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_수능 원서 접수를 준비하다.
"성적이 나쁘지 않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국어 3등급, 수학 4등급, 영어 2등급, 생활과 윤리 2등급, 사회문화 2등급, 한국사 2등급
한국사를 제외하고 지난 수능 성적 대비 1등급 이상은 성적은 올라갔다.
이 정도면 수시로도 2합 기준의 대학들은 모두 지원 가능하고, 3합 기준의 대학들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과 달리 성적이 여전히 불안하다. 국어와 수학은 열심히 공부해도 잘 오르지 않고, 영어와 탐구도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번 4월 모의고사가 조금 쉬운 편이었지만 이대로 공부하면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는 좀 더 올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여기에 남길 잘한 것 같아."
벌써 응급실을 갔다 온 지 2주가 넘게 흘렀다.
엄마와 통화한 후 며칠 동안은 몸 관리에 신경 쓰며 수업과 공부를 완전히 내려놓은 채 퇴소에 대한 고민을 신중하게 했다.
지금이라도 기숙학원을 퇴소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다음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를 나가면 독학학원이나 통학학원을 갈 텐데, 그곳에 가서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답은 '아니다'였다.
매달 부모님이 내는 돈을 생각하면 아깝고, 기숙학원에서도 솔직히 마음 잡기가 쉽지 않은데 독학이나 통학을 가서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러한 내용을 부모님에게 잘 설명했고 기숙학원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제 집에 간다!"
"이번엔 나가서 야구 경기 보고 온다!!"
"제주도 투어!!"
담임 시간 전의 반 분위기가 조금 들떠 있었는데, 바로 4월 정기 외출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있는 애들도 얼굴 표정에서 들뜸이 보일 정도였다.
3박 4일이지만 기숙학원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기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다 조용히 앉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정확하게 강의실의 교탁 앞에 서서 소리쳤다.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의 등장에 본인들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정기 외출을 나가서 부모님과 상의하고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주소이전입니다."
"주소 이전이요?"
"그게 뭔가요?"
"어렵겠지만 지금 여러분들의 주소는 부모님 집으로 되어 있을 텐데, 여러분들만 주소를 학원으로 옮기는 걸 말합니다."
담임 선생님은 천천히 주소 이전의 목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수능 접수를 모교에서 하는 게 정석입니다. 기숙학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학생들이 수능 접수를 정기 외출 시기에 하고 들어오고, 수능 보기 며칠 전에 모두 퇴소를 했죠.
그런데 부모님들과 학생들로부터 수능을 학원 주변에서 볼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동안 집에서 공부하려고 하다 보니까 패턴이 깨져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고, 풀어져서 수능을 망쳤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컴퓨터, TV, 핸드폰 등이 바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원 주변의 고사장에서 여러분들이 수능을 응시하기 위해서 주소 이전을 합니다."
"학원으로 주소 이전을 안 해도 되나요?"
"네. 하지만 수능 접수 기간 동안 학원의 정기 외출은 없으니 부모님과 상의 후 외출해서 본인이 접수하고 와야죠."
"그럼 주소 이전하면 학원에서 접수까지 해주는 건가요?"
"제가 원활히 수능 접수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서류 안내와 함께 챙겨줄 겁니다. 그리고 접수는 여러분들이 학원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교육청으로 갑니다."
담임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학생들은 손을 들어 물어보았고, 담임 선생님은 막힘없이 대답해 주었다.
"주소 이전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는데, 고사장에서 같은 반 학생들과 수능 응시가 가능합니다. 보통 교육청에서 수능 접수할 때 접수 순서대로 수험번호가 지정되어, 같은 강의실에서 수능을 볼 수 있습니다."
"오오~!!!"
"주소 이전을 하지 않고 모교에서 수능 접수를 한 경우라면 낯선 환경에서 수능을 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는 얼굴들이 있는 반에서 수능을 보는 게 심리적으로 좋다고 봅니다."
그 말에 반 학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년에 다 겪어봤던 일로, 수능 당일에 심리적으로 평온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색하지 않아도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한 상황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수능을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굉장히 심했다.
그런데 반 학생들과 함께 한 반에서 치를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가장 큰 메리트가 될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병무청 신검입니다. 여러분들은 20세로 나라의 부름을 받기 전,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통지서가 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조건 올해 안에 받아야 하는데 기숙학원에 들어온 탓에 신검받은 학생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아, 맞다!!"
"망할 군대..."
모두가 깜빡했다는 표정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통지서가 오지 않았지만, 의무복무가 있는 대한민국의 남성이기 때문에 병무청에 가서 신검을 받아야 했다.
"신검은 보통 정기 외출 기간에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리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럼 개인적으로 부모님과 상의해서 외출해서 받고 와야겠죠. 그렇지만 학원으로 주소 이전을 하면 한 곳의 병무청에서 신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병무청과 학원이 이야기해서 학원 인솔로 병무청에서 신검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예년에도, 작년에도 이렇게 도움을 줘서 올해에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말 덕분에 몇몇 애들이 놀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학원으로 주소 이전을 하면 괜찮은 점들이 있어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무청 신검은 6평 전후로 이루어지니 늦더라도 5월 정기 외출 전까지 주소 이전 합니다. 교육청 수능 접수는 8월 달 즈음에 진행되는데, 업무를 담당하는 주민센터에서 원활한 업무 처리를 위해 7월에 몰아서 하지 말고 미리 해달라고 합니다.
더불어 보통 주소 이전 시 주민센터에서 확인 차 전화가 가는데 연락 가지 않게 주민센터에 이야기해 두었으니 이번에 외출 나갔을 때 부모님과 상의해서 주소 이전 할 의향이 있다면 결정해서 행정 처리까지 마무리합니다."
"선생님. 그럼 주소 이전은 어떻게 하나요?"
"여러분들이 외출 나가서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주소 이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는 방법은 부모님과 여러분 메신저로 정리해서 보낼 테니 꼼꼼히 보면 무난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주민센터에 방문해도 되나요?"
"네. 근데 여러분 집 근처 주민센터는 안 되고, 주소 이전 할 주민센터에 방문해야 합니다. 즉, 학원 근처의 주민센터에 와서 직접 신청해야 하니 그냥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하세요."
이렇게 담임 시간이 마무리되고, 나는 친구들과 자습실로 이동하며 주소 이전 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넌 어떻게 할래?”
“좀 고민되네. 늘 잠이 부족해서 피곤한데 수능 직전까지 학원에 있으면 잠이 부족할 것 같아.”
“확실히 잠이라도 푹 자고 싶다.”
“수능 전에 집에서 컨디션 조절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다들 마음은 주소 이전 안 하고 집에서 하는 걸로 정해져 있었다.
“부모님이 무조건 여기서 보라고 할 것 같지 않냐?”
“하긴. 나가면 고생할 게 보이는데 굳이 나오게 하지 않겠지.”
“근데 조금이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어.”
“반대로 나는 쌤이 이야기해 준 메리트도 괜찮은데? 모교에 가서 접수하더라도 모교에서 보는 거 아니고, 인근 학교로 고사장이 배정될 텐데…. 그럴 바에야 너희들하고 수능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모교 가서 수능 접수하는 것도 귀찮고.
여기서 신검 받은 사람 있냐?”
태영이 형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지금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 뺏기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다.
마음은 집에 가고 싶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주소 이전하고 학원이 있는 용인에서 수능을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든다. 일단 부모님 의견도 들어봐야 하니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자습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집중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