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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스 Nov 12. 2020

야트막한 언덕에 누워 마추픽추를 바라보다.

feat. 종직이의 첫 번째 휴대폰 분실


     

새벽 4시에 일어나 마추픽추로 향하는 첫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새벽부터 빗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기에, 등산을 계획했던 많은 이들도 이를 포기하고 정류장 앞에 줄을 선 터였다. 첫 버스는 5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이것을 놓치면 가이드의 도움 없이 개별적으로 마추픽추를 둘러봐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편도 12달러라는 미친 버스요금을 내고 첫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대략 30분 정도 산길을 올라가 공원 입구에 닿았다. 이런 어둠과 폭우에도 정상까지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놀람을 넘어선 존경심이 일었다. 


매번 지각해서 한국을 망신시킨 우리였지만, 여정의 하이라이트에서는 제일 먼저 도착해 외국 팀들의 갈채를 받았다. 마추픽추는 원래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하는데, 특히 이른 아침에는 날씨가 흐리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안개가 가득해서 마치 구름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했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니 여기가 마추픽추인지 북한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여?


시간이 지나 엄청난 속도로 안개가 걷히고 나니 티 없이 맑고 청명한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무도 안 알려줬다면 극적인 반전에 전율했을 텐데, ‘꽃보다 청춘 남미편’을 보고 와서 그런지 스포일러를 당한 기분이었다. 마추픽추가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대에서 유희열처럼 셀카봉을 번쩍 들고 마추픽추를 부르짖으며 한 바퀴 돌아본다.     

     

점점 안개가 걷혀가는 마추픽추

     

마!추!픽!추!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기에는 생각만큼 연식이 오래되지 않았다. 불가사의라고 하면 보통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같은 고대의 건축물을 떠올릴 텐데, 마추픽추는 고작? 600년도 되지 않은 불가사의계의 갓 데뷔한 아이돌인 셈이다.      


가이드는 마추픽추와 관련된 역사와 건물의 용도 따위를 열심히 설명해줬지만, 짧은 영어 탓에 알아듣기 힘들어 지루했다. 그저 까불며 사진을 찍고 놀다, 가장 높은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갔다. 그곳에 털썩 주저 않아 점처럼 작아진 마을과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저 높은(해발 2,400m) 곳까지 올라가 마을을 짓고 살자고 최초로 이야기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우리야 동화 같은 공중도시라며 손뼉 치고 감탄하지만, 저기서 태어나 평생을 저곳에서만 살다 간 이들에게 마추픽추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야트막한 언덕 위에 누워 밤하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무엇이라 여겼을까? 어쩔 수 없이 두고 온 가족을 평생 그리워했을 사람들, 운명을 저주하며 산 아래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꿈꾸었을 청춘들. 저곳에서 한때 살아 숨 쉬었던 무수히 많은 생의 이야기들은 모두 소멸해 버린 채, 우리는 그저 그들이 남기고 간 쓸쓸한 빈 집터에 대해서만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댈 뿐이었다. 

  



마추픽추에서 마을까지 내려오는 길은 비싼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걸어 내려왔다. 쉬지 않고 걸었음에도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쿠스코로 돌아오는 차창 밖으로 말 그대로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갈라파고스에서 만났던 동생들과 쿠스코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막상 쿠스코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나있었기에 마음이 급했다.    

  

초조한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를 맞으며 단숨에 숙소까지 달려갔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추픽추에 가기 전부터 묶었던 한인 민박집의 철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 것이었다. 정문을 계속해서 두드리자 뒷문으로 난데없이 무장 경찰이 튀어나왔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다 일단 민박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삼 일 전만 해도 "네이버 후기 올리면 신라면 1개 무료"라는 코팅지가 붙어있던 리셉션 데스크가 통째로 사라진 채, 복도에 방치된 공유기 몇 개만 멋쩍게 껌뻑이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우리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페루 경찰에게 애워쌓인 채 어쩔 수 없이 묵비권을 행사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매니저가 도착했는데, 사장이 자신에게 말도 없이 갑자기 건물을 경찰에게 팔았다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대었다. 당연히 그곳에서 잘 수 없었기 때문에 한 블록 옆에 있는 허름한 로컬 모텔로 짐을 옮겼다. (듣자 하니 쿠소코에는 불법으로 건물을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벨을 누르니 쇠창살로 이중 잠금 된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몇 개의 방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사실상 손님은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복도에 어깨를 부딪히지 않게 몸을 비틀어야 겨우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층 침대 두 개가 좁은 방 안을 꽉 채운 숨 막히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일 인당 만 원도 안 되는 요금에 셋이서만 쓰는 방을 얻었으니 운이 좋다며 좋아했다.     


얼른 짐을 풀고 저녁 약속을 위해 쿠스코 시내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만난 동생들이 왜 그렇게 반갑던지,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그 날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던 중 택시에서 내린 종직이가 급하게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휴대폰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허둥대며 택시를 세우려던 종직이를 불러 세우며  “잠깐만! 내 주머니에 있는 것 같아."라며 웃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주머니에서 나온 건 종직이의 아이폰이 아니라 샤오미의 보조 배터리였다.     


"에이 씨x"     


종직이가 택시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지만 택시는 점점 멀어지다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졌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식당에 두고 왔거나, 택시에 두고 내린 것. 식당은 이미 문을 닫아 확인이 불가능했고,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볼리비아로 떠나야 했다. 결국 나랑 형수만 예정대로 출발하고 종직이는 혼자 식당 씨씨티비를 확인 한 뒤 야간 버스를 타고 합류하기로 했다.      


대충 사는 종직이는 역시나 백업 따위 하지 않는 상남자였지만, 몇 년 동안 모아두었던 추억이 다 날아가 버렸다는 생각에 적잖게 우울해했다. 그런 종직이를 위로하는 건지 아니면 놀리려는 건지, 숙소 아래층에 있던 식당은 밤이 되니 갑자기 나이트클럽으로 바뀌더니 창문 밖으로 요란한 불빛의 레이저를 쏘아댔다.      


신나는 남미 음악의 리듬이 벽을 타고 침대까지 흔들며 올라왔다. 우리의 심장은 밤새 바운스 바운스 두근거려 늦게까지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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