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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Apr 22. 2020

버터에 왜 버터가 없나요?

2020년 2월. 이웃은 음식으로 친해지는 거야.

(2020년 작성한 글입니다.)


1월 말, 이웃 미국인 M 할머니 댁에 초대를 받아 같이 애플소스 canning을 하고 난 후부터는 종종 엽서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영포자였던 나는 예쁜 봉투에 담긴 엽서를 보면 기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따로 글을 적을 예정이다. 어쨌든 M 할머니와의 소소한 일들과 새로 알게 된 미국 문화에 대해 잊기 전에 적어보고자 한다.



<과일 버터라면서 버터는 안 넣어요?>

같이 만든 애플소스를 먹어보니 사과잼이었다. 너무 맛있어 한동안 빵에 발라먹었다. 얼마 뒤 2월 초, 손자들과 만든 애플 버터(Applebutter)를 주셨다. 사과랑 버터가 섞이기는 하나 궁금했다. 그런데 열어보니 약간 더 진한 애플소스였다. 빵과 함께 먹으면서 의아해했다.


 '이게 버터야? 전혀 버터 같은 느낌 없는데?'


결국 검색을 해보았다. 애플 버터는 버터가 아니라 조금 진하게 끓인 애플소스였다. 블로그에 소개도 많이 되어 있는 음식이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나중에 M 할머니에게 버터라고 해서 버터로 만드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무척 재미있어하셨다.


복숭아를 갈아 설탕 넣고 조금 이면 Peach sauce, 졸여 만들면 Peachbutter가 되는 것이다.



<Hushpuppy는 강아지 아닌가요?>

우연히 마주쳤을 때 감사인사를 드리니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가보았냐며, 아직 날이 추워 사람이 없긴 할텐데 궁금하면 데려가 주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여행지만 관심이 있는 편이라 이런 기회 아니면 볼 수가 없기에 바로 감사하다고 했다.


날을 잡고 파머스 마켓에 갔다. M 할머니는 쿨하셨다. 차를 본인이 몰겠다며 터프하게 운전을 하셨다. 예상대로 아직 겨울이라 마트에는 과일을 많이 팔지 않았다. 사과나 각종 야채를 파는 가족이 2~3팀 보였다. 확실히 마트보다 싱싱해 보였다. 열린 공간을 나와서 조금 옆으로 가면 단층 건물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는 사탕, 각종 과일 버터, 음료수, 음식 등을 팔았다.


20.02.11. Farmer's Market


찻길을 건너자 식당이 있었다. 남편은 치즈를 싫어하고 여러 가지 주문하는 미국 식당을 불편해해서 외식을 거의 안 해봤다고 하니 놀라워하셨다. M 할머니 말씀으로는 이 식당 음식이 신선한 재료를 쓰고 맛도 좋다고 하셨다. 미국인의 식사 주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뉴 주문을 한꺼번에 하는데 미국은 음료 주문을 하고 나서 천천히 메뉴를 고르는 것이 여유로웠다. 대부분 모르는 메뉴라 무난하기 그지없는 치킨을 시켰다. 사이드 메뉴 2개를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샐러드 등을 시켰다. 갑자기 M 할머니께서 물어보셨다.


"허쉬파피(Hushpuppy)가 뭔지 아나요?"

"강아지(Baby of dog) 아닌가요?"


유쾌하기 웃으시더니 북미 지역에서 많이 먹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하셨다. 주문하시면서 서버에게 내가 미국 음식을 잘 모르니 맛있게 요리해달라며, 허쉬파피를 강아지라고 했다고 재밌어하셨다.


작고 귀여운 생도넛이 몇 조각 나왔는데 이게 허쉬파피라고 했다. 어릴 때 슈퍼에서 파는 도넛 가루로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도넛과 맛이 거의 같았다. 사이드 메뉴 중 하나였던 감자 샐러드 또한 어릴 때 먹던 감자 사라다랑 똑같았다. 미국 음식 특유의 향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날아갔다. 다음에 식구들을 데리고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아서 챙겨준다고 하면 화낼거야.>

파머스 마켓을 간 날 조금 몸집이 있으셔서 차에서 내려 걷는 것이 불편해 보여 가방을 들어드리려고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후로도 종종 한국 문화를 설명하면서 할머니 M이 나이가 더 많으시니 계단을 먼저 올라가시면 된다거나, 내가 짐을 들어드릴 수 있다거나 등의 말씀을 드리면 거의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지금은 그 반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주적, 독립적 성격으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챙겨주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시는 듯하다. 무시하거나 도움을 받으셔야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 때문임을 몇 번 설명드리고 나자 쾌활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나이가 더 많다고 (도와준다고) 하면 화낼 거야."


젊을 때 여행 관련 교육을 했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포용력과 호기심이 많으시다. 기분 나빠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부드럽게 알려주셨다. 나이 많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셔서 관련 설명드릴 때만 나이 이야기를 한다.



<밸런타인데이는 빨간색>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카드와 사탕을 빨간 종이가방에 담아 주셨다. 어릴 때 달고나 만들면서 넣던 소다 덩어리와 비슷한 질감의 하트 모양 사탕을 주셨다. 이게 미국 밸런타인데이에 보통 주는 사탕인데 맛은 별로라고 하셨다. 초코바나 아이스크림이 너무 달아 잘 못 먹는 나에게는 맛있는 사탕이었다.


밸런타인데이에 카드와 간식 드리는 줄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은 밸런타인데이에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준다고 하니 신기해하셨다. 남자는 뭘 하냐고 하셔서 3월 14일을 화이트데이라 부르고 남자가 여자에게 달달한 간식을 준다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미국에서 미국인을 사귀지 못했던 3년 간의 LA 생활과 비교하면 1년도 안된 지금이 미국 문화를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배우는 것은 적극적이어야 얻는 것이 많음을 새삼 깨닫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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