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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비 Sep 24. 2023

방황을 시작하는 청소년

보미오면

° 방황을 시작하는 청소년



 이상하게 우리 '보육원'이라는 말은 괜찮았지만 '고아원'이라고 하면 그렇게 싫었다.


보육원 아이들끼리'꼬아원', '꼬까원'이라고 장난치며 말했지만, 우리라서 괜찮았다. '고아'라고 묶인 우리였기에 우스갯소리로 통해서 괜찮았지만, 타인이 말하는 '고아'는 싫었다. 고아를 지칭하는 것이 싫어서 고아라고 하면 많이 싸웠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야영장 가서 생긴 일이다. 유는 기억 안 나지만 같은 반 남자아이가 보미를 고아라고, 고아원에 산다고, 엄마 아빠 없다고 놀렸다.

 남자아이였음에도 바로 넘어뜨리고 올라타 주먹질을 했다.

"어쩌라고!! 네가 나 고아라서 보태준 거 있나!! 네가 뭔데 고아라 카나!!!!!!"

 그 애는 마구잡이로 때리는 보미를 피하려 얼굴을 감싸고만 있었다. 선생님이 와서 말릴 때까지, 코피가 터지도록 때렸다. 아마 '보는 너희들도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해줄 거야'를 암묵적으로 전할 수 있어서 속 시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작은 시에는 보육원이 세 개 있었다. 그중 우리 보육원은 전국에서 손 꼽힐 만큼 큰 시설이었고, 작은 시에서 보육원에 산다는 건 별일은 아니었다. 흔히 볼 수 있던 고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니 학교마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이 있었, 보육원에 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 못 했다. 그저 집이 보육원 일뿐. 보육원에 문제아들이 많아서 무서운 선배들과 친분 있는 우리에게 쉽게 손대지도 않았다.


"나 **** 살아~"

"아, 그래?"

그저 살고 있는 아파트 공유하듯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다닐 땐 딱히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어릴 때의 시골과 동네에서의 시절은 아주 작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버스를 타고 더 큰 시 내를 알게 되었다.   보육원에서 버스 등하교하는 친구들에게 일정된 차표를 나눠 줬는데, 남으면 터미널에 팔아 간식을 사 먹었다.


 중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끼리끼리 무리 지어 다녔다. 친구들끼리 패밀리, 패거리가 있었는데 매번 빨간 목도리를 하던 보미가 친구들에게 하나씩 주다 보니 우리는 '빨간 마후라'가 되었다. 일부로 준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는 함께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짙은 회색 교복에 딱 맞아 잘 어울렸다.


고아원에 서운 언니, 오빠들 많이 봐서인지 담배를 일찍 배웠다. 학생들에게 팔아주는 슈퍼가 은근히 소문나 있어서 사는 것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들은 단체로 보미에게 담배 피우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중학교 강당 뒤에서 여덟 명의 친구들이 모여 앉았다. 모두 하나, 둘 담배를 물어 들고 보미에게 집중했다.


"라이타로 불을 붙이면서 쓰읍 빨아들이면 돼여"


ㅡ쓰읍ㅡ


"콜록콜록"


"콜록콜록"


"콜록콜록"




 불을 붙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기침, 재채기 난리 법석이다. 바로 절대로 피우지 않겠다는 친구들과 더 피워 보겠다는 친구들로 나뉘었다. 보미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입에서 물고 뱉으마 입담배고 속 안에까지 삼키마 속담배라"


뭐가 중한 거라고 연기를 머금고 마시는 법을 자세히도 알려줬다.




 우리는 세모여자중학교에 다녔고 팸(fam:가까운 친구, 친한 사이((가족을 뜻하는 family에서 유래한 10대 속어로 가까운 사이를 일컬음)) 세 개, 네 개 정도가 있었다.

 서로 누가 더 센 fam 인지 우열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부딪히지 않았다.


소풍 다녀오던 날, 여자중학교에서 우리 학교의 서열을 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도 다른데 우리 학교 서열을  정해?'


