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이해한다.
만물에는 똑같은 법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로댕
은유.《쓰기의 말들》. 필사. 사십네번째이야기. P109
<문장 여행>
한 가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이해한다. 만물에는 똑같은 법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는 건 타인과 부대낌의 연속이다.불가해한 남편과 행복과 번뇌의 근원인 아이들, 시금치도 싫어하게 한다는 시댁 식구까지 면면이 다 제각각이다.
억울한 것도 불편한 것도 복받치는 것도 궁금한 것도 많아 신경세포가 늘 예민하게 살아있으니 '빨간 약'처럼 스미는 문장이 많은 것 같다.
공부는 독서의 양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이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 가며 다진 인식들.
그러한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쓴다고, 책만 읽는다고 공부가 아니다. 집에서 애들 키우며 속상해하고, 부부끼리 다투는 것,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지람 듣고, 고객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처럼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이 공부다. 그러는 가운데 공감 능력이 자라고 세상을 보는 통찰력과 삶을 해석하는 지혜도 쌓인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는 건 타인과 부대낌의 연속이다. 불가해한 남편과 행복과 번뇌의 근원인 아이들, 시금치도 싫어지게 한다는 시댁 식구들"이라는 은유 작가의 글을 보고 탄복했다. 결혼하지 않고서, 아이를 키우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다. 결혼하고 애 키우고 살림사는 일이 공부이고 삶이다.
종종 갑질하는 사람들이나 일부 양심 없는 정치인을 보면 당당해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갈 때가 있다. 그들은 외부 세계와의 접점 없이 학교에서 제한된 관계만 맺으며 공부만 했거나, 주로 대접받고 산 '갑'의 자리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슬픔, 아픔, 울분과 같은 내면의 깊은 감정을 형성할 기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 책벌레로 유명한 이덕무는 "농사짓고, 나무하고, 고기 잡고, 가축을 기르는 일은 사람이 평생 동안 해야 할 본분"이라고 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각자의 재주와 능력에 맞게 하면서, 틈새 시간을 이용해 독서하고 배우고 익혀는 것이 참된 공부라는 말이다.
어제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태양이 따가웠다. 폭염경보가 메시지가 연신 날라왔다. 사무실로 가다가 부산진 문화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에어컨이 빵빵했다. 카페처럼 종업원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커피나 차를 시킬 필요도 없다. 종일 노트북을 켜고 죽돌이가 돼도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단지 집처럼 너무 편해 자주 침을 흘리며 졸다가 깨기를 반복한다는 흠이 있다.
강의안 만들고, 블로그 포스팅 마치고 보니 벌써 저녁 7시를 넘기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관리직원에게 뭐라고 주고 싶었다. 가방을 뒤져기다가 콜라겐 한 봉지를 꺼내 건넸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고맙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이뻤다.
문화센터 맞은편 마트에 들렀다. 예전에는 종업원 두 명이서도 바쁘게 움직였는데 요즘은 혼자뿐이다. 매대는 듬성듬성 비어있고 손님은 나 하나였다. 계란과 바나나, 쿠키, 카페라테를 담았다. 계산대 앞으로 갔다. 종전에는 작은 컵에 야채주스 따라 건네며 '새콤달콤 맛있다'라며 은근히 사라는 압박(?)을 했는데 오늘은 힘이 없어 보인다. 말을 툭 던졌다.
"예전에 두 분이 근무했는데 요즘 혼자네요. 힘들겠어요?"
"아닙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정규직 직원 한 명도 얼마 전 그만두었어요."
힘없이 대답하며 천천히 물건을 스캔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저기 있는 야채 주스도 한통 주세요, 50% 딱지 붙어 있는 빵도 같이요."
종업원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환하게 웃으면 인사하는 종업원 얼굴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맨날 사 줘야 되는 거 아냐.’
세상살이 별거 아닌 것 같다. 콜라겐 한 봉지, 야채 주스 한 통이면 충분히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공부는 독서량을 늘리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맥락 만들기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 가며 다진 인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때 글쓰기로서 공부가 는다."
라는 은유 작가의 글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허드렛일이 공부다. 톨스토이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인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면 오늘 하루 접하는 모든 일상이 공부인 셈이다. 하여 글공부하는 수강생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쓰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일상이 공부이고, 오늘 하루에 모든 인생이 함축되어 있으니까.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됩니다."
하반기 첫날입니다.
행복한 나날 만들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