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계획서 작성
방학이 되면 나는 아이들에게 늘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챙겨주고, 생각하고, 계획을 짠다. 아이들의 방학인데 내가 왜 그러는 걸까. 계획은 아이들이 짜야하는데.
복실이가 복실이 혼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간다고 했다. 약간의 동의를 구하는 그러나 단호하게 이제는 혼자 갈 수 있다는 표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이들 스스로 시간을 채워갈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했는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하루 종일 게임으로 채울 것을 안다. 과연 그럴까? 아이에게 계획표를 짜 보라 말이라도 한번 해봤던가. 그저 나의 어림짐작으로 그들의 시간과 선택권을 강제로 빼앗은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묻는다.
엄마 해도 되나요?
이거 해도 돼요?
저거 해도 돼요?
계속 묻는다.
부모의 적극적인 자세가 수동적으로 앉아 허락을 구하는 아이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하나의 과제가 끝나거나 놀이가 끝나면 30분 또는 한 시간 단위로 나에게 허락을 구한다. 어린 시절에는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그렇게 묻던 아이들. 화장실 문의 열쇠를 벗어던지면 좀 자유로운가 했더니 이제는 사사건건 다 묻는다. 방학이 되며 나와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더 두드러지게 묻는다. 특히 우리 막내 복실이가 제일 심하다. 정말 심각한 껌딱지, 그 이상이다.
그럴 때이니 그럴 테지. 큰 아이들도 다 그런 시기를 지나갔다. 이제는 핸드폰을 봐도 되냐 안 되냐 묻기는커녕 보는 핸드폰을 빼앗으려 들면 방어를 하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유를 만들어 내는 다 큰 아들들이다. 달복이는 카톡으로 단체 채팅을 해야 한다고 자주 그런다. 학교 동아리, 방송반 단체방이라 예의를 지키라고만 당부한다. 과연 채팅만 할까. 이제는 사사건건 내가 간섭할 수 없으니 스스로에게 맡기고 일정 부분 눈감고 가는 수밖에 없다. 너무 과하게 핸드폰에 목매고 있으면 잠시 부모의 권위로 핸드폰을 보관해 준다.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운영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독립하면, 커서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안 되는 것일까. 큰아이들처럼 복실이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그늘을 지나 핸드폰과 게임에 모든 시간을 갖다 바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방학이 되며 모든 것에 허락과 동의를 구하는 복실이를 돌보고 있다.
“엄마 놀아도 되나요? 엄마 책 읽어도 돼요? 엄마 이 물 먹어도 돼요? 엄마 전화 해도 돼요? 엄마 그림 그려도 돼요? ”
그러던 복실이가 물었다.
“엄마 아이스크림 사러 혼자 다녀올게요.”
결이 다른 물음이었다.
‘물론이지.!‘
질문을 많이 하면 는다더니 과연 그렇다. 나야 잘 기다려 주었다. 드디어 아이가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걸어간다! 누구의 도움 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가 아닌 자신의 발로 자신의 의지로 걸어간다.
3학년이 되며 학교 앞 문방구, 편의점, 분식집에서 간식을 사 먹기 시작한 아이의 활약상을 드디어 구경할 수 있겠다. 가게 주변에는 인도가 없다. 차들이 마구 엉켜 다니는 차선도 없는 동네 골목길, 인도가 없는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혼자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는 것도 처음이다. 짧은 거리지만 과연 잘 다녀올 수 있을까. 1000원을 들고 간다는 아이에게 나라에서 내려준 거금이 든 귀한 카드를 꺼내줬다. 복실아 가서 아이스크림 10개 사와! 오빠들 것까지 골라 오라니 신났다. 복실이는 머뭇거림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발걸음이 씩씩하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는 말에 달복이가 따라가려고 하는 걸 말렸다.
‘한 번만 참아줘라, 오빠야.’
자신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한다.
“복실이한테 10개 사 오라고 했어. 혼자 가는 거 한번 연습해 보는 거니까, 기다려봐.”
아이스크림 10개를 사 온 복실이는 밖이 많이 덥다고 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아이스크림 가게에 다녀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 온 아이스크림을 늘어놓고 인증 사진도 찍어 보내줬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방학은 도전의 시간이다.
복실이의 아이스크림 사러 가기 도전이 내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아이가 학교에 머물렀던 시간을 부모가 다 채워줄 수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채워야 하는 시간이 생긴다. 스스로 건강한 계획을 짤 수 있는 존재로 키워주자. 자신의 시간을 운용하는 것이 자산이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채우라고 한다면 시간표 전부를 게임으로 채울 것인가? 과연 그럴까?
