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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Nov 11. 2019

<4화. “힐링 인 더 휴림”>

독박육아 프로젝트 '아내에게 휴가를!'


2019-10-22, 화요일


독박 육아 프로젝트 넷째 날의 기록입니다.






다들 우도가 잘 맞는 건지 밤새 한 번도 안 깨고 푹 잤다. 오래간만에 맞는 기분 좋은 아침. 민박집 조식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셋이서 이불 위에서 뒹굴면서 놀았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의 기분도 느끼고 적당히 쉬기도 하면서 몸도 마음도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잘 잤니?





9시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식당에는 숙박객으로 보이는 아저씨 두 분이서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보말죽. 은우가 어패류나 비린내 나는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라 걱정했는데 배가 고팠는지 그래도 잘 먹었다.



 


아침식사.




밥을 먹고 방에 올라와서 씻고 있는데 은우랑 유민이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씻고 나와보니 티격태격 하다못해 주먹질까지 오고 간다. 정말 하루라도 안 싸우면 무슨 일이 나는 건가. 잘 놀 때는 그렇게 친할 수가 없는데 싸울 때 보면 꼭 원수지간 같다. 


일단 싸우는 애들을 뜯어말리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어젯밤 유민이가 그림 그린다고 꺼내놓은 색연필을 정리 안 해놔서 결국 은우가 혼자서 다 정리했는데 유민이가 갑자기 적반하장 색연필을 내놓으라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 그것이 못마땅했던 은우는 '예쁘게 이야기하면'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 말에 화가 난 유민이가 무리해서 색연필을 뺐으려다가 결국 몸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싸우는 소리에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결국 한마디 했다.


아빠 : 얘들아, 아빠가 평소에는 너희들 싸울 때 참견 안 하잖아. 그렇지?

폭력이 나쁜 건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는 거니 굳이 다시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거고,

아빠가 개입하지 않아도 너희끼리 싸우고 다시 풀고 화해하고 잘하니깐.

근데 공공장소에 나오면 아빠가 그냥 두고 보기가 힘들어.


은우 : 왜?


아빠 :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가 있잖아.

그리고 솔직히 사람들이 흉볼까 봐 걱정되기도 해.

사람들이 ‘저 아빠는 애들 싸우는데도 그냥 두네, 나쁜 아빠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쟤들은 맨날 싸우나 봐. 엄청 불행한 가족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사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아빠도 아는데 신경을 안 쓰기가 어려워.


유민 : 사람들이 아빠한테 막 저렇게 말해?


아빠 : 진짜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데 그렇게 생각할까 봐 아빠가 그냥 걱정하는 거지.

근데 아빠는 너희들이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차피 살면서 안 싸울 수는 없거든. 

아빠도 어릴 때 고모랑 진짜 맨날 싸웠어.


유민 : 맞아! 막 아빠가 가위로 고모 손 잘랐다고 그랬잖아. 


아빠 : 자른 게 아니고.. 서로 먼저 쓰겠다고 가위를 잡고 싸우다가 다친 거라니깐. 

아빠가 일부러 한 게 아니라고 말해줬잖아.

그 이야기는 싸우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꺼내네.. ㅡ.ㅡ;

암튼! 밖에서는 아빠가 너희 싸울 때 끼어들어도 이해해줘.

그리고 아빠가 최근에 책에서 본 건데... (주 : 수잔 스티펠만 저 ‘흔들리지 않는 육아’) 

서로 싸울 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좋은 대화법이 있거든. 

약간 게임 같은 거라서 해보면 재밌을 거 같은데 한번 해볼래?


은우 : 어떻게 하는 건데?


아빠 : 먼저 한 명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들어줘야 해.

이야기가 끝나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데,

이때 상대방이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을 해야 해. 

‘응’이라는 대답을 세 번 들으면 성공인 거야. 재밌겠지?


은우 : 응, 해볼래.


아빠 : 질문하는 게 어려우니깐 유민이가 먼저 말해볼까?


유민 : 유민이는.. 색연필이 필요해서 그냥 달라고 한 건데 오빠가 안 줘서 기분이 나빴어. 

그래서 색연필 꺼내려고 오빠한테 올라탄 거야.


아빠 : 그랬구나. 

자, 은우가 질문해볼래?


은우 : 음.. 유민이가 색연필이 필요했어?


유민 : 응.


아빠 : 잘하네.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자 1점!


