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옥수수를 삶는다.

by 눈항아리

남편은 급 흥분 상태다.

옥수수를 따왔다.

어제는 조금 오늘은 많이 따왔다.

내일은 더 많이 따온다고 했다.

남편은 옥수수를 좋아한다.

옥수수 어디가 좋냐, 먹는 게 좋을까?

먹는 것보다 옥수수 삶는 데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출근하자마자 대형 찜솥을 찾는다.

주방 이곳저곳을 뒤져 소금과 설탕을 찾는다.

숟가락에 퍼서 막 들고 다닌다.

줄줄줄 흐른다.

주방 바닥에!

푹푹 오랫동안 삶아야 하니 내 눈치를 보다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간다.

로스팅룸에서 옥수수를 삶는다.

한 냄비 삶아서 한 개 먹고, 두 개 먹고, 어머님께 배달한다.

배달맨은 복이 당첨.

복이는 어제도 오이 배달, 옥수수 배달을 했는데,

오늘은 복동이 차례인가 했더니,

복동이가 오늘은 오이 배달만 하고 도망갔다.

그래서 옥수수 배달은 또 복이 당첨이다.

복이는 옥수수 배달을 했다. 그러고 도망갔다.

이 더위에 더운 옥수수를 들고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더위는 피하는 것이 인지상정.

똑똑한 녀석들, 이 더위에 이 어미와 나이 어린 동생들을 두고 가다니!



옥수수는 오십몇 개, 얼추 육십 개.

한 냄비에 열한 개씩 넣고 삶았다 한다.

한 냄비, 두 냄비, 세 냄비... 다섯 냄비를 삶았다.

첫 번째 냄비를 삶았다.

점심 다 먹은 배부른 아이들 먹으라고 식탁에 올려 두었다.

배부른 나에게도 자꾸 먹으라고 했다.

두 번째 냄비를 삶아서 손님께 드렸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우리 집 단골손님,

여덟 살 꼬마 아가씨가 맛있게 먹었다.

세 번째 냄비를 삶았다.

옆집 할아버지랑, 구둣방 아저씨네 가져다 드렸다.

가까우니 남편이 배달했다.

네 번째 냄비를 삶았다.

배달맨은 아무도 없다.

언니가 와서 한 냄비 가지고 갔다.

복실이와 달복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왔다.

다섯 번째 냄비가 부글거리고 있었다.

20분 걷고 와 더위에 놀랐다.

증기가 폴폴 올라오는 구수한 냄비 옆에서

시원한 바람 쐬며 한 잠 늘어지게 잤다.



다섯 번째 냄비를 다 삶았다.

배달맨은 아무도 없다.

없기는 내가 있다.

아무도 없을 때는 내가 출동한다.

찜통더위에 찜통에서 삶은 옥수수를 들고 간다.

이 더운 날 달복이의 오른손을 꼭 잡고 간다.

달복이의 왼손에는 옥수수가 들려있다.

“엄마 따뜻해.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져.”

옥수수 좋아하는 애들 할머니께 배달해 드렸다.

어머님은 남편에게 전화로 그랬단다.

“옥수수를 육십 개나 삶았다니! 종일 옥수수를 삶을 정도로 손님이 없냐, 밥은 먹고사냐.”

“옥수수는 불에 얹어놓으면 삶아집니다, 어머님.”

아들이 삶아준 옥수수가 탱글탱글 맛있다고 하면서도

혹여 장사가 안 될까 걱정하는 어머님이다.


내일은 딸 옥수수가 더 많다.

며칠 열심히 따야 하는데 밤부터 큰 비소식이 있다니 걱정이다.

옥수수를 딸 수 있을 것인가.

비 맞은 옥수수가 맛이 있을 것인가.

남편은 걱정한다.

빗소리를 맞으며 내일은 밤까지 삶아야 하는 거 아닐까.

비 오는 날 먹는 따뜻한 옥수수도 맛있다.



남편이 삶은 옥수수는 정말 맛있다.

그 맛을 들이면 다른 옥수수는 못 먹는다.

옥수수 안 좋아하는 나도 하나 들면 또 손이 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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