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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Nov 02. 2019

<1화. "고기 굽기 신동">

독박육아 프로젝트 '아내에게 휴가를!'

2019-10-19, 토요일


독박 육아 프로젝트 첫째 날의 기록입니다.




오늘은 아내가 출국하는 날이자 나의 독박 육아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온전히 아이들 하고만 지낸 적은 없었기에 내심 걱정이 되었나 보다. 간밤의 꿈자리가 심상치 않다. 밤새 꿈속에서 나는 애들 취향을 못 맞춰서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실컷 잔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해가 뜨려 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서 긴팔에 바람막이까지 입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짧아지긴 했지만 아직 이 시기에는 충분히 밝은 시간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침운동을 다녀왔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는데 은우가 먼저 일어났다. 어제 평소보다 많이 늦게 잠든 유민이는 8시가 돼서야 겨우 눈을 떴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아침밥을 먹고 기분이 한껏 업되서 집안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참 체력도 좋다.



                             

너희들의 체력이 참 부럽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어제 다 못한 일을 마저 하고 있었다. 은우는 옆에 와서 계속 놀자고 졸랐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아빠 : 아빠가 이거 어제까지 하려고 했던 건데 어제 너희들 재워준다고 마무리를 못했거든.

어젯밤에 했던 말 기억하지? 은우가 이거 만약 다 못하면 오늘 오전에 할 시간 준다고 약속했잖아.


은우 : 얼마나 걸려?


아빠 : 방해하면 한 시간, 방해 안 하면 30분.


은우 : 알았어.



혼자서 공기놀이에 심취한 은우. 아직 제대로 잡지는 못하고 쩔쩔매는 은우를 보니 방해하지 말라던 나는 어디 갔는지 어느새 옆에 앉아서 참견하고 있다. 은우가 할 수 있을 만한 '바보 공기'랑 '코끼리 공기'를 가르쳐주고 나서야 다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이 지난 뒤,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 준 은우덕에 약속한 시간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시무룩하게 혼자 노는 은우.




아빠 : 다했다!


은우 : 아빠! 나랑 놀자!

내가 얼~~ 마나 기다렸는데!


아빠 : 그래, 기다려줘서 고마워. 놀자!



은우는 공기놀이를 하자고 했다. 아직 공깃돌을 잡기 어려워하는 은우를 위해 협력 공기놀이를 만들었다. 은우가 던진 공기를 내가 잡고 그 사이에 은우가 바닥에 공기를 줍는 식이다. 중간에 아웃되면 1단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데 결국 30분 넘게 꺾기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나는 진행이 안돼서 답답해했지만 은우는 그래도 재밌는지 마냥 즐거워했다.



우리가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고 옆에서 책을 보던 유민이가 관심을 가졌다. 옆에 살포시 앉아서 같이 놀자는 유민이에게 코끼리 공기를 가르쳐 줬다. 유민이는 작은 손으로 공깃돌을 들었다가 놓쳤다가 몇 번 해보더니 영 자기 취향이 아닌지 다시 책을 보러 가버렸다.




공기놀이 다음에 은우가 가져온 건 할리갈리. 희진이 고모가 협찬해준 보드게임이다. 경쟁을 싫어하는 유민이를 위해 시간 내에 협력해서 다 같이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긴장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들 너무 잘해서 긴장감도 없다.


                                     

은우는 할리갈리를 했더니 갑자기 보드게임에 꽂혔는지 결국 보드게임박스를 가지고 왔다. 이 박스는 은우랑 내가 같이 보드게임을 만들기 위해 보드게임 제작용 재료들을 모아놓은 박스이다. 전에 은우랑 같이 만들었던 게임을 하나씩 꺼내봤는데 문제는 유민이가 할 수 있는 게임이 없었다.



아빠 : 은우야, 오늘 엄마가 출국하면 이제는 셋이서 같이 노는 걸 해야 해. 아빠가 은우랑만 놀거나 유민이만 챙겨주거나 하기는 어려워.


은우 : 그럼 아빠가 유민이도 할 수 있는 쉬운 걸로 하나 만들어주면?


아빠 :.....

(은우야, 아빠가 그렇게 뚝딱 만들어 낼 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지금쯤 게임업계에 있었을 거다...)


은우는 그럼 탑 쌓기라도 같이하자며 육각 종이 코인을 쌓기 시작했다. 한참 탑을 쌓다가 무너뜨리면서 놀던 은우는 무너진 코인 탑을 보더니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코인 밀어내기’를 제안했다. '코인 밀어내기'란 코인이 쌓여있는 판 위에 앞뒤로 움직이는 벽이 있어서 밀어내는 힘을 잘 이용해서 코인을 떨어뜨리는 게임이다.





