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양쪽으로 억새풀이 햇볕을 받아 은빛으로 출렁거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억새 숲을 타고 능선을 따라 불어와 겨드랑이를 간질거렸다. 갈대 부딪히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다. 참새가 작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째잭, 짹짹 조잘조잘거리다가 앞쪽으로 날아갔다.
등선을 오르며 아내가 "~와 좋다"라고 소리 질렀다. 팔순이 넘은 처형이 "참 좋다. 외국까지 갈 필요 없다니까!"라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두 팔을 벌려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제주 공기는 어쩐지 다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어휘력이 아쉽기만 하다.
왼쪽에는 분화구처럼 푹 패인 곳에 잘 정돈된 연초록색 잔디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중간중간 화산석이 방금 물을 머금은 것 같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아래쪽에는 잘 정돈된 잔디 위에 '산. 굼. 부. 리'라는 하얀 글 조형물이 있다. 글자를 배경 삼아 남녀 한 쌍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모습 아름다워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에 담았다.
동행한 친지들은 도로를 따라 둘러 왔지만, 나는 그만 담을 넘어 그곳으로 향했다. 잘 정돈된 잔디가 푹신푹신했다. 잔디밭에 대자로 누웠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고 손바닥만 한 크기 파란 하늘이 빼꼼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 굼. 부. 리 글자가 있는 조형물에 다가가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담을 넘어왔다고 아내'에게 한 소리 들었다.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억새풀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는 팻말이 보였다.
억새는 '산이나 들에서 자라고 동물 먹이용'으로. 갈대는 '습지나 강가에서 자라고 빗자루 등 생활용품'으로 쓴다는 것만 알기로 했다.
갈대숲으로 이동했다. 잘 정돈된 억새 숲 사이로 사람들이 완두콩같이 줄지어 오고 갔다. 갑자기 보슬비가 내린다.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새 숲을 즐겼다.
제주에 가족여행을 왔다. 처형과 처형 네 딸과 아들 부부, 우리 부부와 함께.
장모님은 결혼 전 돌아가셨다. 올해 82세인 처형은 나에겐 장모님이나 마찬가지다. 처형이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하기로 한 여행이다. 경북 영양 '자작나무 숲 여행'을 시작으로 분기에 1회. 올해로 3년째다.
산굼부리 입구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맞다. 가족과 함께 한 3년의 인생 여행!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 팔순 처형이 얼마 전부터 발목이 약해져 거동에 약간 무리가 있다고 했다.
"참 좋다. 외국까지 갈 필요 없다니까!"라는 처형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처형이 하늘나라 가면 이 여행이 계속할 수 있을지 염려됐다. 계속하고 싶은 데 100살, 150살......,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하길 기도했다.
인생은 마라톤, 가족은 페이스메이커다. '좋다. 참 좋다. 함께라서 좋다.'
억새는 동물의 먹이로, 갈대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생활용품으로 사용된다. 내 삶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먹이로,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