은우 : 오빠가 색연필 안 줘서 속상했어?


유민 : 응.


아빠 : 그렇지. 자, 마지막.


은우 : 색연필 꺼내려고 오빠한테 올라탄 거야?


유민 : 응.


아빠 : 오~ 성공!

자 이제 은우가 말해보자.


은우 : 오빠는 유민이가 예쁘게 말했으면 줬을 텐데 막 억지로 뺏으려고 해서 기분이 나빴어. 

그리고 유민이가 오빠 위에 올라가서 누르고 그래서 아프고 화가 났어.


아빠 : 그랬구나. 아팠겠다. 은우야.

이제 유민이가 질문해보자.

힘들면 아빠가 도와줄 수 있으니깐 어려우면 이야기해.


유민 : 유민이가 예쁘게 말하면 색연필 주려고 했어?


은우 : 응.


아빠 : 잘하네~ 자, 유민이도 1점!


유민 : 유민이만 색연필 써서 화났어?


은우 : 아니, 그래서 화난 게 아니라..


아빠 : 아까 오빠가 한 이야기를 잘 생각해봐 유민아. ^^;;


유민 : 유민이가 막 짜증내서 기분이 나빴어?


은우 : 응.


아빠 : 자, 마지막!


유민 : 유민이가 오빠 위에 올라가서 화가 났어?


은우 : 응.


아빠 : 잘했어!

아빠는 이렇게 잘할 줄 몰랐는데. 너희들 진짜 대단하다.

이제 서로 한 번씩 안아주자.



한 번씩 아이들의 능력에 놀란다. 언제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싸우고 화해하며 크는 아이들.




어느덧 우도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각자 역할을 나눠서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빠 : 자, 이제 이불 개자~

유민이도 도와줄 수 있지?


유민 : (드러누워서) 아니.. 유민이는 집에 있는 이불은 잘 개는데 이건 무거워서 못해.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유민이. 천성이 베짱이다. 묵묵히 혼자 일하는 은우가 짜증 낼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제법 어른스럽게 배려한다.


은우 : 그럼 유민아, 오빠가 이불 개면 유민이가 위에 베개만 올려줘. 알았지?


유민 : 응. 오빠.


방금 막 화해를 해서 분위기가 훈훈한 둘이다. 맨날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가자~




방 정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우도 땅콩을 두 봉지 샀다. 하나는 오늘 캠핑 가서 먹고 하나는 아내가 귀국하면 맥주 안주로 해야지. 선착장에 도착해서 배 표를 구입하고 차량을 선적했다. 이 시간에 우도에서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승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차를 세우고 갑판 위에 올라가서 우도를 향해 작별인사를 했다.


유민 : 나중에 또 놀러 올게~ 우도야 안녕~ 사랑해~





우도야~ 안녕~





배위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데 은우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한다. 


은우 : 아빠, 핸드폰 떨어지지 않게 잘 잡아. 응?


아빠 : 알았어. 은우야.. ㅡ.ㅡ;;


멀어지는 우도를 보면서 다음에는 엄마도 같이 또 놀러 오자고 다시 한번 약속했다.





또 놀러올게.





제주도에 도착해서 집으로 향하는 길.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보이자 은우가 말한다. 


은우 : 성산일출봉 가고 싶다. 갔다 와도 돼?


아빠 : 시간이 좀 있긴 한데.. 유민이랑 이야기해볼래?


유민 : 유민이는 집에 갈래.

그리고 캠핑 갈 거야.


아빠 : 캠핑은 오후에 갈 거라서 지금은 시간이 좀 있어.


유민 : 집에 갈래.


아빠 : 오빠는 성산일출봉 가고 싶다는데..

그럼 둘이서 이야기해보고 결정해서 아빠한테 알려줘.


갑자기 성산일출봉 홍보대사로 빙의해서 열심히 영업활동을 하는 은우.


은우 : 유민아, 성산일출봉 엄청 재밌어. 별로 힘들지도 않아.

그리고 거기 갔다 오면 오빠가 색종이로 용 한 마리 접어줄게.


유민 : 아니, 용 접어주고 용놀이도 해주기!


은우 : 그래. 좋아.

아빠! 유민이가 간대!


아빠 : 그래. 

은우야, 너 참 유민이를 잘 아는구나? ^^;;

근데 이따가 유민이가 걷기 힘들어하면 업어줘도 돼?


은우 : 응 괜찮아.


아빠 : 그럼 가자.