히 종이 코인을 돈이라고 알려준 것도 아닌데 은우는 도박꾼에 빙의해서 역할극을 시작했다.  ‘이러다가 거지가 되겠어~ 와! 오천만 원이나 얻었어!!’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아는 아이다. 유민이는 옆에서 같이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의자 두 개를 붙여서 침대라며 드러누웠다. 아직 피로가 다 안 풀린 듯하다.




참 유민이스럽다..ㅋㅋ





한참을 놀다가 지겨워진 은우는 종이비행기 대결을 신청했다. 열심히 심취해서 비행기를 접는 은우. 은우의 비행기들은 예술적으로 생겼지만 실용적이지는 못했다. 종이비행기는 무게중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직 못 깨우친 은우다. 제트기를 변형해서 접은 아빠표 비행기가 생각보다 잘 날아서 마당에 나가서 날려보기로 했다. 밖에 나가니 날씨가 예술이다. 아내를 보내 놓고 야외활동을 좀 해야겠다.




은우의 비행기. 멋지다ㅋㅋ






날씨가 참 좋았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내가 점심을 먹자고 부른다. 은우가 최근 한치회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내가 꺼내 놓은 식재료중에 한치가 보였는지 신이 나서 춤을 춘다. 점심 메뉴는 은우의 바람대로 한치회는 아니었지만 한치 볶음과 돼지고기 찌개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얘들아 잘 먹어둬라.. 이제 맛과 영양이 가득한 엄마표 요리는 당분간 없단다..’


 




최후의 만찬.




점심을 먹고 아내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가는 순간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아내. 여행의 설렘보다는 걱정이 더 큰 것 같다. 반면 오히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아이들. 나가는 길에 한번 안아달라는 아내의 요청에도 시큰둥하다. 택시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아내를 떠나보냈다.


아내가 탄 택시가 출발하자 평소 아내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던 은우는 곧바로 엄마가 보고 싶다고 시무룩해졌다. 반면 평소 아내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라 아내가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걱정했던 유민이는?


“예이~~! 이제 우리 세상이다!”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 은우와 외면하는 유민이.



                                

아내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에 있던 콩 조각 하나를 가지고 싸움이 벌여졌다. 은우가 어린이집에서 나들이를 나갔다가 주워온 콩인데 유민이가 만졌다고 화를 낸 것이다. 서로 고성이 오고 가다가 가벼운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아내가 가자마자 이게 웬 난리인가. 하지만 나도 이제는 나름 잔뼈가 굵은 아빠다. 이 정도 다툼쯤이야.. ‘은우의 권위를 세워주기, 섭섭한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기, 당장의 행동 교정을 요구하지 않기.’ 세가지만 잘해도 대부분의 마찰은 매끄럽게 해결된다.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감정의 굴곡을 다 경험하고 알아서 화해까지 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포도를 내주었는데 은우는 여전히 종이접기 삼매경이다. 마침 책도 반납해야 되는데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면서 종이접기 책도 같이 빌려오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는 사이에 준비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의외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평소 잘 안 하던 양치까지 하고 옷까지 차려입은 두 녀석. 하지만 나는 유민이를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유민이의 패션감각은 오늘도 난해하다.




유민이의 패션





                                    

반납할 책을 챙겨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 가면서 앞으로의 일주일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했다. 잔 걱정이 많은 나는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길을 잃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설명해줬다. 그러던 중 불현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 : 아빠가 은우처럼 7살이었을 때 할머니랑 고모랑 지하상가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갔었거든.

근데 아빠가 신나서 막 오두방정 떨다가 할머니랑 고모가 잠깐 다른 가게에 간걸 못 본거야.

그래서 햄버거 가게에 가서 돌아보니 아빠 혼자 밖에 없었어.


은우 :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빠 : 아빠는 그때 집에 오는 길은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집으로 오긴 했는데 갑자기 길을 잃고 혼자가 된 게 무서워서 막 울면서 왔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으면 거기서 다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정신이 없었지.


유민 :........


자기 일처럼 숨죽여 듣는 유민이. 그리고 정적을 깨는 은우의 한마디.


은우 : 아빠, 근데 햄버거는 먹었어?






날씨가 정말 좋았다.




도서관에 가는 길. 도로 갓길에 망고를 파는 트럭이 있었다. 먹거리에 민감한 아내가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해볼 '길거리에서 과일 사 먹기'. 갑작스런 일탈의 기회가 왔다. 나는 ‘망고 만원’이라는 글씨를 보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 : 어? 망고 만원이네? 우리 저거 사다 먹을까?


