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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스 Nov 12. 2020

별이 빛나는 ‘아타카마’의 밤에


볼리비아에서 국경을 넘어 오후 두 시쯤 칠레 아타카마에 도착했다. ‘고작 국경선 하나 넘었을 뿐인데...’ 너무도 뜨거운 태양의 입김 탓에 우리는 입고 있던 외투를 모조리 벗어던지고 여름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다른 홍콩 친구들은 휴가 일정이 종료돼서 홍콩으로 귀국하기로 했고, 맹달이형(특유의 과장된 표정이 오맹달을 연상케 해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다.) 커플은 우리와 칠레 산티아고까지 며칠 더 동행을 하기로 했다.    

 

아타카마는 작은 마을이라 금방 시내를 다 둘러볼 수 있었는데, 사막의 흙으로 쌓은 듯한 담장이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에는 식당과 투어 회사들이 어깨를 맞대어 늘어서 있었다.      


숙소 예약도 할 겸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을 찾아 헤매다 간판에 ‘오늘의 메뉴(el menu del dia) 10.000$’가 적혀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한국으로 치면 점심특선과 같은 건데, 선택 장애가 있는 우유부단한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메뉴가 없었다. 야채와 소고기가 들어간 시큼한 김치찜 같은 음식이 펄펄 끓는 뚝배기 그릇에 담겨 나왔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곁들이니 이제야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숙소를 알아보다 인터넷으로는 예약이 잘되지 않아 직접 발품을 팔기로 하고 종업원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계산서에는 20.000$가 적혀있었다. 미국 달러를 아껴야 했으므로 칠레 페소로 결제해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종업원은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했고, 칠레 페소로 계산서를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게 바로 칠레 페소 계산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칠레 페소도 $표시를 썼다. 환율 계산기를 돌려보니 한화 4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이었다. ‘아니 허접한 점심 특선에 맥주 한잔 마셨는데 두당 2만 원이라니??’ 국경선 하나 넘었다고 몇 배가 뻥튀기된 물가 덕에 무더운 날 맥주로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붉게 상기되었다.      


달달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기분이나 풀려고 동네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한국으로 치면 비비빅 정도 되는 하드를 두 개 집었는데 하나당 3천 원이라고 하였다. 하나를 조용히 내려놓은 뒤 남은 하나를 쌍쌍바처럼 쪼개어 나눠 먹었다.     


동네의 호스텔을 일일이 찾아다녔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빈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태양에 달구어진 거리를 한 시간 이상 뱅뱅 돌다 다소 비싼 가격에 어쩔 수 없이 방을 구한 뒤 밤에 진행되는 '별 투어'를 예약했다.  




    아타카마는 어떤 매거진 조사에서 '지구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이는 곳 1위'로 선정된 적이 있다. 나사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지역이며, 실제 화성 탐사선 테스트가 이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친절하게 숙소 앞까지 픽업 온 미니 밴을 타고 컴컴한 도로를 30분 정도 달린 뒤, 가이드를 따라 좁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고요한 적막 속에 오직 타닥타닥 모닥불 소리와 벌레 우는소리만 이 비현실적으로 크게 들렸는데, 그것이 우리를 신성한 장소에 들어간 사제처럼 숙연하게 만들었다.      


준비된 와인과 초콜릿을 먹으며 별에 관한 다양한 설명들을 들었다. 잉카인들의 별자리 전설 같은 얘기였는데, 어차피 영어라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해석을 포기하고 나니 가이드의 소곤거리는 설명이 오히려 듣기 거슬려 별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와인 한잔 취기와 함께 밤하늘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다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냥 투어를 하지 말고 혼자 한적한 곳에 가서 느긋이 별을 바라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올려다본 하늘은 뭐랄까, 고급스러운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잘 차려진 식사를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당연히 굉장히 훌륭한 맛이지만 어떠한 감동도 담겨 있지 않은...   

   

내가 정말 감동적으로 보았던 하늘은, 갑작스레 닥친 추위와 허기를 못 이겨 들어간 우연한 식당에서 발견한 맛있는 순댓국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다가왔던 것 같다. 미국 서부여행 중 숙소를 구하지 못해 공원에서 몰래 노숙을 하던 중 올려다본 하늘이 그랬고, 필리핀 반타얀 섬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 위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그랬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런 숨 막히는 경이로움에 휩싸일 순간이 얼마나 더 있을까? 밤하늘 가득 찬 저 별들만큼 나의 심연의 마음에도 반짝이는 감동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피셜 지구 별 맛집 1위 아타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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