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이 되어 가려는 서울 사람의 단상
부산 센텀, 벡스코 역에 위치한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를 보러 가기 앞서 커피 한 잔이 생각 나 발걸음을 옮겼다.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커피빈... 널찍하고 깨끗하고, 시끄러운 프랜차이즈 카페에 혹시나 자리가 있을까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도 수많은 인파의 소음 때문에 도망치듯 다시 뒤돌아 나오게 된다. 조금 덜 부담스러운, 조용한 동네 카페는 없을까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는데 예식장 건물에 딸린 서너 개 테이블만 보이는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손님은 한 사람도 없고 카페 주인만 출입문 앞에서 서성인다.
'여기다' 싶어서 들어간 카페는 좁지만 깨끗하다. 라테 한잔에 단돈 삼천 원. 커피맛은 가격다웠지만, 무엇보다 음악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 손님이 아무도 없다는 점, 그리고 병풍형 유리문을 활짝 열어 테라스인 양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비스듬히 앉아 인근의 중고서점에서 산 소설 <개더링>을 펼쳤다. 원문은 분명 아름다운 글이었을 텐데, 미숙한 번역 때문인지 글이 지면 위에서 자꾸만 서걱거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찬찬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고요한 평화는 잠시. 한 무리의 젊은 결혼식 하객들이 우르르 카페의 모든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는다. 친구 혹은 직장동료의 결혼식에서 단체로 결혼식 사회를 보는지,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우렁찬 부산 억양으로 리허설을 시작한다. "부산의 미녀", "부산의 사나이!" 하면서 자기들끼리 진지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서울에선 누구에게서도 "서울의 미녀"라든가 "서울의 사나이"라든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이라는 지역의 소위 "지역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그동안 표준어를 "서울말"로 지정해 왔던 것처럼. 서울 시민은 서울의 특수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굳이 인지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한국인의 문화적 디폴트 상태가 서울이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부산이라는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부산 사람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약간의 경외감이랄까... "나는 이러한 지역에, 이러저러한 문화를 가진 곳에, 이러한 말투를 쓰는 곳에 산다."는 인식. 오직 중심에서 다소간 비껴있는 존재만이 가능한 자기 객관화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