 가자면 벌떡 일어나는 걸까? 평소에는 갖은 애를 써도 안 일어나는 아이인데.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에 도착했다. 아침 8시가 안 된 시간이지만 문 연 편의점이 있다. 여름철 성수기라 그런지 차들도 많다. 그래도 내 차 하나 주차할 자리는 넉넉하다. 우리가 이른 아침 시간에 바다는 찾는 이유는 차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초보 운전자에게는 주차가 1순위다.


해수욕철에 우리는 바다에 잘 안 나온다. 북적북적한 바다보다 시원한 집이 좋다. 바다와 산을 고르라면 시원한 계곡을 훨씬 선호한다. 그러나 성수기 여름철엔 계곡도 자리 잡기 만만치 않다. 바다, 계곡을 찾아 돌아다닌 것도 다 큰 아이들 어릴 적 일이다. 벌써 5~6년은 되었다. 시골에 이사와선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지 않게 되었다. 굳이? 여기가 산인데? 아이들은 이런 반응이다. 이제는 바다 모래 발에 닿는 것도 싫고, 신발에 들어간 모래 터는 것도 귀찮은 큰 아들들을 굳이 때려 싣고 다니지 않는다. 원하는 이들만 모시고 간다. 그 경계에 있는 아이가 5학년 달복이다. 게임만 없다면 토요일에 일찍 재워 일요일 아침에 일찍 깨워 데리고 나가겠는데, 늦게 잔 아이를 일요일 아침에 깨우기 미안하다. 달복이는 같이 가고 싶은 마음 반, 게임하고 싶은 마음 반인 것 같다. 언제나 바다에서 돌아오면 달복이는 일어나 게임을 하고 있다. 다음번엔 꼭 데리고 가겠다고 마음을 불태워 본다. 모든 게임기를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함께 불살라 본다.


아침의 바다


편의점 문을 열었다. 왠지 익숙하지 않은 인사말이 들려온다. 우리를 여행객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왠지 여행지에 놀러 온 기분이다. 음료수 냉장고로 직진한다. 아침에 마실 간단한 음료를 찾는다. 뭐 굳이 안 마셔도 되지만 복실이의 루트다. 아이는 뭔가 추억이 될 만한 걸 많이 남기고 싶어 한다. 뱃속에 남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먹는 게 빠질 수 없다. 바다 산책이 오래 걸리면 아침의 배가 출출하다고 신호를 보내오기도 한다. 편의점이 1번, 바다가 2번. 복실이는 보통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고른다. 나는 보통 커피를 고른다. 그런데 오늘은 복실이와 같은 걸로 골랐다. 복실이는 딸기우유, 나는 바나나우유. 커피보다 양이 적어 보이지만 왠지 다 먹으면 배가 부를 것 같은 뚱보 우유다.


편의점을 나와 길을 건너 바다로 간다. 모래투성이 계단을 내려간다.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바다 가까운 곳에 다다랐다. 아침의 파라솔이 날개를 접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평온한 여름 아침의 바다에 우리의 짐을 푼다. 가방 하나, 우유 두 개, 담요 하나. 담요를 넓게 펼쳐 바닥에 깔았다. 복실이가 엄마를 작게 부른다.

“엄마, 그건 담요잖아.”

용도에 맞지 않는 돗자리를 모래밭에 펼치는 모습을 보고 복실이는 괜찮냐고 한다.

‘사용하는 사람이 알맞게 사용하면 그게 용도가 되는 거지! 불법 아니거든! ’

자리를 잡고 바로 바다로 간다.

아침의 바다


양말 벗기를 주저하는 아이. 나는 바닷물에 들어가는 걸 싫어한다. 모래가 막 붙는다. 바다에 가도 바다만 보고 오는 경우가 많다. 복실이와 둘이 몇 번 바다에 갔지만 내가 물에 들어가자고 말한 건 처음이다. 오늘은 유독 바다가 잔잔해서 그랬는지, 자주 보니 정들어 그랬는지 모르겠다. 복실이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내 걱정을 한다. 엄마 들어가면 무섭다고 소리 지를 텐데? 맞다 바닷물이 나에게 다가오자 소리를 질렀다. 복실이의 예상대로였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는데도 그랬다. 비디오에 다 찍혔다. 아이는 반복해서 보면서 들으면서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계속 웃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걸었다. 발에 닿는 젖은 모래, 푹푹 빠지는 모래가 따갑게 발을 간질였다. 그리고 우리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우유를 먹어야 하니까. 젖은 모래가 못내 신경 쓰이는 복실이. 모래 묻은 발이 더럽다며 마구 털어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 있으면 젖은 발이 마를 거다. 모래는 그때 털어내면 된다. 씻을 필요도 없다. 오랜 경험의 산물이 나를 여유롭게 만든다. 하하.


다리를 쭉 펴고 바다를 보고 앉았다. 바닷바람이 살랑거리며 발가락 사이에 붙은 모래 사이를 지나갔다. 노랑 빨대를 우유에 꽂았다. 복실이는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나는 쭉쭉 들이켰다. 얼른 마시고 하늘을 보고 누웠다. 우리의 돗자리는 바닥에 잘 펼쳐져 있다. 푹신한 담요 돗자리가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등에서 모래의 굴곡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복실이는 빨대를 쪽쪽 빨아먹으며 바다를 감상 중이다. 누워있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해변에 누워 있는 엄마가 이상해 보인다. 노숙자 같은가? 아이는 바다에서 첨벙거리는 한 가족을 보고 있다. 딸 둘은 바다에 들어가 놀고 있다. 부모 둘은 들어갈 준비를 한다.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응”

내가 싫다고 아이도 싫은 줄 알았다. 다음번에는 튜브라도 하나 가지고 와야겠다. 달복이도 꼭 데리고 와야겠다. 복실이도 결국은 누웠다. 갈매기가 바다 가까이 낮은 비행을 한다. 복실이가 새우깡 얘기를 한다. 제비도 난다. 잠자리도 난다.

“엄마 좋다.” 그러기도 잠시 복실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자 창피한지 벌떡 일어난다.

“사람들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리고 원래 바다에 오면 이렇게 하는 거야.”

복실이는 발에 묻은 모래가 걱정이다. 집에 갈 일이 걱정인가 보다. ‘이제 갈까?‘그러더니 조개를 줍는다. 나란히 앉아 다 말라붙은 모래를 털었다. 솔솔 잘 털린다. 복실이는 도구를 사용한다. 자신의 양말로 발을 턴다. 그리고 양말을 신는다. 완벽하다. 집까지 금방이니 가서 발부터 씻으면 된다. 짐을 챙기고 담요를 털었다. 바닷바람에 양탄자처럼 공중부양을 하는 보송한 담요를 탈탈 털었다. 말아서 팔에 끼우고 반대 손으로 복실이 손을 잡았다. 모래 계단을 올라가 시멘트 턱에 앉아 신발에 따라온 모래도 털어냈다. 차를 돌려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침의 바다

바다에 가면 바닷바람을 허파에 가득 담아 온다. 우리는 그 바람을 매일 조금씩 나눠먹고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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