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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잠을 설쳤습니다

by 정글


어제 나는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오늘은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연못가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연잎은 젖지 않고 빗방울을 받아냅니다. 젖지 않는 연잎이 미워집니다.







잎이 비를 밀어내는 것 같아 서럽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약해집니다. 연잎이 차오른 빗물을 쏟아냅니다. 내 안에 고이지 안은 당신, 내 생각 밖으로 쏟아지는 당신.


계절이 서붓 옮겨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이 착오 없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곧 풀벌레 울음이 짙어지고 감잎이 붉어지고 쇠무릎이 관절을 꺾을 것입니다.

※서붓 : 소리가 거의 나지 아니할 정도로 발을 가볍게 얼른 내디디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당신이 없는데도 날이 저뭅니다. 당신이 없는데도 버젓이 저녁이 옵니다. 저녁이 와서 가로등이 켜지고, 가로등이 켜져서 길이 환해지고, 길이 환해져서 마치 내가 당신을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난감해집니다.

출처 : 림태주 작가 《오늘 사랑한 것》 P71


치통에 잠을 깼습니다. 새벽 2시. 약통을 꺼냈습니다. 밴드, 후시딘연고, 붕대, 솜... 진통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까지 지끈거립니다. 주전자 물을 덮여 미지근하게 물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소용없습니다. 찬물을 머금으니 시리고 더 아픕니다. 따뜻한 물수건을 볼에 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뇌를 속여 아픔을 견디볼 요량으로 푸시업하고, 웃기는 컬투쇼 영상을 보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액션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병원 문 열기만 기다렸지요. 동네 병원에 갔더니 예약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기실에 환자들이 꽉 찼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 환자들로 붐빕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치통 때문에...,"

"오전 내내 수술이 잡혀있어 오후 2시 이후에 진료가능하지만, 그때 와도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다행히 치통은 견딜만했습니다. 인근 주민센터에서 《오늘 사랑한 것》책을 읽었습니다. 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어쩜 이리도 애절하게 표현했을까? 림태주 작가가 슬슬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아픔에 비하면 치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 2시. 인근 국숫집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치과에 갔습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간호사 말, 이제 그만 듣고 싶습니다. 소파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카톡 답장하고, 다음 주 독서모임 10분 세바시 할 대상 전화하고, 블로그 포스팅, 지인 전화..., 예약시간에 따라 10여 명의 사람이 진료받으러 오고 간 것 같습니다.



오후 4시 30분 오랜 기다림 끝에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기다림은 우리 삶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첫사랑의 설렘을 기다리고, 아픈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다리고,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기다림이 힘들지만은 않은 것은, 그 속에 반드시 희망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마치 차가운 겨울 끝에 반드시 찾아오는 봄처럼, 우리의 기다림 끝에는 늘 따스한 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아도,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비우는 시간처럼 어느새 지나가 버리곤 합니다. 지난밤 치통의 불면이 달콤한 숙면으로 바뀌듯이 말이에요.


저 멀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삶이 선물한 오늘이라는 시간, 당신의 하루가 축복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최고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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