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퇴임식장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 37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줄에 앉은 직원들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무엇을 남기고 가는 걸까?
사업 실적표 숫자일까? 승진 발령장 개수일까? 아니면 표창장 개수 일까? 아니었다. 진짜 흔적은 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 무언가였다. 조직에서의 흔적이란 직급이나 성과의 숫자가 아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무언가다.
유능한 관리자는 조직의 성과를 높이고, 훌륭한 리더는 성장하는 리더다. 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곁에 있는 사람을 바꾸는 거라고 한다.
배울 때 사람은 성장한다. 함께 배우다 보면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뀐다. 사람이 성장하면 조직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리더로서 우체국 실적에만 매달리지 않고, 공부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임지마다 세 가지 영역에서 직원들 마음속에 스며들고자 애썼다.
첫 번째 흔적, 성장하는 사람들
"국장님, 저 요즘 퇴근하고 책 읽어요."
신입사원 시절 업무 파악도 벅차하던 김 대리가 어느 날 수줍게 말했다. 그의 손에는《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들려 있었다. 필독서 12권 중 한 권이었다.
사람은 성장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술을 끊고 책 읽고 자기 계발하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조직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조직이 성장하려면 구성원이 먼저 성장해야 한다.
부임지마다 세 가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필독서 12권을 선정해 매월 독서모임을 열었다. '점심시간 놀먼 뭐하노', '자기경영관리'라는 자기 계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직원들이었다. 국장님, 업무도 바쁜데 책까지 읽어야 해요? 라며 불평하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면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직원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퇴근 후 도서관에 들르는 직원들도 있었다. 한 사람이 성장하자 옆 사람도 따라 움직였다. 직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입꼬리가 쭈욱 올라간다. 내가 그랬기에, 그 기분 알기에.
두 번째 흔적, 섬김의 문화
새로 부임한 첫날, 나는 국장실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누군가 수시로 문을 닫았다. 앞에 방문했던 사람이 닫지 않은 줄 알고. 주간 경영전략회의에서 과장, 실장들에게 이야기했다.
"문을 항상 열어 둘 테니, 누구나 부담 없이 차 한잔하러 오라고."
국장실 문 개방은 내 마음도 열려 있다는 신호였다. 권위적인 조직문화는 직원들을 위축시키고 창의성을 죽인다. 반면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면 서로를 섬기게 되고, 결국 조직 전체가 고객을 섬기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매주 월요일 아침 경영전략회의 운영방식을 바꿨다. 부진한 실적 질책하는 긴장된 분위기가 아니라, 축제 분위기로 만들려고 애썼다. 작은 성과를 자축하고, 용기와 격려해 주는 문화로 만들었다. 성과가 부진한 부분은 힘을 실어주었다.
권한은 부서장에게 위임했다. 부서장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부서를 운영했다. 책임감은 물론 조직이 활기로 넘쳤다.
어느 날 김 대리가 휴가를 받고 왔다며 딸기 한 박스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국장실로 왔다.
"국장님, 휴가 받을 때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받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휴가 신청할 때 국장이나 부서장에게 찾아가서 휴가 받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전자결재만으로 휴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처음엔 걱정하는 부서장도 있었다. 무분별하게 휴가를 내면 일이 안 돌아간다고. 하지만 기우였다. 동료끼리 알아서 일정을 조율했고, 오히려 더 책임감 있게 일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세 번째 흔적, 실적보다 태도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는 실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태도다. 수십 년의 경험이 가르쳐 준 진리였다. 실적은 좋지만 동료를 무시하는 직원보다, 아직 서툴러도 동료를 배려하고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직원이 장기적으로 조직에 더 큰 가치를 준다. 내가 강조한 태도는 다섯 가지였다. 배려, 친절, 존중, 정직, 솔선수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믹스커피 문화'. 누군가 힘든 일을 마치면 동료가 먼저 나서서 커피나 차를 타서 제공했다. 리더인 내가 먼저 모범을 보였다. 커피포트에 보온으로 유지된 약차를 직원들이 오면 바로 컵에 따라 제공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식사나 차를 마실 때 지갑을 먼저 열려고 노력했다. '리더는 밥값 내는 사람이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문제다. 리더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 팀원들도 자신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게 된다. 베풀면 몇 곱절로 되돌아온다.
지난 주말, S 우체국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 한 명이 승진했다며 만나자고 했다. 은퇴한 지 3년. 잊지 않고 불러줘서 고마웠다. 모임 장소에 가보니 다섯 명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우체국으로 발령 나 흩어졌던 그들이, 옛 동료의 승진을 축하하며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국장님과 함께 근무했을 때가 제 우체국 생활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어요. 감사합니다. J 국장은 바인더를 꺼내 보여주었다.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하는 스케줄표였다. 국장님께 배운 시간관리 덕분에 여유가 생겼어요.
K 과장은 신규 직원 교육 강사가 되었다며 자신이 만든 '고객 응대 매뉴얼'을 펼쳐 보였다.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섬김의 리더십'.
또한 그들 중 두 명은 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읽었던 책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성장을 향한 노력, 서로를 섬기는 문화, 삶을 대하는 태도. 3가지가 우체국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내가 빛난 이유는 그들이 빛났기 때문이다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리더는 언젠가 떠난다. 내가 떠난 자리, 후배들이 서로 성장하고 배우고 섬기고 나누는 문화를 이어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4시 30분에 일어났다. 명상, 독서, 모닝 저널, 글쓰기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7시. '부산큰솔나비 독서모임' 191회를 진행했다.
퇴임식 날. 12자루 펜이 들어있는 박스를 선물 받았다. 펜에는 '행복하세요! 정인구'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런 메모 쪽지와 함께. "10년 동안 써도 다 못 쓸 만큼 드립니다. 국장님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랍니다."라고. 덕분에 억지로라도 끄적끄적 글을 쓴다.
은퇴했다고 해서 영향력까지 은퇴하지 않았다. 더 넓은 방식으로 계속 빛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그 조직에서 얼마나 빛났는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빛나게 했는 가다. 퇴직 후에도 그들 기억 속에 작은 흔적으로 남아 더 많은 열매를 맺길 소망한다.
내가 바랬던 흔적,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섬길 줄 알아야 행복도 성공도 가능한 법이다.
덕분에 오늘까지 <세상은 왜 부하직원 편만 드는가!> 40편을 완성했습니다. 졸필에 응원해 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제주 광치기 해변 일출 영상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