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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스 Nov 12. 2020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한 나라의 수도답게 유럽의 여느 도시 못지않게 세련된 도시였다. 잘 정비된 도로 위에서 사람들은 깨끗한 서양식 옷을 입고 길거리를 활보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가난한 동네만 보다가 모처럼 분주한 도시에 오니, 매캐한 매연마저 반가웠다.    

 

숙소에 가기 위해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산티아고 시내로 갔다. 우리의 80년대도 그랬듯이, 사람이 많이 몰리는 터미널에는 항상 소매치기가 득실거리게 마련이다.     

 

종직이와 나는 서울에 막 상경한 시골 촌놈들처럼,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장기 빼고 다 털릴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로 등을 진 채 사주경계를 하며 걸어갔다.

  

 세 정거장 정도 지났을까? 지하철에서 내린 종직이가 ‘앞으로 맨’ 가방에 넣어둔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했다. 이미 페루에서 한번 휴대폰을 잃어버려 여행 동안 쓰라며 빌려준 ‘내 휴대폰’ 말이다. 어이가 없어 웃고 있는 나에게 종직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에이 형 장난하지 말고 빨리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하철 타기 직전만 해도 앞으로 맨 백팩 지퍼 속에 있던 휴대폰이 지하철 세 정거장 남짓 사이에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 종직이는 “역시 칠레의 소매치기들은 레벨이 다르다.” “이건 불가항력이었다."라며 자신의 과실에 대해서 부인하였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소매치기 유형은 ‘경찰 실무교재’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지하철 바로 맞은편에서 내가 계속 종직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나! 휴대폰도 휴대폰이지만 메모리카드에 들어있던 여행 영상들까지 통째로 사라졌다.   

  

"네가 멍청하게 어디 떨어트렸겠지...”     


“아니 형, 이건 누가 훔쳐 간 게 확실해요”     


숙소로 오는 내내 티격태격거리다 보니 조금의 감정 섞인 말들이 오고 갔다. 약간 서먹해진 우리는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기분전환 겸 한인 식당에 가서 갈비탕과 소주를 시켰다. 따뜻한 소주 한 잔 목 넘김에 취기가 오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또 마음이 녹았다.     


“이건 형이 살 테니까 액땜했다 치고 다시 여행 잘 하자.”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계산서를 유심히 지켜보던 종직이가 나를 말리며 말했다.

     

“형 잠깐만요! 계산서에 소주 가격이 더 비싸게 적혀있는 것 같은데요?”    

 

회계학 전공의 종직이가 그간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뜻밖의 순간에 날카로움을 발휘했다. 종업원을 불러 “이거 잘못된 거 같다.“라고 따지자 종업원이 계산서를 다시 확인했다. 종업원이 깜빡 잊고 누락했던 소주 한 병이 계산서에 추가되었다.     


뭘 해도 안 되는 날이었다.



전설의 "형이 가져간 것 아니에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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