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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가족과 사회적 연대

by 힙스터보살


유사가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유사가족은 뜻을 설명하는 것보다 예시를 드는 게 나을 거 같다. 영화 <Guardians of the Galaxy>에 보면 퀄, 가모라, 드랙스, 라쿤, 그루트 등이 등장한다. (아아아 욘두 아부지....) 이들은 서로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투닥거리지만 그래서 또 서로를 구원하며 한 팀을 이룬다. 이렇듯 혈연에 의지하지 않고도 어떤 계기에 의해 구성된 가족과 같은 관계가 유사가족이라고 보면 된다.


유사가족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를 생각 해 보니, 이 역시 어쩌면 인간의 애정적 욕구 덕분이지 않나 싶다. 내 일찍이 폴리아모리의 일반화 글에서 언급했던 그 애정적 욕구(인간이라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그 누구든 친교하고 싶은 욕구)말이다. 때문에 인간은 그 욕구에 따라 자연히 친구를 만들고 그것이 심화되어 때로는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사회에 많은 일반단체들이 존재하는 건, 그들이 어쩐 이해관계에 맞닿아 있어서라는 측면 외에도 인간이라면 자연히 모여들려는 어떤 성향이 반영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닥불 피우면 하나 둘 앉아서 웃고 떠드는 여행자같이.


불멍할 사람 요기요기 모여라~


내 아시는 분 중 한명이 방과후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시다. 그 분은 주로 독서를 기반으로 한 토론활동을 아이들에게 하고 계신데, 그 분이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몇 몇 메시지 중에 하나가 이거라고 한다 : '늬들이 이런 모임을 계기로 서로 뭉쳐야 살아남는다. 각자 살아가는 것 뿐만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연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나는 이 메시지가 충분히 유효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분이 말씀하시는 바는 그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본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자발적으로 연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연대를 막는 움직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녀간의 갈라치기, 부자와 빈자간의 갈라치기,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의 갈라치기 말이다.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생각해도 갈라치기 하는 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


외려 남자는 여자의 부족한 근력을 대신하여 도움을 줄 수 있고 둘은 서로 한껏 사랑도 할 수 있는데. 부자는 자신이 가진 막강한 부의 권력을 통해 가능성 있는 빈자를 픽미픽미픽미업 하여 성장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는데. 노인은 그가 쌓은 지혜를 젊은이에게 잘 전달하여 지나친 열정과 방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젊은이에게 안정과 휴식을 선사할 수도 있는데.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그 교묘한 지점을 파고들어 표를 얻어가겠다는 정치꾼들 때문에 그들의 연대가 깨지고 사회적 효용이 뚝 떨어지는 모습을, 공리주의 지지자인 나는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때가 많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내를 무조건 막아두면 고인물은 썩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막았던 보도 무너뜨려 다시 흐르게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인간이 무릇 가지고 있는 애정의 욕구에 기반한 연대를 애굳이 막을 이유는 어디 있는 거지? 이 쯤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이야기한 노자가 얼마나 큰 그림을 갖고 인간을 대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도 한다.


노자 장자 할부지 말해봐유, 그 춘추전국시대가 만만히 보이덥디까? ㅋㅋ


동양의 노장사상은 뭔가 나른하고 뜬구름잡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내가 최근 인문학의 시선으로 사회를 재해석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사회가 변화할 것인지를 가만히 보면 그 중심에 무위(無爲)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인간에 깃든 여러 본성과 욕구가 사회에 실현되는 과정 덕분에 인류의 역사는 큰 방향성을 띄고 흘러가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다지도 무위한 역사는 실제로 살아내보면 그렇게도 치열하지 않을 수 없더라. (실전 노장사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어..... 이게 괜히 춘추전국(戰國)시대에 나온 것이 아니었어.... ㅠㅠ)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사회가 보여주는 난리부르쓰의 시발점이 무위하게 돌아가는 지난한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썩이는 게 좀 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래 그러한 것을 뭐 굳이 싫어할 게 있고 좋아할 게 있으리.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분별심 타파에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히야... 여기서 종교대통합이 다시 나오네?


이러다가 내 브런치에서 불교, 기독교, 유교, 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모두가 다같이 우랄랄라 어깨동무하고 춤추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 이것이 요즘 유행 좀 탄다는 통섭(統攝, Consilience)이려나? 아이 힙해. 나 힙스터보살 맞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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