은우 : 응! 응!


유민 : 아빠! 만원 있어????


은우 : 유민아, 아빠 돈 많거든?

아빠 십만 원 정도 있을걸?


아빠 : 으.. 응.. 그래.. 아빠 십만 원은 있지.

(하루빨리 경제교육을 해야겠다.)



망고 트럭 옆에 차를 세우고 보니 망고가 여러 개 담긴 바구니 1개당 만원에 팔고 있었다. 하지만 만 원짜리 바구니의 망고는 작고 상태도 안 좋다. 결국 먹을 만한 건 2만 원, 3만 원짜리 바구니. 속은 느낌이 들었지만 차 안에서 초롱초롱하게 지켜보는 아이들을 보니 안 살 수가 없다. 결국 큰 망고 4개가 든 2만 원짜리 바구니를 집었다. 아.. 바다 건너 대만에 있을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자기야! 하나로마트 알뜰코너 가면 애플망고도 이거보단 싸게 살 수 있는데.. 이구..’




한라도서관에 도착.




우여곡절 끝에 한라도서관에 도착했다. 주말이고 날씨가 좋아 다들 놀러 갔는지 텅텅 빈 도서관. 아이들은 오늘 문 닫는 날 이냐며 당황했다. 종이접기 책을 몇 권 고르고 그림책도 골랐다. 책을 한참을 읽어주는데 최근 감기 기운에 목 상태가 안 좋다. 내일은 꿈 바당 도서관에 가야 되는데 큰일이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머지 책은 나중에 집에 가서 읽기로 했다.




목이 아파 많이 읽어주지는 못했다.



                                            

오늘 바깥 활동이 적은 듯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놀이터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아이들은 휴먼시아 아파트 쪽에 안 가본 놀이터가 있다며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놀이터에 도착해보니 나름 그럴듯하다. 무엇보다 최근 놀이터에서는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뺑뺑이’까지 있었다. 아이들과 멀미가 날 때까지 한참을 빙빙 돌며 놀았다.



원심분리기.




                                          

놀이기구 중에 그물을 타고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날다람쥐 같은 은우는 순식간에 기어올라 갔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민이가 말한다.


유민 : 아빠! 유민이도 저거 잘한다~ 봐봐~


아빠 : 응! 파이팅!


(막상 한발 올라서서는 갈팡질팡 하던 유민이)


유민 : 원래 잘하는데 지금은 그냥 계단으로 가고 싶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총총총 계단 쪽으로 걸어간다.)




유민이도 할 수 있다고!





미끄럼틀 기둥에 종이컵 전화기의 원리를 이용한 전화기 놀이기구가 있었다. 반대쪽 수화기가 꽤 멀리 있었는데 쇠로 된 관을 통해 나름 소리가 잘 전달된다. 은우가 멀리서 말을 걸었다.


은우 : 아빠! 들려?


아빠 : 응, 은우야. 잘 들려!


은우 : 아빠! 사랑해!


은우의 예고 없는 심쿵 어택에 잠깐 코 끝이 찡해졌다. 그 와중에 옆에서 지켜보던 유민이가 자기도 해보겠다며 끼어든다.


유민 : 아빠~아빠~ 유민이도 해볼래.


아빠 : 은우야, 유민이도 해본대.

말 한번 해봐~


은우 : 유민아~


유민 : 왜? 오빠? (엄청 큰 소리로)


안 그래도 목소리가 큰 유민이 인데 큰 소리로 쩌렁쩌렁 이야기하니 전화기가 필요가 없다. 있으나마 나한 전화기에 다 얼굴을 갖다 대고 순수하게 성량으로만 통화를 이어가는 유민이를 보며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유민이에게 전화기는 필요가 없었다.




                             

놀이터는 항상 옳다.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가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책모임 용으로 아이들이 먹고 싶은 과자도 하나씩 골랐다. 오레오를 먹겠다던 은우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번도 안 먹어본 미쯔를 골랐다. 유민이는 지난번에 먹었던 고래밥이 맛있었는지 오늘도 고래밥을 골랐다.



아빠 : 자 이제 고기랑 버섯 사자.

은우랑 유민이 양송이버섯 몇 개 먹을 거? 아빠는 두 개만 먹을래.


유민 : 그럼 나는 세 개!


은우 : 나는 두 개.


버섯은 어차피 내가 거의 다 먹게 될 예정이므로 적당히 수를 맞췄는데 얼추 처음 사려던 개수랑 딱 맞다. 손발이 척척 맞는구먼.




