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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Apr 25. 2020

안 매운 한국 요리, 뭐가 있지?

2020년 2월. 음식으로 알린 한국 문화

(2020년 작성한 글입니다.)


이웃 미국인 M 할머니께서 요리를 좋아하셔서 자주 맛있는 것을 챙겨주신다. 아무래도 보답을 해야 할텐데 나는 요리를 싫어하는 것이 함정. M 할머니는 한국인과의 교류가 내가 처음이라고 하셨으니 내가 한국인의 대표인 셈이다. 외국 나가면 민간외교관이라더니 어깨가 무거웠다. 나름의 최선으로 한국 문화를 전달하기로 했다.


문제는 매운 것을 전혀 못드신다는 것이다. 목이 붓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알러지 같았다. 소개드릴 수 있는 음식의 폭이 확 줄어들었다. 2월 동안 소개한 한국 음식이 많지는 않지만 재밌는 경험을 잊기 전에 써본다.



<한국 대표 음식 불고기 소개>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한국 음식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드셔볼 생각도 하신 적이 없다고 했다. 작년 말 드신 호박전에 깜짝 놀랐다며 호기심이 생겼다고 하셨다. 더 미루는 것은 죄송하단 생각이 들어 초대를 결심했다. 매운 것을 못드시니 불고기감 고기와 당면, 팽이버섯을 준비했다.


요리는 잘 못하기에 레시피를 미리 확인하고 야채도 간단히 손질해놓았다. 당면을 불려놓고 고기를 야채와 재어 익히기 시작했다. 간은 잘 되었으나 생각보다 고기가 질겼다. 불고기에 넣은 당면을 굉장히 신기해 하셨다. 팽이버섯 맛과 식감이 매우 좋다고 하셨다. 포크를 드리려고 하니 젓가락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가르쳐 드리니 곧잘 하셨다. 어떤 것이든 적극적이고 열심이시다.


전에 애플소스를 챙겨주신 것처럼 불고기도 통에 담아드렸다. 저녁에 아들이 온다고 하시며 같이 먹겠다고 하셨다. 고기는 약간 질겼으나 아주 맛있었다고 하셨다. 내가 음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날이 올 줄이야. 요리 못하는 것이 부끄럽긴 처음이었다.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 애호박전>

20.02.21. 애호박전


질긴 불고기 사태를 만회하고 싶었다. 또 워낙 자주 챙겨주셔서 보답을 드리고 싶었다. 귀찮아서 절대 하지 않던 애호박전을 만들었다. 워낙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드시는 분이라 좋아하실 것 같았다. 덕분에 남편과 아들이 웬일이냐며 신나게 먹었다. 양념장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매워서 못드실 것 같아 간장과 식초로만 소스를 만들어 같이 드렸다.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셔서 같이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맛있는지 자꾸 집어서 드셨다. 이번엔 성공한 것인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만들어볼까 싶었다.



<한인 마트 탐방>

2월 말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도 영향을 미쳐 마트 가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말을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았지만 솔직하게 설명했다. 너무나 쿨하신 M 할머니는 자신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지만 혹시 감염이 무서우면 안가도 된다고 하셨다. 워낙 인구 밀도가 낮고 우리 지역은 아직 퍼지지 않아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처음 정한 약속일에 마트로 향했다. 미국의 아시안들은 대부분 아시안 마트에서 쌀, 야채, 육류, 해산물, 소스류를 구입한다. 스테이크용 육류, 과자, 밀가루, 케첩, 아이스크림, 냉동식품 등은 미국 마트에서 구입한다. 미국 마트에는 야채가 다양하지 않다.


이 지역의 큰 아시안 마트는 한인 마트 하나 뿐이다. 양파, 마늘, 파 등이 싸다고 설명해드렸다. 배추와 무는 김치 재료라고 말씀드렸다. 두부는 어떤 요리를 해도 아무 맛도 안나서 싫어한다고 하셨다. 매운 것을 드실 줄 알면 두부 조림을 맛보여 드리고 싶었건만 아쉬웠다.


각종 김치와 밑반찬을 구경시켜드렸다. 육류의 경우 미국 마트에서는 삼겹살을 찾을 수 없다. 다 베이컨으로 만들거나 손질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시안 마트에는 돼지 귀, 소꼬리를 비롯한 다양한 식재료를 판다. 미국인은 꼬리를 먹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먹기는 하는데 미국 마트에 팔지 않는다며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닭도 손질 방법이 다르다. 한국은 닭목을 남기는데 미국은 닭목을 잘라 손질한다. 가끔 닭 뱃속에 플라스틱 봉지와 닭목이나 닭똥집 등을 넣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규칙이 없다. 처음 손질할 때 깜짝 놀랐던 얘기를 해드리자 막 웃으시며 안에서 꺼낸 것을 다 버리면 된다고 하셨다.


마른 멸치를 보여드리며 드셔보았냐고 하자 눈이 동그래지며 손사래를 치셨다. 멸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볶아서 많이 먹는다고 하자 자신은 비려서 못먹는다고 하셨다. 이후 3월 즈음 마른 멸치를 튀기듯이 바삭하게 볶아 달고 짭짤하게 과자처럼 만들어 조금 드려보았는데 맛은 괜찮았지만 비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I have such an American taste palate."라고 메세지를 보내셨다.


떡도 쫀득하니 에 붙는 식감이 별로이신 듯 했다. 나라마다 확실히 문화가 달라 입맛이 다르다. 신기했다.


의외로 각종 면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국수면과 당면 말고는 나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설명을 많이 못드렸다. 식초를 보시자 신기해 하시며 우리나라 사과 식초를 구입하셨다. 냉동 만두와 한국배, 간장을 선물로 사드렸다. 전에 한국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아삭하니 매우 맛있다고 하셨었다. Target이라는 마트에서 더 싸게 판다는 정보를 알려드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타겟에서 5불에 판매하고, 한인 마트에는 7불에 판매하고 있었다.


다음에 꼭 다시 가보자고 하셔서 미리 공부를 좀 해야 할 듯 싶었다. 각종 아시안 면과 소스류가 선반 가득 있는데 나도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요리를 좋아하셔서 매우 재밌어 하셨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면 한 번 더 가기로 약속했다.




요리에 관심이 없었는데 한국 요리, 식재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맵지 않은 한국 요리는 내가 아는 것은 나물류, 간장을 베이스로 하는 달고 짠 맛의 요리 뿐이다. 시금치를 좋아하신다 하여 시금치 나물을 드려보니 맛있다고 하셨다. 다음에는 배추전을 해서 드려볼까 싶다.


민간 외교관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나 사실은 M 할머니께서 사교성이 좋으셔서 수다 떠는 재미에 자주 보게 된다. 덕분에 집순이가 일주일에 2-3번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산책을 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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