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가 서로 어우러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록 나에게 이모저모 빌런짓거리를 한 자의 질문이지만, 나는 저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꽤 오랫동안 남았더랜다. 일단, 저 질문을 처음 받았던 당시에 했던 내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
"대개는 젊은이들이 진보세력이 되기 십상이고 나이가 든 분들이 보수세력이 되기 십상이죠. (이유도 함께 댔으나 글이 길어져서 생략함) 나이가 든 분들은 젊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은 나이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가능성이라도 있었고 젊은이들은 그렇지 못하죠. 때문에 보수적이라고 보이는 세력이 진보적인 세력을 안으려고 할 때가 더 적합한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빌런은 내 대답을 듣고 묵묵부답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의 무반응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지만, 지금은 궁금하지 않다. 그는 굳이 내가 관심을 쏟지 않아도 관심이 안갈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해서 일으키곤 하니까. 안 그래도 신경쓸 데가 많은 나는 웬만한 일은 저전력모드로 지내고 싶다.
그 빌런은 본인의 부모님이 보수적이고 본인은 진보적이라 겪는 대립을 해소하고 싶어했던 것같다. 나는 그자가 스스로 본인이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를 주장하지만 그가 보이는 언행을 면면히 뜯어보면 우리가 '보수적이다'라고 말하는 자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어찌되었던 그가 겪었을 부모님과의 갈등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다.
그렇게 치면 나의 부모님도 꽤 보수적인 분들이시다.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했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에는 젊어서는 죽어라 일만 시키고 직원들 처우는 개판인 사장에게 반기를 들고 다른 직원분들이랑 파업하듯이 땡땡이를 치셨던 일화도 있으셨던데. 열심히 일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동안 관점이 달라지신 건지 아니면 어르신들 사이에 돌고도는 카더라 뉴스에 현혹된 것인지 나와 정치적 의견이 달라도 많이 달랐다. 계엄을 비판하려는 듯하다 민주당을 힐난하는 어머니의 태도를 보고 '이건 아닌데?'싶은 생각이 들며 위기감마저 느꼈다.
해서 내 마음 속에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대립, 그들은 어떻게 이 사회에 적절히 병존할 수 있겠는지,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어떤 식으로 구성원의 통합에 이를 수 있을런지 고민이 좀 많았다. 물론 쉬운 문제도 아니겠거려니와 내 머릿속에서 '이거다'싶어서 의견을 낸다한들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라도 하지 않으면, 그 다음도 없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에 생각을 이어나갔다. 어떤 만화 대사에서도 나오지 않았던가 : "일단 해봐라,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오른 아침에, 어쩌면 보수적인 태도도 진보적인 태도도 어쩌면 하나의 근본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떤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찍이 나는 지난 브런치 글에서 진보와 보수란 무엇인지 말한 바 있다. 진보는 현재 이 시점에 성립된 어떤 시스템(법, 문화, 제도 등등)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특성을 가진 집단을 가리킨다고 기술했다. 보수는 현재 이 시점에 성립된 어떤 시스템의 효용성을 더 크게 보고 변화했을 때의 발생하는 부의 효용에 포커스를 맞추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보면 둘은 약간의 시점차이가 있다 뿐이지 공통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한 기피가 함께한다. 존립으로 인해 이미 피해를 보고 있는 대상을 긍휼히 여길 것이냐 v.s. 변화로 인해 피해를 볼 대상에 대하여 긍휼이 여길 것이냐, 이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둘 다 옳다/그르다를 논하기 힘든 관점이다. 오히려 두 관점 모두 그 기저에는 '자비심'이 깔려있다.
연애를 할 때도 그렇고 친구를 사귈 때에도 그렇고, 대화는 공통점을 통해 물꼬를 튼다. 진보적인 세력과 보수적인 세력은 좋든 싫든 이 사회에서 병존해야 할 집단이다. 그러니 그 두 집단의 '자비심'이라는 커먼센스를 건드려서 평화로운 대화의 물길이 끊기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려 그 둘이 격렬하게 싸우고 비방을 하면 극단적주의 세력이 득세를 하고 중도를 지향하는 자들이 정치적 피로함 때문에 정도(正道)를 외면하게 된다. 기실, 언론에서 나오는 두 거대 정당의 태도가 뭍 사람들의 비판을 받는 건, 비방을 위한 비방을 거듭한 결과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정당 늬들이 잘못했으니 국민들이 외면하지 않았겠느냐' 인 셈.
이를 극복하려면 여러 가지 방식의 접근이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민들의 참여를 애써 호소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안 그래도 이미 국민들이 참여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국운이 기운다 싶으면 또 어디서 다들 나와서 길바닥 위에서 집회를 열곤 한다. (그것도 평화적으로!) 그렇다면 정치권에서도 화답다운 화답을 할 차례라고 본다. 그게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식이든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식이든 대화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진전이 느려 답답 해 보일지라도, 국민들도 그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나아지는 모습을 응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도 대화무드에 초를 치는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신념에 의해 행동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신념을 가지고 있다와는 별개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문제상황과 대안이 합치하느냐를 판단하며 자신만의 방향을 결정한다. 나를 포함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발 한 짝 걸치듯이 뉴스에 관심을 좀 갖고, 여러 사람 의견도 귀담아 듣고, 생각도 하고, 의견도 내면 될 일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지지를 받는 주도적 의견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민주주의는 굴러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수결의 원칙이 다는 아니네~ 중우정치가 어쩌구 저쩌구~ 이러는 분들이 꼭 계신다.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맞다. 최초로 민주 헌법을 통과시켰다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즘이 탄생했다는 것이 인류의 트라우마인지라 더더욱 그런 것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놀라우리만큼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며 산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떠들든 중립기어를 박고 양쪽 말도 다 들어보고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때문에 몇 몇의 케이스를 제외하면 다수결 원칙에 의한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잘 굴러왔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그랬던가? 민주주의도 좀 비슷한 성질을 갖는 것같다. 가까이서 보자니 공론장에서는 매일같이 언성을 높히고 싸우고 시끌벅적하기 짝이 없지만, 멀리서 보면 사람들의 생각을 이끌고 어쩌다가 합치도 하며 발전을 이루는 듯하다. 그래서 세계사를 훑어보아도 Democracy(민주정)이 점점 더 주류에 속하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 그러하듯 민주정도 그러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리더를 바라는 사회적 니즈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Autocracy(전제정)가 없어질 거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민주적인 리더'가 요즘 트렌드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