 우리 학교 fam들은 왜 그리 화가 났는지 그 아이를 불렀다. 사실 보미는 화나기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빨간마후라'가 더 세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7인' fam 친구들이 격분해서 일이 커져버렸다.


"네가 뭔데 우리 학교 서열을 매기나?"


우리 여자중학교에 '7인', '빨간마후라' 를 두고 판가름을 했던 터라 두 Fam이 그 친구를 불렀다. 인원만 거의 스무 명고작 한 친구를 불렀다는 것이 참 비겁했다. 7인과 빨간마후라가 모두 때리지는 않았 7인에서 두 명, 빨간마후라에서는 한 명이 두대 정도 때렸다.


 사실 '이래도 되나?' 싶기는 했는데, 보미의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면 약해 보일 거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 그 생각을 한 것이 보미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학생의 강해 보이고 싶은 엉뚱한 자존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행동이었다.


 원이 많아서 다 뭉치기 어려웠 무리였는데, 소풍으로 단합이 되어 그 기세로 폭행까지 저질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틈조차 없었다. 후로 학생들을 받아주던 호프집까지 다녀와서야 그날이 마무리가 되었다.




소식을 들은 네모여중에서 우리에게 호출을 했다. 말이 좋아 호출이지 쉽게 말해 맞짱뜨자는 거였다.


 사실 무서웠다.

 왜냐하면 네모여중에퇴학당한 친구 있었고, 운동부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존심이 상해서 밖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여중한테 지기 싫었고, 낮은 자세로 숙이고 싶지 않았다.


 '7인' 팸은 한일여중과 친분이 있다고 이야기 조금 하더니 슬금슬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7인'이 신나게 때려놓고서는 만 남겨놓고 가버리는데 정말 어구니없었다.



'7인'이 거의 때렸고 우리는 한 명만 폭행을 가했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여중도 진실이 중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우리 학교와 싸워서 이기는 게 목적이었다. 사실상 네모여중에서 우리를 혼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는 할 말은 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스스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 친구들도 알았을 테지. 사실은 겁을 먹었으면서 티 내기 싫은 마음은 어디에서 나온 깡이었을까?


우리 각 학교 친구들이 서로 짝지어 면담시간을 가졌다. 보미는 일대일에 맞춰진 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썸 타는 대진이 오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 일부로 흘린 것이다. 대진이 오빠는 고교생 중에 짱이라는 오빠였기 때문보미건드리는 것이 일이 커진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덕분에 주먹다짐은 할 수 있었고, 이야기하다 화난 것도 가라앉았다며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우리는 싸웠다기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 학교 서열이 낮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양언니', '양동생'이라며 선배와 후배가 결합해서 연합을 맺기도 했다.

 '양언니', '양동생'이 있던 보미를 다른 선배가 또 연합하고 싶어 해서 '친언니'라는 명칭으로 'X 언니'를 맺었다. 그런 연합들은 보미의 빽이 되기도 했고 보미가 빽이 되기도 했다. (빽 : 뒤에서 받쳐 주는 세력이나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보미는 착한 언니 동생들을 만나 주고받기만 했는데 나쁜 선배 만난 친구들은 고생했다. 선배들이 남자 친구와 '투투(22일)'라고 22000원 모아 오라 하고, 50일 됐다고 50000원 모아 오라는 식의 '삥 뜯기'가 판을 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동생들한테 돈을 뜯어내는 건데 그렇게 많은 금액은 사실 뺏어오라는 말이다. 본인들 남자 친구인데 왜 동생들이 돈을 모아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일, 기념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등 많이도 챙겼다.



 보미는 돈 모아 오라는 선배는 없었기에 뜯어본 적은 없다. 사실 아빠나 그 누구한테도 해본 적 없는 말이서 친구라고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삥 뜯기가 이슈 되어 학교에서 한 설문조사에 보미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번 하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했겠지만, 같이 놀던 친구들이 했던 일이라 달리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은 들었다. 억울했지만 교내 봉사활동은 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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