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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May 03. 2020

나비, M할머니의 완벽한 디너파티

COVID19도 막지 못한 봄 파티 감동

3월부터 이웃 M할머니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만나 산책을 했었다.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뉴스를 보시고 나의 양가 어른들 안부를 종종 물어봐주셨다.


미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웃 M 할머니는 약간 의기소침해 보였다.


"Do you konw what is a social butterfly?"


산책을 하다 갑자기 물어오셨다. 모른다고 하니 본인이 social butterfly라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침울함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지 못함에 대한 우울함 때문이었다. 내향적인 편으로 집에 일주일을 가만히 있어도 편안한 나와는 정반대셨다.


얼마 뒤 함께 산책을 했는데 걸음이 아주 경쾌하셨다. 어쩐 일이신가 살펴보려는데 눈을 빛내며 말씀하셨다.


"디너파티를 열거야. 다들 축 처져있어. 기분을 상쾌하게 할 이벤트가 필요해. 우리 집 주변 사람들 중 원하는 사람들과 디너파티를 해야겠어."


이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이지 말고 다른 사람 집도 못 가게 해서 요샌 헤어질 때 그 다정한 포옹 인사도 못하시고 계시잖아요?


눈이 똥그래진 나에게 말씀을 이으셨다.


"파티 음식을 준비해서 집마다 나눠주는 거야. 다 같이 같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지내는 거지. 봄맞이 디너파티야. 난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를 해야 해. 재밌겠지?"


요리를 겁내는 나에겐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과연 그날 저녁, 아래와 같은 쪽지가 담긴 봉투가 문 앞에 붙어있었다.


20.03.25. Spring Dinner 초대장

봄 디너파티를 할 테니 음식 받고 싶은 사람은 메시지로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M 할머니 댁 주변에 다 나눠주신 모양이었다. 신청을 하고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냐고 여쭤보니 문제없다고 하셨다.


쪽지에 적힌 날, 정확한 시간에 종이 박스와 종이백에 담긴 음식을 담아 문 앞에서 전해주셨다. 내가 상상한 이상이었다.


20.03.28. 준비해주신 Dinner Party

꽃다발까지 준비해주셔서 감동이었다. 포도주, 맥주, 탄산음료까지 있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챙기셨냐 여쭤보니 댁에서 실제 파티를 한다면 꽃과 포도주를 준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20.03.28. 메뉴와 먹는 방법, 추천 음악 메모

메뉴와 먹는 방법, 심지어 추천 음악까지 적은 안내서도 있었다. 라자냐는 뜨거웠고, 모든 소스부터 빵과 파이에 뿌리는 과자 가루까지 모두 수제였다. 꽃다발을 빈 유리병에 꽂고 음악을 틀고 음식을 차려놓으니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온 느낌이었다.


디저트인 호박파이는 흔히 알던 파이 모습이 아닌 작은 유리병에 담긴 떠먹는 파이였다. 기분이 상큼해졌다. 우리 주변 가정들이 모두 같은 메뉴로 같은 분위기에서 저녁을 근사하게 먹었을 상상을 하니 정말 파티를 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다.


봄 나비가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식탁 꽃 주변을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Social butterfly(사회적 나비), M 할머니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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