하귀 하나로마트.





집에 와서 저녁 먹을 때까지 시간이 약간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종이접기 책을 펼쳐놓고 만들기 시간에 돌입했다. 은우가 빌려온 책은 종이 접기가 아니고 종이 오리기였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나도 같이 빠져서 열중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은우의 취향은 나의 취향과 정말 똑같다.





은근 빠져드는 종이 오리기.




                                   

드디어 저녁 먹을 시간. 예전부터 고기 손질 방법과 고기 굽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 손을 씻고 바로 고기 손질에 들어갔다. 줄곧 플라스틱 칼을 사용하다가 최근 들어 진짜 칼을 사용하기 시작한 은우. 고기 손질도 능숙하게 잘한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알아서 지방과 힘줄을 떼어낸다. 고기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다. 이런 것도 유전이 되는 건가. 버섯을 자를 때는 둥근 부분에 칼이 미끄러져 다칠 수 있음을 주의시켰다. 안 보는 척하면서도 조마조마하면서 걱정했지만 둘 다 다치지 않고 잘 해냈다.




고기장인 은우.



                             

고기와 버섯이 준비가 끝났고 유민이가 선호하는 백미 100%의 쌀밥까지 준비 완료! 고기를 굽기 전, 아이들에게 먼저 주의사항을 단단히 당부했다.



아빠 : 고기를 처음 굽다 보면 고기가 잘 안 뒤집어 지거나 아니면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올 때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뜨거운 팬을 잡으려고 할 때가 있어.

이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게 되는 행동이거든.

그래서 항상 이게 뜨겁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해.


유민 : 손으로 잡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어야 해?


아빠 : 응. 맞아.




생각보다 잘한다.




강철 팬에 은우가 떼어낸 지방으로 기름을 두르고 고기 굽기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고기를 굽기 시작하는 은우. 아닌 게 아니라 딱 알맞은 정도로 고기를 구워낸다. 고기를 굽느라 손이 바빠 정작 먹지는 못하고 있는 은우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즐거워하는 은우는 처음 봤다.



은우 : 아빠, 고기 굽는 거 진짜 재밌다.

이렇게 먹으니까 고기도 더 맛있는 거 같아.


아빠 : 은우야, 근데 먹고는 있는 거지?

먹으면서 해. 식으면 별로 맛이 없어.



이때 서툰 젓가락질로 고기를 뒤집다가 답답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손이 튀어나온 유민이. 다행히도 강철 팬을 잡기 직전 흠칫 멈췄다. 깜짝 놀란 유민이는 나를 돌아보며 당황한 말투로 말한다.



유민 : 아빠, 유민이 방금 이거 손으로 잡을 뻔했는데 꾹 참았어.


아빠 : 응, 아빠도 봤어. 다행이다. 유민아.



평소의 성격이 여기에서도 나오는 걸까. 유민이는 몇 점 구워보더니 답답했는지 나에게 구워달라며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결국 유민이의 고기도 묵묵히 구워내는 은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 둘을 보고 있으면 개미와 베짱이가 떠오른다.




오빠~ 맛있게 구워줘~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간식으로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책 모임을 했다. 오늘의 책은 아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여우의 울음소리에 대한 책이다. 내가 볼 땐 뭐가 재미있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애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거리며 웃는다. 동화책에 교훈적인 내용이 항상 들어갔던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이런 아무 주제 없는 책이 인기가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란다. 이 책은 유민이가 고른 책인데 나름 감각이 있는지 이런 류의 책들을 잘 찾아온다. 반면 은우는 나를 닮아서 그런지 이런 책보다는 이야기가 잘 짜인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우리나라 옛이야기 같은 책들인데 글이 많아 읽어주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언제쯤이면 혼자서 책을 읽으려나.




일곱 번째 책모임.



                                           

책모임을 마치고 양치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누웠다. 유민이가 내 발을 껴안더니 뜬금없이 발 냄새를 맡는다.



유민 : 아빠 발 냄새 깨끗하네~^^ 샤워해서!


아빠 : 응.. 고마워.. ^^;;



오늘 찍었던 사진을 같이 보면서 하루를 돌이켜 봤다. 재밌고 즐거웠다는 아이들. 잘 때쯤에는 엄마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양치하기 전 은우가 “아빠, 대만도 지금 밤이야?” 하고 물어본 것 외에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고 ‘웃프다’고 하는 건가. 남은 날들도 문제없을 것 같다.





"자기야~ 여기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즐거우니 걱정 말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와!^^"





자는 척.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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