차를 돌려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수학여행 온 버스도 많았고 관광객도 많아서 주차장에 차를 댈 곳이 없었다. 30분이 넘게 주차장을 돌다 보니 다들 지쳤다. 강한 의지를 보이던 은우마저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마침 빈자리가 나서 얼른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려보니 바람이 차갑다. 유민이에게 겉옷을 입히려 하는데 절대 안 입겠다고 버티는 유민이. 기어코 민소매 티에 팬티만 입고 길을 나섰다. 엄마 없는 티가 너무 나는 우리 아이들. 부끄러움은 항상 아빠 몫인 거니.. 



아니나 다를까 5분도 안돼서 춥고 힘들다며 안아달라고 난리다. 은우도 추웠는지 잠깐 돌아보더니 그냥 집에 가자고 한다. 나중에 엄마랑 같이 꼭대기까지 갔다 오겠다는 은우. 


'그래 은우야, 나중에 엄마랑 둘이 다녀와. 사실 아빠랑 유민이는 등산 체질이 아니야..^^;;'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지.




아쉬움 속에 성산일출봉을 뒤로하고 한참을 달려 드디어 하귀에 도착했다. 오늘 캠핑 가서 먹을 고기랑 햇반을 사러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야외 주차장에 빈자리가 많아서 차를 세우려는데 유민이가 갑자기 지하로 가서 차를 세우자고 한다. 주차하려던 자리에서 차를 다시 빼서 지하로 가려고 하는데 은우가 갑자기 그냥 여기에 세우라고 고집을 부린다. 내가 유민이의 말을 흔쾌히 들어주는 게 못마땅했나 보다. 결국 차를 어디에 세우는지를 가지고 뒷자리에서 다시 말싸움이 시작했다.


아빠 : 얘들아, 주차를 어디 하는지는 아빠가 결정할 문제야.

이게 싸울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둘이서 이야기 좀 해볼래?


점심 먹을 시간도 살짝 넘었고 아침에 죽을 먹어서 둘 다 배가 고픈 상태라 짜증이 잔뜩 나있다. 은우는 화장실이 급한데도 불구하고 절대 지하에 세울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고 버티고 있었다. 한참을 대치하다가 결국 유민이가 양보했다.


유민 : 그래, 그럼 유민이가 양보할게. 

여기다가 그냥 세우자.


아빠 : 양보해줘서 고마워. 그럼 다음에는 지하에 세우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은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은우 : 나는 다음에도 밖에다가 세우라고 할 거야. 지하는 절대 안 돼.


내가 유민이한테 고맙다고 한말에 질투가 난 거겠지. 아내가 들었으면 발끈해서 또 한바탕 싸움이 생겼겠지만 은우 맘이 어떤지 대충 알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들 배가 많이 고팠던 터라 얼른 장을 보고 집으로 향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은 밥시간과 잠시간이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을 제때 못 맞추면 아이들이 예민해져서 필요 없는 다툼이 자꾸 생긴다.




본능적으로 나오는 V사인.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민이가 하는 말.


유민 : 역시~! 우리 집이 최고라니깐!


아빠 : 어! 아빠도 그 말하려고 했는데. 하하.


애나 어른이나 역시 집이 최고다. 어제 먹고 남은 미역국을 데워서 밥을 말아서 뚝딱 먹었다. 애들이 너무 배고파해서 미처 밥할 시간이 없었기에 방금 사온 햇반을 일단 먹였다. 또다시 저 머나먼 타국 땅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자기야! 밥 압력솥에 하면 금방 하는데~ 햇반 안 좋은 거 알잖아~' 




아내가 봤으면 등짝 맞았을 밥상.




은우는 밥을 먹고 배가 부르니 기분이 나아졌는지 다시 너그러운 오빠가 되었다.


유민 : 오빠, 아까 용 접어주고 용 놀이해준다고 했잖아.


은우 : 근데 성산일출봉 꼭대기까지 못 갔다 와서 그건 취소된 거 아니야?

흠.... 알았어. 해줄게.



설거지를 하는 동안 유민이랑 놀아주는 은우. 놀다 보니 자기도 재밌는지 깔깔거리면서 한참을 놀았다. 




용놀이.




