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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

by 힙스터보살


나는 현대사를 배우면서 상당히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민주주의 역사에서 최대의 희생자를 냈던 광주민주화운동이 내가 태어나기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다보면 많은 사건을 사건 자체로 기억해야 하다보니까 날짜감각이 사라질 때가 있는데, 그걸 감안해도 놀랍긴 매한가지다. (대한민국의 역대 민주주의 운동 희생자 관련 자료는 이 글에 포함되어 있음)


이 점을 알고나서부터 나는 우리 엄마아빠가 새삼 달리 보였다. 우리 엄마아빠는 당신들이 청년으로 한창 사회생활을 하던 시기에 박정희를 겪었고 전두환을 겪었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통금 때문에 낮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 '엄마 밥 줘'라고 한 적도 있으셨다. 공장 사장님이 못되게 굴어서 동료분들 꼬득여서 단체로 출근 안하고 놀러다니기도 하셨댄다.(역사의 한 순간을 개인사로서 듣는 그 기분... 기분이 상당히 묘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는 해방둥이이다. 본인께서 한참 어렸던 때라 체감이 안되실 수도 있지만, 이승만까지 겪으셨던 것. 지금 보니 The living legend가 우리 엄빠였다.


근데 돌이켜보면 내가 사는동안 겪어낸 사건도 우리 엄빠 못지않다는 것을 문득 느낀다. 내가 한창 IT솔루션 회사 기술지원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난생 처음으로 '필리버스터'라는 말을 알았다.


찾아보니까,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의회운영 절차의 하나로, 소수당이나 소수의견을 가진 의원들이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처리를 막기 위해 장시간 발언하여 토론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말한다고 한다.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라는 별칭이 있는데 이 점이 사뭇 흥미롭다. 이러한 방해를 통해 소수의견을 개진하고, 대화와 타협을 유도하고 여론을 환기시킨다니. 물론 남발하면 국정이 마비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국회법 106조 2항에 따라 일정 기준을 충족했을 시에만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중용을 지키기 위한 법의 테두리도 인상깊다.


그리고 지금 이글을 쓰며 자료조사를 하다 알았지만, 대한민국의 최초의 필리버스터는 1964년 김대중 의원의 필리버스터라고 한다. 김대중이라 하면 훗날 대통령도 되고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던 그 김대중이 맞다.


그러고 보니 2016년 새누리당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여 야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 연합하여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던 때. 우리 상담원들은 한 쪽에는 이어폰을 끼고 나머지는 상담용 헤드폰을 끼고 국회의원들이 무슨 말씀을 하나 꽤 귀 기울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 할 땐 일 말고 다 재미있지 ㅋㅋㅋㅋ) 나름 태만업무인데도 팀리더께서 건드리지 않아주심에 지금와서 새삼 감사하다.


그 격동의 세월을 살아내신 우리 엄빠가 리빙 레전드다 말이야~!!!


우리 엄빠가 겪어낸 한국현대사도 놀랍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살면서 겪은 한국 정치경제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이 엄빠의 그것에 어느 정도 견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변방의 이름없는 장수같던 노무현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그런데 탄핵으로 대통령에서 쫓겨날 뻔도 하고), JAVA를 날림으로 배우고 들어간 내 첫 IT회사에서 SI로 파견업무를 맡던 때에는 고등학교 애들이 타고가던 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뒤집어져서 애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생겼다. 앞서 말한 필리버스터도 구경하고, 우리나라 최초 여자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어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특히 대통령이 탄핵되어 지위를 잃은 게 참 신선했는데, 그걸 내 인생에서 두 번이나 볼 줄이야?


이명박근혜의 전세대출제도 설계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제도로 인해 갭투자 왕국이 된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 전세사기대란으로 나라가 광풍에 휩싸일 때, 바로 내가 그 전세사기피해자가 되어 법원을 뺀질나게 찾아갈지는 몰랐지. 아직 나는 살 날이 창창한데 앞으로 뭐가 또 있을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이번에 새로이 대통령이 된 자는 빠도 많고 까도 많은 인기인인 것 같던데. 지금까지 기대와 달리 행동한 한국 대장(캡틴 코리아?ㅋㅋㅋ)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가, 안심을 못 하겠다. 드라마 안 봐도 도파민과 코티솔이 뿜뿜 터지는 대한민국 정치경제인데, 이번 대통령은 도파민을 선사할지 코티솔을 선사할지? (그런데 그거 아시는지? 도파민도 코티솔도 둘 다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ㅋㅋㅋㅋㅋ)


일단은 지켜본다. 신뢰는 불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결과주의가 이래저래 욕먹는 세상이지만, 지금만큼은 철저히 결과주의에 입각하여 빠가 되든 까가 되든 하련다. 일단 전임자는 헌재한테도 까인 사람인데, 어디 그 후임은 잘 하나 보자.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인생영화도 리빙 레전드가 되겠지~!!!


나의 인생영화 중 하나인 <포레스트 검프>에 보면, 검프가 살아낸 세월이 실은 곧 미국의 역사였다. 이 영화에 영감을 120% 받았을 것이 분명한 영화 <국제시장>의 남주인공인 덕수 역시 그가 살아낸 세월이 곧 한국의 역사였다.


어눌했던 검프는 이러저러한 인생의 고락을 거치며 결국 아버지가 된다. 그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똑똑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병으로 떠나보낸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돌본다. 누가 그를 멍청한 아버지라고 욕하리.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덕수가 고난의 세월을 겪어내고 평생동안 아버지를 그리워하, 그 또한 누군가의 아비가 되어 영화의 마지막에 '아버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라고 읊조릴 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엄마가 되서 그런가?


개인이 겪어내는 역사의 굴곡은 그러한 것같다. 또 모르지, 짐 캐리가 자기도 모르게 본인 인생이 도촬되고 있던 것처럼 내 인생도 누군가에게 상영중일지도? (아아 제 글 보고계십니까? 다 들키셨다구요?ㅋㅋㅋㅋㅋ)


앞서 언급한 영화만큼 극적이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사는 인생도 꽤 영화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사를 돌아보아도 그렇고, 내 인생에 터졌던 한국의 굵직굵직한 정치경제문화 관련 사건들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겪어내었든지간에 내 삶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고, 지금 나는 내 아들에게 내리사랑을 전해주려고 하고 있다.


그래, 이번 생에서 나는 주연급 영화를 찍고있던 거구나. 그래서 내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던 것이였구만? 개인적으로 영화는 미스테리하게 열린 결말을 맺는 게 재미있었는데, 내가 찍히는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아앗 감독님이 슛 둘어간댄다. Ready....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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