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콰광. 뒤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와
총소리가 났어.
어머니 손에 끌리다시피 달리는데,
총알이 내 발 바로 옆에 떨어졌어.
하늘이 도운 거지.
처형은 6.25전쟁 피난 길에
있었던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아버지와 전쟁통에 헤어졌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어......,
80년이라는 세월은 한 인간이
살아 낸 대하드라마와 같습니다.
지난해 팔순잔치를 했고,
81번째 맞는 생일잔치에 참여했습니다.
팔 순 잔치로 모였을 때
생일 때마다 함께 모이기로 했지요.
그동안 삶이 녹록했을 리 없지만,
늘 꿋꿋하고 포근하게 가족들을
품어주신 처형.
장모님이 안 계셔서 저에겐
장모와도 다름없었습니다.
교회 행사가 있었지만 기꺼이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형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들이 원근 각지에서 하나둘
포항으로 모였습니다.
그날만큼은 누구도 바쁘단 말을 하지 않았고,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형제자매, 조카들 사이엔
밝은 웃음과 따뜻한 눈빛이 오갔습니다.
포항의 고즈넉한 한정식집 ‘안다미로’
정갈한 한옥 스타일의 건물,
잘 다듬어진 정원, 그리고 밤하늘
아래 조명마저 운치 있었던 그곳,
포항 안다미로는 팔순 잔치에 어울리는
완벽한 공간이었습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여긴 오길 잘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전통과 품격이 묻어나는 공간,
그리고 직원분들의 정중한 응대까지,
마치 온 가족이 한옥
고택에 초대받은 기분이었지요.
한 접시 한 접시, 대충 나온 음식이 없었습니다.
돌 위로 올라간 연어,
모양도 맛도 훌륭했던 스시와 깔끔한 한식 반찬들.
생선찜, 불고기 찜, 북어 튀김, 굴비......,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에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겠다" 라면서도
정갈스러운 상차림에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습니다.
귀여운 깃발이 꽂힌 복어 튀김을 보며
가족 중 어느 분이
“이 집 센스 있네~”
하며 웃음 짓게 했습니다.
먹지 않아도 무슨 튀김인지 알도록
복어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사이
거리도 한 뼘 더 가까워졌습니다.
주인공인 처형 앞에 놓인 케이크는
그야말로 생화와 진심이 어우러진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손녀가 특별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생화를 곳곳에 배치했고, 생크림이
위에 왕관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키우주고
살아오신 할머니에게 왕관을 수여한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앞쪽에는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라는 문구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처형의 환한 웃음이 어린아이 같습니다.
말하지 않지만 눈 빛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다. 이 모든 게 너무 고맙다."라고.
마당엔 국화, 나무엔 석류 자연도 함께 축하한 날
집 앞 정원에 노란색과 분홍색 국화꽃은
그날의 잔치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고,
봉숭아 꽃과 장독은 어린 시절 처형이
손에 물들이든 추억을 생각하게 했고
탐스럽게 열린 석류나무는
처형의 지난 세월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힘든 세월을 버텨낸 생명의 열매처럼,
그분의 삶도 그렇게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신발공장, 아파트 계단 신주 닦기,
청소일 등 힘든 여정 속에서도
아들, 딸을 잘 키웠습니다.
큰딸은 서울대학교 졸업했고,
큰 아들은 대기업에, 목사로.
작은 아들도 대기업에 간부로
잘 키워내셨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언제나 빛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슬픔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지금 이렇게 자리를 지킨 당신이야말로,
가족들의 버팀목이며
존경받아 마땅한 인생입니다.
가족의 눈빛에서 모두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진 세월을 살아온
당신으로 충분합니다.“
팔순 언니가 그랬듯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살아내는 일'입니다.
모진 세월 부여잡고 끝까지
살아 낸, 살아온
우리 모두는 이미 영웅입니다.
실패에 대한 자책은 이제 그만.
당신으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가족은,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나 따뜻하고
함께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입니다.
장모나 마찬가지인 우리 처형!
앞으로 살아갈 날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하늘 가는 그날까지 함께 하기로
다짐해 봅니다.
가족!
두 단어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사랑도, 존경도, 감사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한
사랑의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