방학 즈음이면 학교에서 동그라미 방학 계획표를 만든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늘 근사하게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 아이들은 놀 시간, 잠자는 시간을 분배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한 번은 놀기와 잠자기로 도배된 달복이의 진솔한 방학 생활 계획표를 보고 얼마나 웃었던가. 아이들도 나름의 계획이 있을 테다. 초등 어린이도 그렇다. 근사한 계획은 부모의 바람이고 아이들도 무언가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이스크림을 혼자 사러 갈 거야, 갈 수 있어, 가보고 싶어. 그런 마음속의 꿈틀거리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침, 마음먹고 공책 두 장을 쭉 찢었다. 우동 사발을 뒤엎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달복이와 복실이를 불렀다.
“오늘의 계획표를 세워봐. ”
이불을 개다 말고 거실에 나온 달복이, 양치질을 하려다 불려 나온 복실이 남매가 둘의 머리를 맞대고 바닥에 엎드리고 앉았다. 출근 시간 준비가 바쁘지만 아이들의 생활 계획표 작성이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그깟 이불이랑, 양치질이 중할까. 10여분 동안 달복이와 복실이는 계획표를 작성했다.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게임하기’는 없다. 점심을 먹고 한참 있다 ‘놀기’가 있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이제는 시간 개념을 안다는 것이다. 출발과 도착 시간을 얼추 계산하고 학원이 있는지 없는지 저녁에는 할머니 집에 갈 것인지 아닌지 고려를 한다. 그렇게 두 아이의 하루 생활 계획표가 완성되었다.
출근하려는데 난데없이 달복이가 학교 가방을 메고 나선다.
“웬 가방이야?”
“가게에 가서 책 읽으려고요.”
가게에 도착해서 아이들의 계획표를 각자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곳, 그들의 눈높이에 붙여놨다. 달복이 것은 냉장고에, 복실이 것은 한쪽 기둥에. 점심까지 두 아이는 미디어 없이 자유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계획표를 깜빡 잊은 복실이가 물었다.
“엄마 놀아도 돼요?”
‘그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어휴.’
아이들의 계획표를 상기시켜 줬다.
“지금은 뭐 하는 시간이야?”
둘 다 1시까지 점심시간이라는데, 밥을 다 먹은 시간은 12시 29분이다.
“밥시간이 남았는데 얘들아, 계속 먹어야 할 것 같은데? 흐흐.”
어쩌나 봤더니 복실이는 수박을 더 가지고 와서 먹는다. 달복이는 복실이 옆에 와 앉는다.
“오빠 수박 국물 먹을래?”
“나는 속이 안 좋아 그만 먹을래.”
수박을 마저 다 먹은 남매는 계획을 수정해야겠다며 머리를 맞댔다.
“넌 학원 몇 시에 가? 나는 그 시간을 낮잠 시간으로 바꿔야겠다.”
“수업은 한 시간으로 정했으니까 오늘은 한국사 말고 독서로 들을까?”
이러쿵저러쿵 둘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시간표는 수정되었다.
지금은 2시 30분, 아이들은 게임을 한 지 1시간이 좀 넘어간다.
“복실아, 학원은 몇 시에 간다고 했지?”
가끔 이렇게 계획 시간표 속 시간을 상기시켜 주는 일만 하면 된다.
내가 일일이 결정을 안 해줘도 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아이들의 시간은 아이들이 운영하는 게 맞다. 그들도 하루를 게임으로만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아침 하루 계획표 작성하기를 독려하기 하면 된다. 하루 계획표를 만들고 실천하는 건 아이들 몫이다. 잘 될 것인지는 모르겠다. 해 봐야 알지.
나는 매일 사발 동그라미 그리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얘들아, 엄마 동그라미 엄청 잘 그리지!”
“에이~ 엄마 그릇 엎어놓고 그린 거 다 봤거든요!” 언제 그것을 다 봤을까 흐흐.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시간을 넘겨줬다. 그건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시간을 아이들은 무엇으로 채워 넣을 것인가, 기대된다. 달복이는 아직 가방을 열어보지 않았다. 복실이가 학원에 가고 달복이는 혼자 남았다.
“달복아 뭐 하는 시간이야?”
“잠자는 시간인데... 사람이 어디 다 계획대로만 살 수 있나요? 그럼 기계지.”그러면서 계속 게임 중이다. 이런! 오밤중에 하루 계획표를 점검하는 시간도 가져야겠다.
큰 아이들 어릴 적에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중학생 아들은 핸드폰을 보다 게임방에 갔다. 고등학생 아들은 학원이 뭔가를 해줄 것을 기대하며 학원에 가 있다. 내 손을 떠나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가진 아이들은 둘러 둘러 그들의 길을 찾아갈 테지만 좀 후회된다. 지금은 그저 믿고 지켜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