놀다 보니 어느새 캠핑 갈 시간이 되어서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집안일을 먼저 하기로 애들과 약속해둔 게 있어서 같이 빨래도 개어놓고 청소도 했다. 은우가 잘 놀아줘서 기분이 좋았는지 유민이도 웬일로 빨래 개는 걸 거들었다. 빨래를 다 개어놓고 나는 청소기를 돌리면서 은우에게 빨래를 널어달라고 부탁했고 은우는 흔쾌히 알았다며 건조대에 빨래를 널었다. 은우가 생각보다 집안일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하고싶은일 보다 해야할 일을 먼저하자.





은우 덕에 생각보다 빠르게 집안일을 마치고 가뿐한 마음으로 "다 함께 출발!"을 외쳤다. 오늘의 ‘가고 싶은 곳’은 휴림 캠핑장, ‘먹고 싶은 것’은 바비큐다.






가자~!





캠핑장은 집에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해야 되는데.. 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 뺑 돌았다. 애꿎은 내비게이션을 탓하는 유민이.


유민 : 아, 정말. 지니(내비게이션)야! 너 진짜 그럴래?


아빠 : 아니야, 유민아. 아빠가 잘못한 거야.. ^^;;

지니가 길을 잘 말해줬는데 아빠가 잘 못 들어갔어.


유민 : 그래? 지니야~ 미안해~



우여곡절 끝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휴림 캠핑장. 얼마 전 글램핑을 했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특히 은우는 모험놀이터와 짚라인에 빠져서 한참을 타고 놀았고 유민이는 토끼랑 말 같은 동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아했었다. 당시 텐트에서 자는 게 편하지만은 않아서 이번에는 카라반을 예약했다. 카라반은 처음이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아늑하고 좋았다. 아이들도 대만족. 




카라반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짚라인을 타러 가자는 은우. 지난번에 왔을 때도 한 시간 넘게 짚라인만 탔는데.. 은우에게 있어서 휴림 캠핑장 = 짚라인 인 것 같다. 다행히 오늘도 사람이 우리 밖에 없어서 짚라인을 독점할 수 있었다. 신이 나서 계속 태워달라는 은우. 그렇게 재밌나 싶어서 나도 한번 타 봤는데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생각보다 짜릿하고 재밌어서 여러 번 타고 싶어 하는 은우가 이해가 되었다.  





짚라인 타러가자~






은우가 한참을 신나게 타고 있으니 토끼 먹이를 주고 있던 유민이가 자기도 한번 타보겠다며 옆으로 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유민이도 신나게 잘 탔던 터라 별생각 없이 태웠는데 무섭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유민이가 성질을 낸다.





ㅜㅜ



유민 : 아빠! 유민이 무서운데 왜 웃어!

유민이가 무서운 게 재밌어? ㅡ.ㅡ+


아빠 : 유민이 귀여워서 그러지.. 미안해 ^^;; 





토끼 사육장.





결국 유민이는 짚라인은 포기하고 다시 토끼 곁으로 돌아갔다. 은우 짚라인 태워주느라 한참을 혼자 뒀는데 나중에 가보니 토끼 밥 많이 줬다면서 신이나 있다. 셋이서 같이 토끼 밥을 주다가 모험 놀이터에서 노는데 장애물 놀이기구를 보고 유민이가 뛰어간다.



유민 : 어! 저거 유민이 잘하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무서운 듯 ^^;;)

아, 이거 아니었어. 유민이가 잘하는 건 저기 있는 빨간색이야.

(빨간색 놀이기구에 올라가서는)

어.. 근데 유민이는 오빠가 다 한 다음에 할게.

(총총총 걸어 내려간다.. ^^;;)




날다람쥐 은우.







애들이 놀기 참 좋다.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 가게에서 숯을 샀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둘. 빠삐코 하나씩을 사주니 아주 기분이 날아간다. 




신났다.





캠핑카 옆에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던 아이들은 고기 굽는 냄새를 맡더니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햇반을 돌려서 하나씩 주고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연기가 자꾸 유민이 쪽으로 가길래 애들을 반대쪽 자리로 옮겼더니 은우가 갑자기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은우 : 왜 유민이만 아빠 옆에 하는데?


아빠 : 연기 때문에 자리 옮기다 보니 그렇게 됐네.

아까는 아빠가 은우 옆에 있었으니까 여기 좀 있다가 다시 은우 옆으로 갈게.


은우 : 싫어. 지금.


아빠 : 은우야, 매번 밥 먹을 때마다 자리 때문에 싸워야 할까?

아빠가 아까 은우 짚라인 계속 태워줄 때 유민이는 혼자 있었잖아.

