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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Aug 31. 2023

보미의 유년기​ 2

보미오면

장군이

° 보미의 유년기 2



어느 날은 갈 곳 없는 새끼 강아지를 주워서 데리고 왔다. 품종 없는 똥개였지만 너무 작고 예뻤다.


우리는 주운 수컷 강아지 이름을 의논해서 지었다. 허락을 먼저 받아야 했지만 이미 주운 수컷 강아지는 우리의 반려동물이었다. 그리고 여러 의논을 거쳐 '장군'이라 이름을 지었다. 어린 꼬마들이 서로 의견을 내고 생각이 같은 이들을 추려내는 진지한 회의였다. 그렇게 당선된 이름은 장군이. 구수하지만 멋진 이름이었다.


보육원 옆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데, 나무 자재들과 박스들이 많아서 집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붕을 만들기만 해도 무너지고 날아가 버려서 비가 오기라도 하면 우산을 씌워 놓았다. 품종은 없었지만 우리에게도 예쁘고 소중한 반려동물이 생긴 것이다.


보육원 아이들 학교에 다녀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장군이에게 몰려갔다. 돌아가며 쓰다듬 만지며 정을 나누어 주었고 놀이터나 공터에서 공을 던지며 뛰어놀기도 했다. 그렇게 부모 없는 우리가 장군이엄마, 아빠가 되어주자고 약속했다.

보육원 식당 구정물 통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퍼 와 밥을 먹였고, 물통이 비는 걸 볼 때마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채웠다.


보육원에서는 하교 후 하나같이 없어지는 아이들이 의문이었지만 집요하게 파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보육원에 계시던 만능박사 강번개 집사님한테 딱 걸렸다. 집사님은 무뚝뚝하고 할 일만 하던 분이라 따로 이야기할 일많지 않았는데, 장군이를 걸려버린 것이다. 너무 놀란 우리는 함께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다.


"집사님~ 우리가 밥도 잘 주고 똥도 잘 치울게여~ 여서 장군이 키울 수 있게 해 주세요~"



얼마나 사정했는지 걸리고 며칠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암묵적인 허락의 의미인 줄 알아서 편하게 놀았다.


며칠을 그렇게 놀았을까?


학교를 다녀왔는데 장군이가 있던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장군이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 강 번개 집사님 집으로 아이들이 씩씩거리며 몰려갔다. 부부가 보육원에서 일을 하셔서 보육원에 사시는데  휴가 가셨다는 소식만 들었다.


'보신탕을 해 먹었다'

'시장에 갖다 팔았다' 추측만 난무할 뿐 답은 듣지 못했다.


 우리는 장군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고 슬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육원에 원장님의 집에서 키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고아인 우리가 갈 곳 없는 새끼 강아지를 얼마나 안쓰러워했는지 모른다.






어릴 적, 보육원에는 흙바닥인 넓은 마당이 있어 소꿉놀이를 자주 했다. 모래에 물을 조금 섞기만 해도, 온갖 주방놀이를 할 수 있었다.


소꿉놀이할 때엔 식탁을 만들고, 그릇을 만들어 나뭇잎을 찧어 놓았다. 육원에 있는 온갖 꽃들을 따와 무슨 음식을 그리 만들었는지 색깔이 환상이었다. 음식 나왔다고 하면 함께 놀던 누군가가 있어서 주방놀이가 완성이 된다.


"여보~ 식사 준비 다 됐어요~"

"그래요~? 어디 한번 먹어봅시다"

"어때요~?"

"이거 너무 맛있는 거 아니요? 허허"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원하던 가족의 삶이 있었는지 항상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나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다.

언젠가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면서 없어진 추억이다.



보육원에 이들이 많아 어떤 놀이를 해도 재미있었다.

물장난을 할 때에도 장난감 물총은 기본이고, 다 쓴 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뚫으면 대왕 물총이 되었다. 물을 가득 담아서 꾹 누르면 온몸이 흠뻑 젖는 최강의 물총이 됐다.


 편을 나누기도 하고, 도망가다가 대적하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해서 쏘기도 했다. 물론, 얼굴을 가리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막판이 되면 수돗가에서 긴 호스를 끌고 와 끄트머리를 얇게 잡아 정조준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젖어버린다. 그렇게 물총 싸움도 시시하게 끝내지 않았다. 항상 냇가에 빠진 듯 쫄딱 젖어 돌아다.




우리가 재미있게 즐겨하던 게임이 있었는데, 이 게임은 보육원에 사는 우리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정말 우리가 만든 거라면 우리는 천재라고 남동생과 이야기할 정도다.


우리는 이 게임을 '123게임'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미있는 게임인데, 준비물은 공과 벽 그리고 사람이 끝이다. 시작하기 전 각자에게 번호가 부여되는데 본인의 번호를 잘 기억해야 한다.


시작하는 사람이 벽에 공을 던지면서 "5!!!"를 외치면 다른 사람들은 '5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


'5번'이 재빨리 공을 잡고 "스톱!"을 외치면,

그대로 '멈춤!' 

그리고 '5번'의 공을 맞으면 탈락되는 게임이다.


누가 몇 번인지 모르니까 그냥 도망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정말 사람과 공 그리고 벽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우리는 항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23게임'을 했다.



때에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싫은 것도 많았다.



 그중에서 폭력.

 어렸을 부터 많이 맞으며 자랐다. 아마 보육원 언니, 오빠들도 많이 맞고 커서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렀을 것이다. 벌을 준다고, 화가 났다고 뺨은 기본 손바닥 손등, 엉덩이, 허벅지 안 맞은 곳을 찾기도 힘들었다.


중학생 때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시내에 나갔다가 단소로 발바닥을 맞았다. 단소는 굵고 단단해서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맞는 순간 전기가 '찌릿'하면전해지는 통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했다. 괜히 잘하던 단소가 싫어질 정도였다.


손, 단소, 빗자루, 파리채, 고무장갑 등 도구 많았고, 온몸에 맞을 곳도 많았다. 때리던 언니의 손바닥이 빨개질 정도였니 얼마나 때렸으면 작고 굵은 손가락이 터질 듯이 빨갰다. 줄지어 뺨을 맞던 우리는 맞다가 날아가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집에 살던 언니였는데 너무 싫었다.


이렇게 맞았는데 학교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때리는 뺨 몇 대 정도는 아프지도 않았다.



 보미도 어릴 적부터 동생들이 말 안 듣고 잘못하면 때렸다. 그렇게 맞아왔으니까 잘못된 행동이란 걸 인식하지 못했다.


 보미가 초등학교 때였다.

 다섯 살인 명훈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혼내고 때렸는데, 문득 '아! 얘네들도 크면서 당연하게 동생들을 때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정말 번쩍!


보미도 맞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때리고 맞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 모르고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다. 내리 폭력이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잘생긴 명훈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 후에도 너무 화가 나서 못 참고 때린 적은 있지만 당연한 것처럼 때리던 습관적인 폭력은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맞는 건 언니들이 퇴소할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밑에 아이들도 더 밑에 아이들도 더 이상 맞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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