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랫만에 결혼식 초대장을 받았다. 내 주변인들 중에 결혼할 사람들은 거진 간 상태라 간만의 결혼식 참가가 사뭇 설레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고교동창의 결혼식이다보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동창들을 본다는 설렘도 있고 말이다.
아니다 다를까 굉장히 오랫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걔중에는 친구의 동생이면서, 15년 정도 자폐증 아이들을 지도하는 특수교사로 일하는 자가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자들 중에 아이를 데려온 자가 나 말고도 그 동생이 있었는지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피로연장에서 한 테이블에 자릴 잡고 이런 얘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그 친구가 무슨일을 했는지도 까먹었었다. 그래서 물어보다가 자폐아동을 위한 교사로 일했음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하는 일을 알게되니 문득 궁금하여 질문을 던졌다 : "○○아, 요즘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갖는 시선이나 태도가 어떻니?"
그녀의 답변은 꽤 흥미로웠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자면 이렇다. "여전히 약간 그래하는 건 있지. 그런데 내가 처음 일하던 때랑 비교하면 많이 바꼈어. 예전에는 자폐아동이랑 일반아동이랑 같이 수업한다고 하면 일반아동 학부모들이 싫어히는 눈치가 강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냥저냥 받이들여. 그리고 예전에는 자폐아동 부모의 하소연을 끝까지 잘 안 들어주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다 들어주려고 해."
들으면서 약간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다. 그렇구나... 사회가 어지러워 보여도 길게 보면 우리는 차츰 나아지고 있구나.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꾸준한 노력으로 이만큼 왔구나.
그런데 그녀의 이어진 말이 더더 흥미로웠다 : "많은 엄마들이 자폐아가 자기 애 주변에 있으면 자폐아가 자기 애를 건드릴까봐 걱정을 해. 그런데 얘네(자폐아들)는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자기네가 뭘 하지 않아. (이 지점에서 약간 흥분하며) 걔네들 발작버튼만 건드리지 않으면 문제가 일어날 일이 없어. 오히려 자기 애가 자폐아를 건드릴지 걱정해야 해"
15년 잠빠의 특수교사가 내뱉는 말에는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확신이 있었다. 때문에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굉장히 설득력있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왕따를 당할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던데. 교육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 애가 왕따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지부터 먼저 걱정하라 하더라. 근데 그게 참 맞는 말인 것같다. 어떤 사람은 왕따당하는 사람을 보고 '걔가 좀 그렇잖아요~'라면서 왕따 당하는 사람이 당해도 싸다는 시선을 깔고 가는 경우를 가끔 본다. 마치 내 의견이 옳은 것마냥.
그런데 말이다, 왕따당한 그 사람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든지간에 배척하기로 한 결심 또는 행동을 본인은 얼마든지 왕따시키기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걔가 좀 그렇잖아요'라는 발언에는 '본인이 결정내렸다'는 점을 미묘하게 가리고 왕따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정당화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어보인다. 좀 과격하게 비유 해 보자면 "There was no choice...!!"라면서 본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오열하는 영화 속 악인의 모습과, 정도만 크게 다를 뿐이지 결이 비슷하다고 보인다. (비유가 좀 쎈가?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같은데....?)
이 사회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난감함이 있다. 다수에 해당하는 자들은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그들과 행동반경이 겹치는 일이 자연히 적다. 때문에 그들은 소수자들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자체를 모를 때가 많다. 소수자들은 소수자 본인들의 처지를 이해받는 것을 더 원하겠지만 다수자들의 그러한 반응을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수든 소수든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일전에 남겼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밝힐 때, 법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사회가 문화를 통합하는 과정에서는 필히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느끼는 감각이 필요하다. 그게 곧 공동체 의식으로 연결되고, 공동체 의심이 사회통합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아들러가 말하는 '사회적 관심(Gemeinschaftsgefühl)'도 이러한 감각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미래를 너무 낙관적으로 본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긴 호흡에서 바라보면 사회는 점진적으로 발전했다고 나는 본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믿는 대로 보이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좀 비판받더라도 나는 이 관점을 놓고싶지 않다. 한 개인의 인생이 길지 않기에 그 시간을 사랑으로 채워야 하는 것과같이 인류의 생주이멸(生住異滅)도 우주적인 관점에서 찰나일 것이기에 그만큼 긍정의 시각을 갖는 게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상해보라, 반목보다는 화합에 에너지를 쏟을 때 빚어질 이 사회의 모습을. 그 안에서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공자 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