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녕가세요 선녀님

by 힙스터보살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방과 후 코딩교사 양성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는 수업스케줄로 가득 차 있다. 이 수업은 지역 여성인력개발원에서 진행하는 강의이다. 나는 이 수업에 대단히 큰 흥미를 느껴서, 앞으로 이 쪽 분야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수업이 나랏돈을 받아 진행하는 것인지라 출결을 특히 신경 쓴다. 지각이나 조퇴가 3번이면 1일 결석으로 치고, 결석이 3회면 수료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나는 당연히 올출석을 하리라 결심을 하고 매 수업을 신나게 다니고 있는데. 이 수업에서 벌써 한 번의 결석을 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린이집에서 소풍 갔다 온 다음에 아이들 내릴 때 엄마가 환영하는 시간을 가져달라는 데! 버스에서 내렸는데 으이, 나만 엄마 없으면 어떻게! 우리 아들램 고작 네 살이라고 ㅠㅠ


교실문을 나가면서 '어디가세요~'하고 동기분들의 묻는다.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니, 그들의 얼굴에서 안타까움의 표정이 강하게 우러났다.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책상에 앉아 꽤 열심히 수업을 듣는 자가 그리 말하니 그랬으려나. 동기분들이 다 같은 주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런지도 모르지.


우리 아들이 잘 울기야 하지만 이렇다는 건 아니고.... ㅋㅋㅋ


남편한테 월급 받아먹으면서 집에서 애 보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주부들은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학교 보내면 개인 자유시간도 많지 않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 보이긴 하는데. 어디 가서 입 밖에 저 생각을 꺼내진 말아줬으면 한다. 보기에 부끄러우니까 ^^;


가정주부들이 돈을 벌어오는 것을 거의 안 해서 그렇지, 돈 벌어오는 거 빼고는 거의 모든 소임이 본인 몫이다. 제사며 생일, 가족여행 같은 굵직굵직한 행사의 기획담당, 마트 장보기를 비롯하여 집안에서 필요한 크고 작은 물건에 대한 재고파악 및 적정가 조달, 아이의 현재 심적/신체적 성장상태 측정과 행동개선 유도, 육아관련 각종 정보 습득 및 적용, 심지어 직장에 나가있는 남편을 대신에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서류를 떼 오는 서비스마저 가정주부의 몫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 한다고 알파우먼이냐! 가정주부도 알파우먼이다!)


회사생활이 바쁜 것이야 대다수의 아내 분들도 직장을 다녀봤을 테니 어느 정도 알테지마는. 가정주부의 삶을 직접 겪어내보지 못한 바깥양반이 내무부 장관의 업무를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아 그런데 가끔 내무부 장관의 권력을 남용하는 주부 분들도 있어서 그것 또한 보기 안 좋은 것도 사실이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연합뉴스에 게재했던 사진입니다)


인터넷 최저가에 쿠폰과 카드혜택을 덧발라 물건을 조달하는데 큰 쾌감을 느끼는 나는, 한 때 친구들 사이에서 '쿠폰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 다나와랄까?ㅋㅋㅋㅋㅋ) 지금은 관두긴 했지만, 기획자로서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게 나이기도 했다. 조달과 기획 모두 내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서 나름 가정주부 생활을 즐기며 했다고 볼 수는 있긴한데.


내가 맡은 파트의 특성상 잔잔한 태스크가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모든 자원의 소모는 기회비용을 낳곤 하는데. 다시 말해, 뭔가를 포기하며 다른 일을 수행해야 하는 때가 많은데.


일에 치이다 보면 '아 이거 나중에 해' 하며 잔잔한 포기가 연이어진 날도 있고, 아이의 소풍버스 하차행사 때문에 커리어를 쌓고자 열정적으로 참여중인 수업을 포기해야 하는 날도 있다. 혹여나 있을지 모를 감기나 기타 질병 결석도 그렇고, 이 수업을 온전히 수료하지 못할 케이스도 상존하고 있어서 오늘도 선녀님의 마음에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래서 오늘 새벽 네 시 반에 눈이 저절로 떠진 걸까? 할 일이 폭발해서 그런지 긴장모드가 되어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보면 사슴이 나무꾼에게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절대 날개옷을 돌려주면 안돼요'라고 조언한다. 아이를 키워보니 딱 알겠는 게, 애가 3년간 크니까 이제야 뭔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행동한다는 느낌이 팍 온다. 그래서인지 어린이집에 가는 시기로 가장 좋다고 꼽는 게 만 3세이......지만 대개는 돌 지나면 어린이집 보내시던데? ㅎㅎ (나포함)


선녀에게 아이 셋이면 얼마 오래 육아를 해야하나. 연년생으로 낳아도 6년은 꼬박 육아모드다. 옥황상제 예하 행정직 공무원 선녀님께서 육아휴직을 6년간 쓸 수 있는지도 의문인더러, 6년 만에 업무에 복귀하면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사기업이었으면 애저녁에 짤리든지 퇴사를 했든지 했겠지.


선녀님의 아침이 바쁘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자정까지 뭔가 하고 잠들어도 괜찮았는데. 수업을 들은 다음부터는 밤 10시만 되면 눈이 절로 감긴다. 일찍 잠들어버린 덕분에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무엇을 할까 하다가, 어제 너무 피곤해서 내버려둔 설거지를 이제야 식세기에 넣고 돌렸다. (정토회 불자들이 그렇게 피곤해하는 새벽예불이 다섯 시인데. 이럴 거면 새벽 예불에 나가도 될 정도지 않을까 ㅋㅋ) 좀 있다가는 선녀옷을 입고 수영에 간 다음 강의실로 날아갈 참이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가정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삶을 찾으러 떠납니다~~"


선녀보살님 승천하시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침묵하는 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