고기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데 잠깐만 이쪽에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맛있다.




은우는 질투가 유독 심하다. 원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유민이가 태어날 때 즈음해서 잠시 할머니 댁에 맡겨 두면서 질투가 더 심해졌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은우에게는 항상 더 관심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은우의 입장에서는 항상 부족한가 보다. 뾰로통한 은우를 겨우 달래서 고기를 굽는데 이번에는 유민이가 연기 때문에 눈이 맵다며 난리다. 


둘 다 배가 고파서 예민한 상태였나 보다. 밥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명심했다. 얼른 고기를 구워 아이들에게 먹이니 그제야 좀 기분이 좀 풀렸다. 햇반을 하나씩 뚝딱 비운 아이들은 캠핑카 안에 들어가서 놀겠다며 쏙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 덕분에 갑자기 꿀 같은 자유시간이 생겼다. 미리 아이스박스에 시원하게 준비해온 맥주를 꺼냈다. 깜깜한 캠핑장에 혼자 앉아서 고기를 구워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니 세상 좋다.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알아서 잘 놀고 있으니 더 걱정할 일이 없어 마음까지 편했다. 호강한다 정말. 



혼자서 느긋하게 쉬고 있던 중 캠핑카 안에서 조곤조곤 말소리가 들리길래 궁금해서 한번 들여다봤는데 은우랑 유민이가 앉아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니 평소의 불만 같은 것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것도 나름 프라이버시라고 생각되어 자리를 피했다. 너희들도 너희들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간식을 먹으며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정리하려는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아이들에게 잠자리 세팅을 부탁하고 남은 잔불에 마른오징어 한 마리를 얼른 구웠다. 캠핑카 밖에서 창문으로 보니 열심히 침낭을 꺼내서 잠자리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아 괜스레 뿌듯했다.




네! 알겠습니다! 충성!




우리 집은 평소 아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TV 대신 책장이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핸드폰을 쓸 때도 아이들이 보고 있으면 상당히 조심한다. 그러다가 가끔 특별한 날에는 태블릿으로 영화를 한편 틀어주기도 하는데 평소 미디어에 노출이 적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거의 화면에 빠져든다. 오늘도 캠핑하면서 자기 전에 영화를 한편 보여주기로 했는데 이 때문인지 아이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 빠릿빠릿했다.


아빠 : 자, 잠자리 다 폈으면 침대에 누워서 영화 보자.

아빠는 신문 보면서 맥주 한잔 하고 있을게.

침낭 다 폈어?


은우 :  네! 다 폈습니다!


아빠 : 잠옷도 갈아입어야지. 대답은? 


은우, 유민 : 네! 


아빠 : 자, 얼른 잠옷 갈아입고 위치로~!


은우, 유민 : 네! 충성!




카라반 극장.




아이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밀린 신문을 보면서 맥주를 한잔 더 했다. 맥파이 맥주에 우도 땅콩, 숯불구이 오징어까지. 환상의 조합이다.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까지 캠핑의 분위기를 더해줬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일 할 때는 몰랐는데 애들이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하루가 정말 길다. 하루만 긴 게 아니고 일주일도 길다. 체감상 목요일쯤 된 줄 알았는데 아직 화요일밖에 안됐으니..



아이들이랑 지내는 게 딱히 힘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아내가 없다 보니 안정이 안 되는 면이 있다. 아이들도 비슷하게 느낄 것 같다. 갑자기 몇 년 전 서울로 한 달 동안 파견 근무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아내는 정말 기댈 곳 하나 없이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철없이 나 힘든 소리만 했었는데 얼마나 야속했을까. 




엄마에게 영상편지




아빠에게 영상편지





아내는 나의 일기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고 했다. 그동안 즐기지 못하고 너무 '버티는' 육아만 했던 게 많은 반성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아내는 충분히 열심히 노력했고 헌신했으며 희생했다. 군소리 한번 없이 이제껏 나와 아이들의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나는 단지 '1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하는 이벤트성 육아이기에 당연히 즐길 수 있었을 뿐이다. 나 역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무기한의 육아를 지속된다고 하면 분명 지칠 것이다. 조금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사람은 정말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 모르는 것 같다 시작한 건한 번씩.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정말 잘 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돌아오면 더 많이 배려할 것 과 한 번씩 짧은 휴가를 줄 것을 다시 한번 결심했다. 






잘 자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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